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잎 추출물(징코빌로바)이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원인으로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의 응집을 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재확인됐다. 콜린알포세레세이트(콜린알포)의 임상 재평가와 선별급여 적용으로 치료 옵션 재편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은행잎 추출물이 혈관성 요소를 동반한 경도인지장애·치매 환자 등에서 장기적 보조 치료 옵션으로 자리매김할지 주목된다.
김희진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1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은행잎 추출물 연구 성과 발표’ 미디어 간담회에서 “은행잎 추출물은 단순히 기억력 증상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밀로이드 축적과 인지 저하 진행을 늦추기 위한 약물적 접근의 대안이 될 것”이라며 은행잎 추출물의 아밀로이드 응집 저하 효과를 소개했다. 이번 간담회는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주최했다.
은행나무잎에서 추출한 징코빌로바는 콜린알포와 유사한 적응증을 가졌다. 은행잎 추출물은 단기 인지 개선을 목표로 하기보다 미세혈류 순환 개선과 산화스트레스 감소를 통해 장기적 퇴행성 변화를 늦추는 약제로 알려져 있다. 고용량을 장기간 복용했을 때는 경도인지장애(MCI)의 환자 인지 기능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는 국내외 임상연구가 다수 발표된 바 있다. 일부 유럽 국가에선 은행잎 추출물을 치매와 MCI 환자에 권고하고 있다.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은 치매 초기 단계 증상 관리 약물로 승인했다.
올리고머화 억제 효과, 아밀로이드 PET 검사 입증
이날 발표된 연구(Ginkgo Biloba for Alzheimer’s Disease: From Mixed Dementia Trials to Biomarker-Confirmed Mild Cognitive Impairment) 결과에 따르면, 은행잎 추출물의 올리고머화 억제 효과를 아밀로이드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 검사를 통해 입증했다. 작년 발표된 선행 연구에서 바이오마커를 활용해 은행잎 추출물의 올리고머화 억제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지만, PET 영상으로 베타아밀로이드 응집 억제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당 연구 논문은 최근 알츠하이머병 저널(Journal of Alzheimer‘s Disease)에 게재됐다.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은 정상적인 세포에서도 자연적으로 발생해 신경세포의 성장과 회복에 관여하지만, 손상되면 뇌 조직에서 뭉쳐 덩어리를 형성하며 독성을 유발한다. 작은 덩어리 형태인 ‘올리고머’, 섬유 형태의 ‘아밀로이드 피브릴’, 큰 덩어리인 ‘아밀로이드 플라크’ 단계로 응집이 이뤄진다. 플라크 형태에 이르면 뇌신경 세포가 손상되며 뇌 위축 등으로 치매와 같은 인지 및 뇌 기능 장애가 나타난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양영순 순천향대 천안병원 신경과 교수 연구팀은 아밀로이드 PET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MCI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군에는 은행잎 추출물 1일 240㎎를, 대조군에는 오메가-3, 콜린전구체 등 기존 인지보조제를 18개월간 투여해 임상 경과를 비교했다.
특히 바이오마커 MDS-Oaβ를 활용한 선행 연구와 달리 이번 연구에선 아밀로이드 PET 영상을 기반으로 SUVR(Standardized Uptake Value Ratio) 값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SUVR은 PET 영상으로 확인되는 임상적 변화를 수치화한 것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뇌에 아밀로이드가 더 많이 응집됐음을 의미한다.
MDS-Oaβ는 혈액을 기반으로 올리고머화를 측정하지만, 아밀로이드 PET 검사는 뇌를 직접 촬영해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얼마나 침착돼 있는지를 영상으로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정확도와 신뢰도가 높아 치매의 경과를 확인하는 검증된 표준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연구 결과, 대조군에선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후두엽 등 뇌 전반에서의 SUVR 값이 18개월 경과한 시점에서 유의미한 증가가 확인된 반면, 은행잎 추출물 투여군에선 최초 측정치와 연구 종료 시점 측정치의 차이가 없었다.
MDS-Oaβ 검사에선 단백질이 뭉치는 올리고머화 경향이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잎 추출물 투약군에서 MDS-Oaβ는 최초 0.87±0.14에서 종료 시점 0.79±0.13으로 유의미한 감소가 확인됐다. 대조군에선 MDS-Oaβ가 0.86±0.11에서 0.95±0.21로 늘어나 투약이 이뤄졌음에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뭉치는 경향성은 높아졌다.
양 교수는 “아밀로이드가 응집에 대한 바이오마커 수치가 낮아지고, 그 결과 베타아밀로이드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현상이 PET 영상을 통해 직접 확인됨에 따라 은행잎의 베타아밀로이드 응집 억제에 작용하는 메커니즘이 더욱 정교하게 검증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잎 추출물의 기전은 복용 환자의 실제 증상과 인지 기능과도 직결됐다. 연구에 참여한 MCI 환자 중 은행잎 추출물 복용군에선 18개월 후 알츠하이머병으로 전환된 환자가 확인되지 않아 전환율은 0%로 추산됐다. 대조군에선 같은 기간 경과 후 28.6%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것과 대조적인 결과다.
양 교수는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연간 10~15%가 치매로 전환되는 것을 감안하면 1년6개월이 지난 시점에 알츠하이머로 전개된 환자가 없었다는 것은 베타아밀로이드 응집 억제가 실제 질환의 전개와 밀접히 이어져 있다는 방증”이라고 짚었다.
증상 억제서 원인 직접 제어 치료 전환
인지 기능의 안정적 유지 효과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기억력, 주의력, 일상생활 지표 등 인지 능력을 측정하는 K-MMSE(한국판 간이정신상태검사), CDR-SB(임상치매평가척도)를 통해 인지 안정을 확인했다. 그 결과 은행잎 추출물 복용군에선 K-MMSE, CDR-SB 두 수치 모두에서 유의한 변화가 관찰되지 않아 연구 참여 환자 전원이 ‘인지 안정’ 판정을 받았으나, 대조군에선 환자의 57.1%가 연구 기간 중 ‘인지 저하’가 일어난 것으로 판단됐다.
이번 연구가 기존 증상을 일시적으로 억제하는 형태의 MCI 환자 치료를 치매가 악화되는 원인을 직접 제어하는 형태의 치료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양 교수는 “인지 기능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을 보충하는 형태의 치료제의 경우 깜빡하는 증상을 일시적으로 억제해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성격의 기전이기 때문에 발병 자체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베타아밀로이드 응집이라는 질환의 원인 요소에 직접 작용하는 형태의 약물은 치매 치료의 패러다임을 증상 억제에서 원인 제거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아밀로이드를 제거할 수 있는 항체 치료와 제거했음에도 다시 축적되는 경향이 있는 환자가 아밀로이드의 응집을 느리게 하는 은행잎 제제를 같이 복용한다면 그 효과성을 좀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치료 전략 변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어 독일에서 발표된 리얼월드(RWD) 데이터에서 실제 은행잎 추출물의 처방 횟수가 많을수록 치매 발병률이 낮아진 문헌을 소개하며 “이번 연구가 아밀로이드 응집 억제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초기 MCI 환자의 치료 전략을 넓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은행잎 제제 복용의 가장 큰 우려는 출혈 경향인데, 전문가들은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주의는 필요하다고 했다. 고지혈증약이나 고혈압약을 함께 복용해도 된다고도 했다. 양 교수는 “예전에 환자가 수술을 앞두고 신경과로 협진이 오면 수술 전 항혈소판제나 항응고제를 며칠 또는 일주일 정도 중단하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징코빌로바도 함께 끊어야 하는지 문의를 많이 받았다”며 “현재는 일반적으로 징코가 출혈 위험을 크게 높이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중단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한다”고 답했다.
콜린알포 대체제 부상…전문의약품 전환 가능성
다만 일부 문헌에선 와파린 같은 항응고제 또는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 같은 항혈소판제를 복용하는 환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한다. 특히 항혈소판제를 하나만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를 함께 복용하거나, 항응고제와 항혈소판제를 같이 복용하는 경우 주의가 필요하다.
양 교수는 “징코는 일부 항혈소판 기능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이미 출혈 위험이 높은 약을 복용 중인 환자에선 그 효과가 과해질 수 있다”며 “다만 부작용 이슈가 많이 보고되는 상황은 아니어서 일반적인 경우에는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지만, 고위험 약제를 함께 복용하는 환자에선 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콜린알포의 대체제로서 은행잎 제제의 전문의약품 전환 가능성도 나왔다. 현재 징코는 일반의약품·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뇌 기능 개선제로 많이 사용되던 콜린 제제는 약제급여 개정 고시로 급여 범위가 축소됐다.
양 교수는 “콜린알포 사례를 보면 외상성 뇌 손상이나 머리를 부딪힌 뒤 단순히 뇌 영양제처럼 처방되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임상 근거는 매우 제한적”이라며 “하지만 징코는 근거의 양이 다르다. 수천 개의 문헌이 있고, 근거 수준으로 보면 이 영역에서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만약 어떤 환자가 머리를 다친 뒤 인지기능 저하와 관련해 약을 원한다면 콜린알포 보다는 징코를 고려할 것 같다”며 “향후 관련 근거가 더 충분히 축적된다면 은행옆 제제의 전문의약품화를 검토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부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