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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새로운 피해 계속된다“2020-01-17 06:36:00

#장면 하나. A씨의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했다. A씨의 시어머니가 식사 도중 숟가락을 놓더니 A씨한테 “우리 깔끔을 떨던 며느리가 금쪽같은 손주를 말아먹었다”고 말했다. A씨는 아무 말 못 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A씨의 어린 딸은 2년 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로 사망했다.

#장면 둘. B씨는 부모와 따로 멀리 떨어져 살았다. 아들로서 당연히 부모를 모시고 살고자 했지만, 경제 여건상 한 달에 한 번 뵙고 인사드렸다. B씨는 가습기 살균제를 부어주는 걸 효도라고 생각하고 갈 때마다 부어드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님 돌아가시라고 한 것과 다름없었다며 억울해했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작업환경의학과 교수가 만났던 피해자와 가족들의 사연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줬다.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환경보건시민연대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정부에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는 6707명, 사망자는 1517명이다. 임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인정기준을 마련하는 등의 공로로 지난 2018년 환경부로부터 훈장을 수여 받았고, 최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임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새로운 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 감사패를 받은 게 부담스럽긴 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제대로 마무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정부의 초기 대응이 원활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와 환경부 등 정부 기관 간에 책임 미루기로 피해자는 뒷전에 밀려 있었다. 당시 한국환경보건학회, 환경독성보건학회에 임원을 맡고 있었는데 정부가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면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십시일반 돈을 거둬서 현장을 뛰어다니며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하고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이렇게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초기에 피해를 ‘흡입으로 인한 폐 손상’에만 초점을 맞췄다. 관련된 질환을 폭넓게 조사하고 피해 규모를 확인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로 인해 폐 손상과 관련된 피해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진단 내렸다. 피해 양상이 다른 사람은 인정되지 않았다. 역학조사로 관련된 질환이나 피해 범위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어야 했는데 처음 진행한 연구이다 보니 제한적이고 부족한 상태에서 피해자 인정기준을 만들었다.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형태였다.

-이 과정에서 임 교수의 역할이 컸다고 들었다.

‘흡입으로 인한 폐 손상’만을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피해라고 했던 것을 천식·기관지확장증·폐렴·만성폐쇄성폐질환·독성 간염 등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 인정기준이 넓어졌다. 독성물질이 흡입되면 폐만 손상을 입는 게 아니다. 간, 신장, 뇌 등 타 장기로 이동하거나 DNA 손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노출은 호흡기로 되지만 여러 장기와 연관될 수 있다.

-피해에 대한 입증이 어렵다는 얘기도 들었다.

피해에 대한 입증을 피해자가 해야 했다. 일반적인 선진국에서는 가해자가 ‘이 사람은 아니다’라는 걸 입증하지 않으면 다 인정해주고 있다. 입증에 대한 책임이 가해자에게 있어야 하는데 거꾸로다. 불확실한 것에 대해서 피해 범위가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는 것에 집중해서 연구했고 주장하고 있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에서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으면 피해를 인정한다’고 언급했다. 하위법령인 시행령에서는 ‘상당한 의학적 인과관계’를 요구했다. 시행령은 원법의 규정을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 것이다. 의학전문가나 판정위원회도 법적인 근거로 인해 상당한 의학적 인과관계를 찾아야만 했다. 법의 취지와는 다르게 법이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이런 시행착오를 겪게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정부가 자초한 셈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의학적 인과관계를 요구하는 문구가 삭제됐다. 몇 년간의 싸움 끝에 얻어낸 결과다.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다. 현재 계류 중인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개정안의 통과를 바라고 있다. 이 법안에는 건강 피해에 대한 포괄적 정의와 구제, 국가의 구제지원 책무 추가, 피해자 입증책임 완화, 재심사전문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가해 기업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

기업에 왜 이렇게 했냐고 물으면 ‘한국의 법을 지켰다’고 말한다. 엄격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억장이 무너진다. 기업이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하고 소비자들의 인식을 높여서 건강과 안전을 챙기지 않은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고통받는 피해자에게 위로의 말을 부탁한다.

워낙 고생을 많이 했다. 참 어려운 시기를 지내면서 힘든 과정을 거쳤다. 제대로 된 연구로 피해 원인이 밝혀지고 새로운 예방대책이 마련되도록 노력하겠다. 피해자들이 의지를 꺾지 않았기에 여기까지 왔다. 감사하다.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둑을 두면 복기하는 것처럼 정부가 한 행동을 돌아보면 다시 봐도 정말 못했다. 피해가 지나간 게 아니다. 계속 진행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폐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추적관찰을 계속해 관련성을 확인해야 한다.

임 교수는 “다른 나라보다 화합물질 피해에 대해 많이 경험했으니 진단이나 치료에서 앞서갈 수 있는 계기”라면서 “그동안 겪은 피해자들의 희생이 무의미하게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이 사건으로 화합물질 안전에 대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예방책을 마련한다면 한국의 새로운 역사가 될 것. 더불어 피해자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굴뚝같다”고 강조했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