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하며 ‘숨 고르기’에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강도 상호관세와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다만 올해 성장률 하방 압력을 고려할 때 한은이 5월 금리 인하를 재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17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통화정책방향(통방) 결정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2.75%로 동결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과 11월, 올해 2월 세 차례 각각 0.25%포인트(p) 인하 후 속도조절에 나섰다.
금통위는 이날 의결문에서 “1분기 경기 부진 및 글로벌 통상여건 악화로 성장의 하방위험이 확대됐다”면서도 “미국 관세정책 변화, 정부 경기부양책 추진 등에 따른 전망경로의 불확실성이 크고 환율의 높은 변동성과 가계대출 흐름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제 성장률만 고려하면 금리를 인하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미 관세정책의 부정적인 영향 △필수 추경의 효과 △금리 인하에 따른 부작용 등을 면밀히 분석해 5월 경제 전망과 함께 금리 결정을 하겠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올해 성장률 1.5%마저 위험…1분기 역성장 가능성도
이달 기준금리 동결의 주된 배경은 환율 불안이다. 최근 달러지수는 100선대로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왔지만 원·달러는 여전히 1420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국내 정치 불확실성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 여파가 겹친 탓이다. 여기에 미·중 간 관세 전쟁이 격화하면서, 환율이 하루에 30원 이상 급등락하는 등 높은 변동성이 지속되고 있다. 한은 입장에서는 금리 인하에 따른 환율 리스크를 감당하기엔 부담이 큰 상황이다.
이외에도 토지거래허가제 일시 해제에 따른 가계부채 우려, 불투명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정책 등도 이번 금통위 결정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 총재는 국내외 경제 전망이 어려워진 현 상황을 ‘어두운 터널’에 빗댔다. 그는 “지난 2월 통방 이후 통상 여건이 크게 악화했고, 향후 전개 과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전례 없이 크다”며 “미국 관세정책의 강도와 주요국의 대응이 단기간에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전망의 기본 시나리오조차 설정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가 올해 1분기 역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추정했다. 국내 정치 불확실성의 장기화와 미국 관세정책에 대한 우려로 3월 중 경제심리가 다시 위축됐고, 여기에 △영남지역의 대형 산불 △일부 건설현장의 공사 중단 △고성능 반도체(HBM) 수요 이연 등이 겹친 영향이다.

힘 받는 5월 인하론…금통위 전원 ‘3개월 내 인하 가능성’ 공감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한은의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색채가 옅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성장률 하방 압력이 커지며, 지난 2월 한은이 전망한 1.5% 성장률 달성도 사실상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내수와 수출 모두 둔화되면서 1분기 성장률이 당초 예상(0.2%)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은은 다음 달 수정 경제전망 발표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5월 금리 인하론도 점점 힘을 받고 있다. 특히 금통위원 6명 전원이 이번 포워드 가이던스에서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밝히면서, 다음 달 인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 총재도 “금통위원들은 5월에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가능성이 굉장히 큰 상황인 만큼, 전망 수정치와 금융시장 상황·외환시장 상황 등을 보면서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이 총재가 6월 대선 직전에 열리는 5월 통방회의에 대해 “한은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언급한 점도 다음 달 인하 기대를 높이는 요소로 평가된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금통위 내부 분위기가 상당히 비둘기파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며 “5월 인하는 확보됐고, 성장률 하향 폭에 따라 추가 인하 횟수가 2회에서 3회로 상향 조정될 가능성도 언급됐다”고 봤다. 유영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4월 금통위 결과는 비둘기파적 동결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한다”며 “이미 세 차례 기준금리 인하가 이루어지면서 중립금리 수준에 보다 가까워진 만큼 한은은 연속 인하 보다는 동결 후 인하를 선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