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을 앞두고 금융권을 향한 ‘상생’ 요구가 거세다. 금융권은 건전성 지표가 흔들리는 가운데, 정책 부담까지 더해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7일 주요 5대 시중(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1분기 실적과 함께 공개한 팩트북 등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기준 연체율(은행별 단순 합산 평균 기준)은 0.41%를 기록했다. 직전 분기인 작년 말 0.34%에 비해 0.07%포인트(p) 상승했다. 이는 2018년 1분기 말 0.41%를 기록한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은 연체율이다.
특히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1분기(단순 평균값) 0.59%로 집계됐다. 전 분기(0.39%)보다 0.20%p, 1년 전(0.34%)보다는 약 1.7배 급등한 수치다. 부실 우려가 크지 않던 대기업 대출 연체율도 0.09%로 치솟았다. 경기 둔화 여파가 대기업까지 번지며, 기업 대출 전반에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부실채권도 빠르게 쌓이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고정이하여신(NPL)은 12조6150억원으로, 처음으로 12조원을 넘어섰다. NPL이란 금융사의 여신 중 회수에 문제가 생긴 여신 보유 수준을 나타내는 건전성 지표다. 팩트북을 공개한 4대 금융(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NPL은 1분기 말 현재 총 12조6150억원으로 나타났다. 1년 전(9조1270억원)보다 27.7% 늘며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통상 1분기는 NPL 상매각이 이뤄져 부실 규모가 줄어드는 흐름이 일반적인데 오히려 치솟았다”며 “2분기부터 관세 이슈 등 대외 충격이 본격화하면 연체율이 더 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선 정국은 은행권의 긴장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거대양당 후보들이 ‘금융 약자 지원’을 공약을 내세우며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모두 은행 수익구조에 직접 영향을 주는 공약을 제시했다. 이 후보는 △가산금리 산정 시 법적비용의 부당 전가 금지 △대환대출 활성화 △중도상환수수료 단계적 감면 등을 약속하며 금융소비자 부담 완화를 내세웠다. 김 후보는 △소상공인 대출 수수료 전면 폐지 △경영안정자금 지원 확대 △‘새출발 프로젝트’ 등을 통해 자영업자 금융지원을 강조했다.
양측은 소상공인·자영업자 금융지원 확대에 방점을 찍었지만, 재원 조달 방안은 불투명하다. 두 후보 모두 공약 발표 당시 재원 조달 방안으로 정부 재정 재조정, 국비 활용 등을 거론했으나, 수조원을 마련하기는 충분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금융권이 재정적 부담을 상당수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앞서 은행들은 3년간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총 2조원 규모의 채무를 조정하는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2023년 말에는 약 2조원 상당의 소상공인 이자 환급 등도 단행했다.
금융권은 우려를 내비쳤다. 채무 탕감이나 저금리 대출 등의 공약을 실행하려면 결국 은행권이 유동성을 조달해야 하고, 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금융권의 부담이 과도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며 “재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지원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따져볼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도 건전성 관리가 쉽지 않은데, 지원까지 계속 확대하라고 하면 버거운 건 사실”이라며 “공약이 실행된다고 해도, 오래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