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에 가격 통제까지 겹쳤다…정유업계 ‘재고 손실’ 공포 확산

호르무즈 봉쇄에 가격 통제까지 겹쳤다…정유업계 ‘재고 손실’ 공포 확산

기사승인 2026-04-29 11:00:04
4차 최고가격제 시행, 기름값 상승세 지속. 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지정학적 위기에 정부의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까지 겹치면서 국내 정유업계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수출가보다 낮은 내수 공급가로 인한 ‘역마진’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향후 유가 하락 시 현실화될 ‘재고 평가 손실’ 우려까지 확산되며 업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단순한 가격 통제를 넘어, 에너지 안보 차원의 공급망 체질 개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27일 정부 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석유 최고가격제가 중동 전쟁 상황 속 불가피한 조치임을 밝혔다. 정부는 정유사가 회계법인을 통해 산출한 손실액을 제출하면 ‘최고가격 정산위원회’의 검증을 거쳐 이를 100% 보전한다는 원칙을 세웠으며, 이를 위해 총 4조2000억원 규모의 예비비를 편성한 상태다.

하지만 정유업계는 국제 시세와 국내 공급가 간 괴리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을 호소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장관도 마뜩지 않은 제도라고 언급했듯 업계 전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최고가격제 상황에서는 업체 간 회계 방식과 관계없이 모든 업체가 비슷한 경영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1분기 조 단위 영업이익이 예고됐음에도 업계가 긴장하는 이유는 이것이 일시적인 ‘재고 평가이익’에 의한 회계상 착시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 상황에서 원유의 장부상 가치는 올랐지만, 실제 내수 판매에서는 역마진을 보고 있어 향후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서면 1분기에 잡힌 이익보다 훨씬 큰 ‘평가 손실’이 한꺼번에 반영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박동흠 한국금융연수원 교수는 “유가 하락 시점에 비싸게 사온 원유를 싸게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장부가액과 판매가의 차액을 즉시 손실로 인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020년 코로나19 초기 유가 폭락 당시 국내 정유사들이 겪었던 조 단위 적자의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손실 보전을 둘러싼 정부와 업계의 갈등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부는 정유사가 제출한 ‘원가’를 기준으로 정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정유업계는 연산품 공정의 특성상 제품별 원가 산정이 불가능하다고 맞서며 ‘국제 제품 가격’ 기준의 보전을 요구하고 있다. 

원유를 통해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연산품(Joint product) 공정의 특성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박 교수는 “정유 산업의 결합원가 구조상 제품별 원가 산정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지난달 24일 최고가격을 동결하는 4차 조정을 단행하며 단계별 점검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가격 동결을 통해 소비 억제 효과와 수급 안정화를 노리고 있으나,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정책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3개월의 기간이 지나면 업계의 현실적인 역마진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조치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기적 충격을 넘어 석유 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계기라고 평가한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정책실장은 “석유 수요는 쉽게 줄지 않는데 공급과 투자의 경우 위축되면서,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 더 빨리 달려야 하는 일명 ‘레드 퀸(Red Queen)’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추세”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원유를 많이 쌓아두는 양적 비축을 넘어, 위기 시 정유사가 즉각 생산에 활용할 수 있도록 비축 제도를 고도화·스마트화하고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선제적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수민 기자
breathming@kukinews.com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