전체기사

열악하단 북한 감염병 실태, 상상 그 이상2018-07-20 15:31:00


북한의 감염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문제는 그 수준이 국내 전문가들이 인식해왔던 것보다 더욱 열악하다는 점이다. 북한 이탈주민들에 따르면 치료할 약이나 의사의 부족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감염여부를 확인할 세균배양에 요구되는 최소 온도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백신을 보관할 냉장시설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전해졌다. 이에 전문가들은 북한의 질병 문제가 곧 남한의 질병문제가 될 수 있으며, 생명존중 차원에서도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대한감염학회(이사장 김양수)가 1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2018년 남북 교류 활성화 대비 감염병 대응 심포지엄’에 참여한 전문가들조차 북한의 열악한 실상에 놀라움을 표하며 북한 주민의 건강이나 남한의 보건안보를 위해서라도 활발한 교류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현 시점에서 북한만의 노력으로 감염문제를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은 축사에서 “북한의 감염병 현실은 굉장히 열악하다. 전체 (주민의) 32%가 감염병을 앓고 있다”고 심각성을 전하며 “남북과계가 개선돼 교류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건강을 대상으로 한 보건의료분야”라고 정부 차원에서의 협력과 대응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청진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지역 의사로 활동하다 탈북해 남한에 자리 잡고, 현재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북한학과에서 교편을 잡은 최정훈 교수(사진)는 정 본부장의 산술적 현실에 더해 임상현장에서의 실상의 열악함을 사실적으로 전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북한에서 감염원의 조기 발견이 어려워 감염경로에 있어 중요한 환자와 보균자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가 불가능해 감염고리의 첫 단계를 차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감염환자에 대한 식량공급조차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격리조치를 취할 수도 없다고 한다.

환경적 요인도 감염을 악화시키는 조건들로 둘러싸였다. 일례로 북한의 대표적인 장내성감염병인 장티푸스나 파라티푸스, 콜레라의 주된 감염경로으로 지목된 낡고 오염된 상하수도시설의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발진티푸스와 말라리아와 같이 ‘이’나 ‘모기’ 등 해충을 매개로 하는 감염병 또한 쾌적한 환경위생이 형성되지 못해 차단이 어려운 실정이다. 각종 감염병을 유발할 조건과 환경에 주민들이 그대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게다가 병원체에 대해 면역력을 확보해 감염병에 걸리지 않거나 약화시킬 수 있는 예방접종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백신들을 직접 생산할 생산시설과 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외부에서 지원된 예방백신조차 냉장보관시설 및 장비, 전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서 정 본부장이 언급한 북한 주민들의 32%가 감염병에 걸렸다는 통계조차 정확치 않아 보인다. 최 교수는 “감염병을 진단할 수 있는 실험실적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고, 진단시약과 실험기구, 전기와 급수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마저 열악하다”고 전했다.

겨울철 실험실에는 전기와 연료가 부족해 혈액에서 세균을 배양하기 위한 최저온도인 18℃ 이상을 유지하기가 어렵고, 혈액형 판정도 곤란한 때가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더구나 과거의 진단경험 등에 의존하기 어려운 비전형적인 증상의 환자가 증가하고 있어 진단조차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진단이 어려우니 치료는 엄두를 내기 힘든데다 제한적인 물자로 인해 동일한 항생제 사용이 많아져 다제내성결핵을 비롯해 항생제 내성균환자가 급증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의사와 물자 부족으로 약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그마저도 ‘장마당’이라고 불리는 노상시장에서 거래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최 교수는 “북한 가정에서 환자 1명이 생기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자강도 의사가 함경도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환자가 앓고 있는 질환이 감염병인지 일반병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상당수지만 북한의 심각한 상황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고 있다. 대책 또한 전무하다”고 말했다.


◇ 온정주의 vs 보건안보, 남북교류 활성화 보다 ‘시각’ 먼저 정해야

최 교수가 전한 북한의 보건의료실태에 전문가들은 북한의 열악한 보건의료실태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며 한반도라는 하나의 좁은 땅에 함께 살아가는 만큼 남한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남북한의 평화분위기 속에서 교류가 논의되고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이고 면밀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갑작스러운 통일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단기적, 중장기적 계획을 모두 세우고 결핵을 비롯해 말라리아, B형 간염, 성병, 기생충감염 등 북한의 감염병이 국내로 유입·확산되기 전에 이를 차단하고 치료해야한다는 주장이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내분비내과 김신곤 교수는 “우리가 북한과 의료교류에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바로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북한 기대수명차가 최대 20년 이상 날 정도로 격차가 크다. 간극을 좁혀야한다”고 설파했다.

아울러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을 원활히 효과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창구 일원화와 사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 국제적으로 명망과 역량을 갖춘 지도자를 갖춘 상설기구가 만들어져야한다면서 “보건의료는 남북한 두 이방인들을 같은 문법으로 소통하게 하고 통일 전후 사람의 통합을 위한 가장 따뜻한 치유의 도구”라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서울대 의과대학 가정의학교실 박상민 교수는 "북한 주민의 B형간염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방관리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면서 "특히 수직감염 전파를 차단할 사업이 필요하다. 효율적인 B형간염 해결을 위해서는 모자보건사업과 감염관리사업을 함께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시기에 따른 맞춤 건강관리체계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며 “북한이주민의 건강관리를 위한 코호트를 구축해서 적정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실무자와 의료인에 대해 교육을 진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제안했다.

연세대 의료법윤리학연구원 김소윤 원장은 북한의 낮은 예방접종률을 우려해 철저한 준비와 계획에 따른 남북교류와 지원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고려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윤석준 교수는 독일의 통일을 예로 들며 면밀한 계획에 입각한 교류와 통일을 대비한 보건의료체계 구축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당장 남북의 교류 활성화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남북의 입장과 교류협력, 지원의 관점이나 시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결핵협회 오경현 결핵연구원은 “북한을 한 민족으로 봐야할지, 분리된 또 하나의 국가로 봐야할지에 따라 지원이나 교류의 정도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주민들의 감염병 문제개선에 힘쓸지, 보건안보 차원에서 국내 유입을 차단하고 방지하는 차원에서 바라봐야할지가 혼재될 수 있다”고 교류에 앞선 방향성 설정을 강조했다.

서울의료원 공공의료팀 이혜원 팀장은 “분위기가 많이 떠있다. 하지만 지원하고 싶어도 지금은 지원을 할 수 없다. UN제제나 미국 등 국가별 제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미국 재선시기인 11월을 기점으로 많은 점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어 내년 1, 2월 이후 국제사회의 지원과 투자가 이뤄지면 남한에 대한 기대나 장점이 없어질 수도 있는 만큼 제제가 있는 지금 실질적 교류가 가능한 시점이며, 기회를 살리기 위해 북한에 대한 지원과 교류의 방향과 정도를 정부차원에서 빠르게 설정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