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5분이지만, 가기 어려워요”…워킹맘에게 가깝지만 먼 병원 [가까워도 멀기만한 의료①]

“걸어서 5분이지만, 가기 어려워요”…워킹맘에게 가깝지만 먼 병원 [가까워도 멀기만한 의료①]

기사승인 2026-06-30 06:00:07 업데이트 2026-06-30 17:08:31
우리나라 국민 한 명이 1년 동안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횟수는 18번으로 OECD 평균의 3배다. 다른 나라보다 3배는 더 병원을 자주 갈 수 있는 높은 의료접근성을 갖춘 환경에 살고 있다. 하지만 회사원, 자영업자 등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 치여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상 속 의료접근성 저하의 원인, 이로 인해 주목받은 신산업, 정책적 대안을 총 세 편에 걸쳐 다뤄본다. [편집자주]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 = 윤기만 디자이너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 = 윤기만 디자이너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의료접근성이 높은 나라로 꼽힌다. 하지만 세 살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 A씨에게 병원은 여전히 가깝고도 먼 존재다.

의료접근성은 필요한 시기에 의료서비스를 얼마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지를 뜻한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 가운데 하나가 OECD가 발표하는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다.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연간 외래 진료 횟수는 18회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다. 병원을 찾기 쉬운 환경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한국은 병원을 찾기 쉬운 환경으로 꼽힌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다니는 미취학 아동을 둔 워킹맘 A씨에게 병원은 연차나 반차를 써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거나 배앓이를 할 때는 언제든 병원에 가야 하지만, 정작 자신이 아플 때 병원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IT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30대 워킹맘 A씨에게 연차는 휴식을 위한 시간이 아니다. 아픈 아이를 위해 ‘일시업무정지’ 버튼을 누르는 일에 가깝다. A씨는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거나 배앓이를 하면 당일 연차를 쓸 수밖에 없다”며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어 하루 종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반차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또 “조부모와 가까이 살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저는 아이가 열이 나면 남편과 번갈아가며 연차를 쓰고 급히 소아청소년과로 향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아이를 위해서는 언제라도 연차를 쓸 준비를 하고 있는 A씨 부부지만, 정작 자신들이 아플 때는 연차 사용을 꺼린다. 퇴근 이후에도 자유 시간이 거의 없는 이들이 병으로 앓아누우면 돌봄은 건강한 배우자의 몫이다.

A씨는 “부부 중 한 명이 아파도 병원을 가기 쉽지 않다”며 “아이를 위해 연차를 남겨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출근이 어려울 정도이거나 전염병이 아닌 이상 다른 이유로 쉬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OECD 통계와 달리 A씨가 체감하는 의료접근성은 높지 않았다. A씨는 “서울에 수많은 병원을 보면서 의료접근성이 높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바라보면 소아청소년과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며 “당장 제가 사는 곳에서 아이를 데리고 걸어서 갈 수 있는 병원은 단 한 곳뿐이고, 그마저도 긴 대기시간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또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도 직장을 다니며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상황이 어려워 병원가기 힘들다”고 전했다.

A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서울에 사는 A씨의 경우 병원은 가까워도 갈 수 있는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비수도권 주민들 입장에선 병원은 물리적으로도 거리가 있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방 거주민의 국립대학병원 인식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1.2%가 지역의료 위기를 우려한다고 답했다. 중증질환이 발생할 경우 지역 병원보다 서울 상급종합병원을 우선 이용하겠다는 응답도 높게 나타났다. 이는 지역에서 중증질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여건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수도권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료패널 분석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병의원 진료나 검사가 필요했지만 받지 못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15.0%였다. 병원을 찾지 못한 이유는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50.7%)’가 가장 많았고, 이어 의료비 부담(21.2%), 교통이 불편하거나 거리가 멀어서(9.3%) 순이었다.

결국 우리나라의 높은 의료접근성은 모든 국민이 동일하게 체감하는 지표는 아니다. 누구에게는 병원이 부족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병원이 가까워도 시간을 내지 못해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현실이 존재한다.

이처럼 일상에서 의료접근성의 한계를 체감하는 사람들에게 최근 대안으로 비대면진료와 같은 신기술을 활용한 제도들이 부상하고 있다. A씨는 “최근 비대면진료로 복용하던 약을 재처방받은 적이 있었다”며 “업무 중 병원을 찾기 부담스러웠던 상황에서 많이 도움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대안을 넘어 육아 중인 부부나 아픈 사람은 언제라도 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A씨는 “회사에서 육아하는 직원들이 아이가 아프거나 특별한 상황이 생겼을 때 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지 않으면 계속 지금처럼 쫓기는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가족을 위한 무급휴가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휴식 제도를 회사들이 의무적으로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아이를 위해 연차를 쓰는 비중이 높을수록 결국 워킹맘과 워킹대디의 피로도가 높아져 경력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자주 아픈 아이들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면 경력 단절 문제도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s.com
이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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