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 정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11일 기자회견에 밝힌 성추행 의혹 해명 내용은 크게 2가지 의문점을 남겼다. 성추행 의도가 있었는지, 한국으로 서둘러 귀국한 것이 도피 행각이었는지는 당사자들의 추가적인 설명과 조사로 밝혀지겠지만, 현재로서는 주장이 정면을 엇갈린다.
성추행인가, 격려인가.
첫째는 성추행 사건의 실체다. 윤씨는 7일(현지시간) 저녁 “딸 또래의” 인턴여성을 “위로와 격려의 제스쳐”로 “허리를 한번 툭 쳤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인턴여성에 대한 성추행 의혹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DC 경찰에 접수된 사건 신고서에는 “허락 없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grabbed)”고 적혀 있었다. 이는 인턴 여성의 진술에 기초한 묘사다. 허리와 엉덩이도 다르지만, 툭 치는 것과 움켜쥐는 것도 분명 차이가 있다.
그는 기자회견 중에 줄곳 인턴 여성을 ‘여성 가이드’라고 호칭하면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30여분동안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야말로 한국인과 교포, 그 운전기사도 교포였습니다. 그래서 그 좋은 시간을 보내다가 나오면서 제가 그 여자가이드에 허리를 툭 한차례 치면서, 툭 한차례 치면서 ‘앞으로 잘해, 미국에서 열심히 살고 성공해’ 이렇게 말하고 나온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건데 제가 미국의 문화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라는 생각에 저는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 가이드에 대해서 그 가이드에게 이 자리에서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저는 그게 격려하는 의미에서 처음부터 그런 자리를 가졌고 또한 그 여성에게 마지막으로 앞으로 잘해 미국에서 잘해가지고 성공하라 이런 위로와 격려의 제스처였는데 그것을 달리 받았다면 그것 또한 저도 깊이 반성하고 위로를 보냅니다. 그리고 저의 진심을 그게 아니었다는 것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경찰의 사건 신고서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이 여성 인턴이 성추행 사건을 신고하기 전에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윤씨가 호텔 방(문앞)에서 여성 인턴을 속옷 차림으로 만난 일이다. 윤씨는 잠결에 노크 소리를 듣고 서둘러 문을 열다 벌어진 일이고, 방 안에 들어온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여성 인턴이 이 상황을 어떻게 진술했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언론에 보도된 것은 욕설을 하며 호텔 방으로 오라고 했다거나, 알몸이어서 여성 인턴이 놀라 뛰쳐나왔다는 등의 전언이다. 이는 호텔 복도의 CCTV를 확인하면 어느 정도 사실이 규명될 수 있을 것이다.
호텔방 사건이 설사 해명이 된다고 해도, 윤씨가 “위로와 격려의 제스처”였다고 한 것이 실제 어떤 행동이었는지, 또 여성 인턴이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최종적으로 문제가 된다. 위로와 격려의 제스처라는 표현도 자의적이지만, 격려의 의미로 하필이면 ‘허리’를 툭 쳤다는 설명도 상식적으로 이해되기 힘들다. 한 미국 한인교회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상식에는 큰 차이가 없다“며 ”1.5세나 2세 한인 젊은이들은 대부분 동양적인 문화도 잘 이해하고 있어 격려의 몸짓과 성희롱을 혼동했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씨는 기자회견 중 거듭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라고 설명하려 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행동이 용납되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숙였다. 성추행적인 몸짓을 ‘문화적 차이’라거나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설명하는 것은 이런 사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가해자의 설명이기도 하다.
서둘러 귀국한 이유는?
성추행 사건의 실체 못지 않게 중요해진 것이 또 있다. 윤씨가 왜 서둘러 한국에 왔느냐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해외 공식 방문 중에 수행원이, 그것도 대통령의 입이라고 할 대변인이 중도에 대통령에게 알리지도 않고 귀국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론이 윤씨 사건을 비판적으로 다룬 이유도 그가 중도 귀국했다는 정황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 아무런 의혹이 없다면 귀국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윤씨는 자신의 급한 귀국이 ‘이남기 홍보수석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와 이 수석은 성추행 의혹 사건이 있고 난 다음날인 지난 8일 경제인 조찬 행사 직후 오전 9시쯤 박 대통령의 숙소인 영빈관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수석이 성추행 사건을 언급하며 “재수가 없게 됐다.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으니 빨리 워싱턴을 떠나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윤씨는 “내가 잘못이 없는데 왜 일정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냐, 해명을 해도 이 자리에서 하겠다”고 귀국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직속상관인 이 수석이 “한시 반 비행기를 예약해 놓았으니까 짐을 찾아서 떠나라”고 해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며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 청와대 관계자가 설명한 귀국 배경과는 사실 관계가 다르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던 10일 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8일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조찬 행사 직전 홍보수석실과 윤 전 대변인 간에 1차 통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통화에서 윤 전 대변인은 주미(駐美) 한국문화원에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와서 울고 있다는 얘길 전해 듣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먼저 귀국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또 행사 직후 이어진 2차 통화에서 윤 전 대변인이 홍보수석실로부터 미국 경찰의 수사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받은 뒤 조기 귀국을 결정하고, 비행기표문의까지 해왔다는 것이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설명이다.
이남기 홍보수석은 “(윤씨에게)귀국하라고 종용한 적이 없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이 수석은 10일 밤에도 기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윤씨가)내용상 당황스러워했고, 서울로 가느냐 안 가느냐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 언급을 했던 것 같다. 근데 그때 저로서는 전혀 결정할 수 있는 인포메이션이 별로 많지 않았을 때니까, (언론담당) 전광삼 국장이랑 상의해서 해라, 전 빨리 상의 들어가야 된다고 하면서 들어갔다.”
대통령의 직속 참모들이 서로에게 사태 확산의 책임을 떠넘기며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윤씨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사건을 조기에 진화하기 위해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한 셈이 된다. 이럴 경우 청와대가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더 큰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준 청와대 참모들이 국민의 근심거리가 되다못해 수치가 되고 있다.
김지방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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