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수 적다고 고통도 작은 건 아니다”…재활·돌봄 지원 사각지대 ‘MSA’

“환자 수 적다고 고통도 작은 건 아니다”…재활·돌봄 지원 사각지대 ‘MSA’

발병 후 3~5년 내 독립 보행 한계
‘진단 방랑’에 환자 규모 파악도 어려워
치료제 부재…“전 세계 진행 임상시험 희망”
“한-덴마크 양국 협력 중요”

기사승인 2026-05-14 08:30:04 업데이트 2026-05-15 18:13:08
13일 서울 성북구 주한덴마크대사관저에서 열린 한국-덴마크 다계통위축증(MSA) 전문가 간담회에서 국내외 MSA 치료 환경 발전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신대현 기자
13일 서울 성북구 주한덴마크대사관저에서 열린 한국-덴마크 다계통위축증(MSA) 전문가 간담회에서 국내외 MSA 치료 환경 발전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신대현 기자

다계통위축증(MSA)은 파킨슨병과 비슷한 떨림·경직 증상을 보이지만, 치료 반응과 진행 속도는 전혀 다른 난치성 신경계 희귀질환이다. 파킨슨병은 약물로 일정 기간 증상 조절이 가능한 반면 MSA는 기존 치료제에 대한 반응이 제한적이고, 발병 후 3~5년 안에 독립 보행이 어려워질 만큼 빠르게 악화된다.

하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받은 치료제는 아직 없는 상태로, 국내 희귀질환 지정 공백 상태에서 진단 과정의 어려움도 있다.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강국으로 알려진 덴마크가 중추신경계(CNS) 질환, 특히 MSA 치료·관리 분야에 집중하는 이유다. 치료 공백을 메울 수 있도록 국제 협력과 치료제 연구개발(R&D), 조기 진단 필요성이 높아진다.

권도영 고대안산병원 신경과 교수(대한파킨슨병및이상운동질환학회 홍보이사)는 13일 서울 성북구 주한덴마크대사관저에서 열린 한국-덴마크 MSA 전문가 간담회에서 “MSA는 질환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다.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의료 시스템 내에서도 인식의 부재가 지속돼왔다”며 효과적인 치료와 돌봄 체계의 정립 필요성을 제시했다.

MSA의 초기 증상은 파킨슨병과 비슷해 보이지만, 질환의 예후와 경과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MSA는 뇌의 기저핵뿐 아니라 소뇌, 뇌간 등 여러 계통이 동시에 위축되는 신경계 희귀질환으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투병했던 병으로 알려져 있다.

MSA는 임상 증상이 비슷한 파킨슨병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고 예후가 불량하지만, 현재 질병 진행을 근본적으로 억제할 치료법이 없는 상태다. 파킨슨병으로 오인하기 쉬워 환자들은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는 ‘진단 방랑’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정확한 국내 환자 규모를 파악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조기 감별과 질환 인식 제고가 강조되는 이유다.

유수연 서울의료원 신경과 과장은 “MSA는 파킨슨 증상뿐 아니라 기립성 저혈압, 방광 기능 이상, 수면 장애 등 자율신경계 증상이 동반돼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린다”며 “그러나 초기에는 파킨슨병이나 다른 파킨슨증후군과 구분이 쉽지 않아 정확한 진단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MSA 환자가 처음 증상을 느낀 뒤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고, 그 사이 환자와 가족은 정확한 병명을 알지 못한 채 불확실성 속에서 지내게 된다. 유 과장은 “조기 진단이 중요한 이유는 환자에게 맞는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를 계획하고, 임상시험 참여 가능성을 검토하며, 장기적인 돌봄과 완화의료 계획을 세우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라며 “특히 렘수면 행동장애가 있는 환자들을 면밀히 추적 관찰하면 이후 운동 기능 변화나 자율신경계 이상을 더 빨리 포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들은 사회적·경제적 어려움도 크다. MSA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고, 병의 진행 속도가 빠르다. 환자가 가정의 경제적 중심 역할을 하던 경우라면 질환으로 인해 소득이 끊기고, 가족 전체의 삶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병의 진행을 근본적으로 막는 치료제는 부재하다.

유 과장은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새로운 치료제나 임상시험 소식에 관심을 갖지만, 임상시험 정보나 연구 결과에 대한 접근성은 충분하지 않다”며 “관련 정보가 환자와 가족에게 더 잘 전달되고, 필요한 경우 임상시험 참여 기회까지 연결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된다면 긴 치료 여정을 견디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기적인 치료와 돌봄 계획도 중요하다. MSA 환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 방문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 과장은 “초기에는 외래진료와 재활치료가 가능하더라도 병이 진행되면 집에서 누워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다”며 “이때 병원 치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재택의료, 지역사회 돌봄, 재활 지원, 완화의료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의학적으로 당장 제공할 수 있는 치료가 제한적이라 하더라도 환자가 포기되거나 방치돼선 안 된다”면서 “환자와 가족이 계속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공공의료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라고 강조했다.

덴마크와의 협력 필요성도 제시했다. 현재 덴마크 제약사인 룬드벡은 알츠하이머병, MSA와 같이 치료 옵션이 극히 제한적인 CNS 질환들을 연구하고 있다. 유 과장은 “덴마크와 한국은 모두 높은 수준의 의학적 역량을 갖추고 있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이 많다”며 “진단 기술, 디지털 헬스, 치료제 개발, 환자 돌봄 모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이 경험을 나눈다면 MSA 환자의 진료와 삶의 질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윤진영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국내에서 MSA가 중증질환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존 중증질환 분류가 주로 사망 위험이 높은 암이나 특정 질환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는 지적이다. MSA는 대략 인구 10만 명당 2~5명 정도로 추정되는 희귀질환이지만, 지원 체계가 없어 의료비 지원 등 혜택이 부족하다.

재활 치료 역시 환자에게 중요하지만, 국내 재활치료는 대체로 단기 회복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MSA처럼 질병 전 기간에 걸쳐 지속적이고 맞춤형 재활이 필요한 환자에겐 적합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윤 교수는 “어떤 환자들은 ‘MSA가 파킨슨병보다 덜한 것인가’라고 묻기도 하는데, 그럴 때 ‘오히려 파킨슨병이 차라리 더 나은 병일 수 있다’고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 그만큼 MSA는 환자에게 훨씬 더 가혹한 질환”이라며 “현 제도는 파킨슨병과 MSA를 비슷하게 다루고 있어 환자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재활치료, 수면검사, 호흡 보조 치료, 삼킴·언어 재활, 장기 돌봄 지원 등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조기 진단과 함께 효과적인 치료제 필요성도 높다. 현재 MSA의 진행을 늦추기 위한 치료제 임상시험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윤 교수는 “여러 국가에서 환자 모집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고, 저희 병원에서도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이 있다”며 “아직 결과를 기다려야 하지만, 치료제 개발 시도는 MSA 환자들에게 중요한 희망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재활, 수면, 호흡, 배뇨, 돌봄까지 포괄하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지만, 현재 국내 제도는 이 부분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며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고통이 작은 것은 아니다. 한국과 덴마크 양국의 연구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고, 현재 진행 중인 임상시험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