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국민 한 명이 1년 동안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횟수는 18번으로 OECD 평균의 3배다. 다른 나라보다 3배는 더 병원을 자주 갈 수 있는 높은 의료접근성을 갖춘 환경에 살고 있다. 하지만 회사원, 자영업자 등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 치여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상 속 의료접근성 저하의 원인, 이로 인해 주목받은 신산업, 정책적 대안을 총 세 편에 걸쳐 다뤄본다. [편집자주] |
|---|

IT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워킹맘 A씨는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가 아플 때를 대비해 연차를 아껴둔다. 정작 자신이나 배우자가 아플 때는 연차나 반차를 내고 병원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A씨는 자신이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한다. 회사의 배려로 육아기 단축근무를 사용하며 다른 직장인보다 일찍 퇴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저는 회사의 배려를 받아 단축근무를 하고 있어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며 “주변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단축근무조차 사용하지 못하거나 더 바쁘게 사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A씨처럼 바쁜 일상에 치이는 직장인과 시간이 곧 돈인 자영업자들은 병원이 지척에 있어도 제때 찾지 못하는 현실을 겪고 있다.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병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일상 속 낮은 의료접근성을 경험하는 이들의 눈길을 끈 것은 최근 기술 발전과 함께 급부상한 비대면진료였다. 스마트폰으로 진료받고 필요한 약을 처방받을 수 있어 병원을 찾기 어려운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의 새로운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의료계에서는 비대면진료가 경증질환 관리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질환을 정확히 진단하는 대면진료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예를 들어 설사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이 설사가 과식에 의한 증상인지, 혹은 장염에 의해 발생했는지,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비대면진료는 이러한 가능성을 꼼꼼하게 살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편의성 때문에 대면진료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흘러서는 안 된다”며 “환자가 필요할 때 제대로 병원을 찾아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아플 때 제대로 된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지만 현실은 다르다.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은 생업 때문에 자리를 비우기 어렵고, 퇴근하면 대부분의 병원은 진료를 마친다.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비대면진료를 통한 심야 진료와 공공심야약국, 야간 진료 병원 확대 등 일상 속 의료접근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안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본다. 의료접근성 문제는 의료 공급 확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우며 노동환경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정부가 내세웠던 ‘아프면 쉬는 사회’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상병수당과 법정 유급병가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병수당은 질병이나 부상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소득 일부를 보전하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며 2027년 본사업 시행을 앞두고 있다.
홍석환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현재 정부는 상병수당 본사업 시행을 준비하고 있지만 긴 대기기간과 짧은 소득 보장기간, 65세 이상 대상자 배제, 최저임금 60% 수준의 낮은 보장성 등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상병수당과 함께 유급병가제도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며 “노동자가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려면 상병수당과 유급병가 제도화는 꼭 필요한 제도적 장치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과 함께 노동시간 단축도 의료접근성을 높이는 핵심 과제로 꼽았다. 병원 운영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노동자가 근무시간 중에도 부담 없이 병원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홍 국장은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일이 우선”이라며 “과거 주5일제 시행 이후 노동자의 의료접근성이 향상됐다는 다수의 실증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또 “주 4~4.5일제와 같은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상병수당, 법정 유급병가 제도가 마련돼야 노동자가 아플 때 눈치 보지 않고 병원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