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SRHR) 침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피임에 대한 접근 제한, 의료격차 등으로 인해 원치 않은 임신 위험이 증가할 수 있고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차별 및 낙인 등의 문제가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8일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국제인구보건 심포지엄’에서는 SRHR 보장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데이비드 드 베니 UNFPA 아태지역사무소 보건경제자문관은 “코로나19는 성생식 보건 및 권리 서비스의 제공, 이용 그리고 재정적 보호에 영향을 미쳤다”라면서 “일상적인 서비스 제공 현황을 모니터링한 결과, 팬데믹 시기에 산전관리, 시설기반 서비스 및 가족계획 등의 분야에서 서비스 중단이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서비스 중단 유형은 국가별로 상이했으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은 끊임없이 지속되는 중단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는 “임신 중 진료를 받지 않고 조산사의 도움 없이 자택에서 출산을 하면 산모 및 신생아 사망률 혹은 산과 누공 등의 발병률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보건시스템이 코로나19 환자의 선별 치료 및 관리에 치중해 조산사와 의사들이 필수 모성보건 서비스 제공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조 및 글로벌 공급 문제로 인해 중앙 차원에서의 피임 재고 품절이 일어날 수도 있다. 현대적 피임법이 부족한 상황에서 효과성이 떨어지는 전통적인 피임법으로의 전환은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며 “장기 피임법 및 비영구 장기 피임법(LARM)의 가용성 저하로 선택권이 줄면서 피임법 선택의 변화가 생겼고, 이에 따라 응급피임약과 낙태(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깊게 뿌리 잡은 불평등, 차별, 낙인 등의 문제도 확산되고 있다.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 소득/생계에 대한 불평등한 젠더 기반의 영향”이라며 “여성 리더십과 참여 부족은 향후 시민사회 및 여성단체의 재정지원 감소를 야기할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 이전 아태지역은 높은 젠더기반폭력(GBV) 발생률을 보였는데, 코로나 팬데믹 등의 위기 상황이 여성과 소녀들의 GBV 피해 취약성을 악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필수성인지 보건서비스 접근성 제고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대정부 옹호작업을 통해 GBV를 코로나 대응책의 필수서비스로 포함하고 의료지출을 확대해 성생식보건 프로그램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젠더 비순응 지역사회, 여성 및 소녀, 노인, 이주민과 토착민, 장애인 및 기타 소수 계층 등 모두를 위한 의료의 질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워드 소벨 WHO 서태평양지역조정관은 코로나19로 인해 모성 건강과 관련한 의료서비스 격차가 심화되고 있어 효과적인 피임법에 대한 접근 및 활용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5개국 여성(15~49세)들이 의료시설을 방문했을 때 가족계획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받은 비율은 16~48%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만연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임을 하지 않는 여성에게 진행한 피임 관련 상담과 관련해서도 질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고 의료기관별로 구비돼 있는 피임 도구들의 편차도 컸다.
그는 “서태평양 지역에서는 현대적인 피임법에 대한 접근과 사용이 차선책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비영구장기피임법(LARC)은 코로나와 같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가족계획을) 보호하는데 더욱 더 효과적이다”라면서도 “접근과 사용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의료보건 시설 서비스가 필수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격차를 심화해 서비스 제공에 차질을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K방역 성과로 의료붕괴 상황을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성교육, 낮은 성인지감수성 등의 이유로 SRHR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남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방역에 성공해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의료서비스가 무너지거나 하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또 SRHR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고 있고 이와 관련한 국가적 차원의 플랜도 진행 중”이라면서도 “우리나라 여성 건강 관련 통계를 봐도 영아사망, 모성사망은 줄고 있다. 하지만 일부 취약계층에서는 임신, 월경 용품 관련 서비스에 대해 재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고 성교육도 불충분하게 이뤄지고 있다. 안전한 임신중절에 대한 니즈도 크지만 서비스는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지난 2018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피임률 자체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전체에서 안전한 현대적 피임 방법의 이용 비율은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질외사정이나 월경주기법 등을 이용한다고 답한 비율이 매우 높다”라며 “피임 관련 질적 연구에서 인터뷰 한 젊은 여성은 ‘피임 주도권 자체가 남성에게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릴 때부터 피임에 대해 성교육을 철저히 하지 않고 주관이 생기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끌려가는 것 같다’고 코멘트했다. 피임 실패에 대한 책임과 불안감은 여성이 지는데 주도권은 없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피임, 월경을 포함해서 여성이 자신의 건강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액티브하게 선택할 수 있는, 지킬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유행 이후 많은 여성들이 임신, 출산, 임신중단, 피임 관련 접근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 국가에 우리나라는 제외되느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시대가 발전하고 낙태죄 폐지라는 성과를 이루었지만 그 이후 의료현장에서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한) 낙태가 증가하고 있고 반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우리나라는 경제적 불평등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별로 인해 SRHR가 침해받고 있다. (낙태 등에 대한) 낙인에 대한 부분, 프레임화, 왜곡화에 대한 정책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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