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김옥주 한국생명윤리학회 회장은 “감염병 환자의 피는 허락받지 않고도 연구할 수 있다는 발상은 굉장히 위험하다. 아무리 급해도 환자의 동의없이 연구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세계 어디에도 유례없는 악법이라는 지적이다.
문제의 법안은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한 '감염병예방법'과 '병원체자원법'일부 개정안이다. 감염법예방법 개정안에는 연구자가 감염병 환자 등으로부터 유래된 감염병 병원체를 연구할 경우 서면동의 없이 연구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병원체자원법개정안에는 혈액, 소번, 객담 등을 인체유래물 기준에서 제외해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의를 받지 않고도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각각 담겼다.
관련해 이날 한국생명윤리학회, 한국의료법학회, 한국의료윤리학회, 대한기관윤리심의기구협의회 등 4개 단체는 '감염병예방법 및 병원체자원법 개정안 저지'를 위한 공동성명서를 내고 강하게 비판했다. 해당 법 개정안이 입법 취지를 살리지 못하며 연구과정에서 감염자의 인권을 침하고, 연구의 윤리성, 과학성 검증 부재로 학술적 인정도 받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공동 학회는 “감염자는 질병의 치료 방법, 의학적 연구 대상 여부 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며 “의료인 또는 연구자는 감염자로부터 감염병 연구를 위한 검체 취득 시, 연구에 대해 설명하고 검체 채취에 대한 동의를 구하여야 한다. 이는 감염병에 의한 공중보건상 긴급조치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생략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해당 법안은 모든 감염병 환자가 대상이 된다. 현행 법정 감염병에는 코로나19 등 호흡기 감염병뿐만 아니라 결핵, A·B·C형 간염,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성병 등 80여종의 질환이 포함돼있다.
또한 이들 학회는 감염병 검체 연구에 대한 IRB 심의 제외와 관련 “연구자의 연구의 과학적‧윤리적 부분에 대한 검토와 감염자 보호를 위해 필수적이며 생략할 수 없다”며 “감염병 위기상황에서도 국회나 정부는 감염자의 인권보호와 안전에 위배되는 법안이나 정책을 추진하여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연구 활성화라는 목적으로, 감염자의 인권이 침해되고 윤리적‧과학적인 검증이 안 된 연구의 수행은 국민의 신뢰를 잃을 뿐 아니라, 그 결과도 학술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연구의 감염자의 보호를 위한 조치는 생략되어선 안 된다”고 피력했다.
시민사회의 반발도 거세다. 국회 입법예고시스템에 따르면, 해당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의 입법예고 기간이었던 지난 12일까지 약 2600여개 반대 의견이 달렸다. 제출된 의견에는 ‘공권력으로 감염병 환자의 개인의 인격이나 개인정보보호를 무시해도 좋다는 막가파식 국가폭력이다’, ‘인류 존엄성을 무시하고 당사자(가족)의 동의 절차를 생략해 개인의 의사결정권을 빼앗는 무도한 입법안이다’, ‘적어도 유족들의 동의는 얻어야 예의가 아니냐’ 등의 지적이 이어졌다.
김 회장은 “누구나 감염병 환자가 될 수 있으며, 국민들이 제대로 안다면 누구라도 반대할 것”이라며 “법정감염병 1~4급에 해당하는 감염병을 따져보면, 굉장히 많은 환자들이 본인의 동의 없이 연구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아무리 급해도 기본원칙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팬데믹 대응을 위해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조치에는 반드시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또 그 대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서 타인의 피해를 야기하지 않는 것에 한정돼야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사항이어야 한다”며 “일반 지식을 위한 연구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반드시 당사자의 동의를 얻고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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