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고르기 들어간 ‘의료기사법’ 개정안…환자 안전인가, 직역 장벽인가

숨 고르기 들어간 ‘의료기사법’ 개정안…환자 안전인가, 직역 장벽인가

의료기사법 개정안, 국회 복지위 법안소위 제동
의사·치과의사 “단독 개원 우회로” 반발
정부 수정안에도 논란 가중…“피해는 국민들이”
의사·의료기사 간 충돌 양상

기사승인 2026-05-20 06:00:06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 관계자들이 19일 국회 앞에서 ‘의료기사법 개정 결사 저지 전국 의사·치과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 관계자들이 19일 국회 앞에서 ‘의료기사법 개정 결사 저지 전국 의사·치과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의료기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료기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가운데 의사와 치과의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환자 안전을 반대 명분으로 삼았지만, 향후 의료기사의 ‘단독 개원’을 허용하는 우회로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일단 논의에 제동이 걸렸지만, 법안 강행 시 전면 대응을 예고해 파장이 예상된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치과의사협회(치협)는 이날 국회 앞에서 ‘의료기사법 개정 결사 저지 전국 의사·치과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를 열고 “정당한 경고를 끝내 외면한다면 의사와 치과의사 전체의 단호한 의지를 모아 전면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의료기사법 개정안은 현재 의료기사가 의사나 치과의사의 ‘지도’ 아래에서만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던 것을 ‘지도 또는 처방·의뢰’에서도 업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사가 처방을 내리면 의료기사가 의료기관 밖에서도 재활치료 등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의료기사는 임상병리사와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을 일컫는다.

이 법안은 지난해 10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날 의료기사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심사했지만, 끝내 의결하지 못하고 처리가 불발됐다.

해당 개정안은 의료 현장에서 이미 처방·의뢰 기반 업무가 병행되고 있고, 방문재활과 같은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확대를 위해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전국 지역사회 통합돌봄 시행에 따라 고령자·장애인 등 의료취약계층이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와 거주공간에서 적절한 서비스를 받도록 하려면 방문 재활이나 이동형 검사 등 ‘병원 밖’ 의료 제공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 법안이 의료행위의 통제 구조 자체를 바꾸는 문제라고 보고 있다. 무면허 의료행위를 변칙적으로 허용해 환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방문재활 등 의료기관 밖에서 의료기사 업무가 확대될 경우 의사의 실시간 개입과 감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의료는 단순히 처방 한 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자 상태를 계속 확인하고 위험성을 재평가하며 문제 발생 시 즉각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처방 중심으로 방문재활 체계가 바뀌면 실제 현장에선 환자 안전 공백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통합돌봄 추진 계획상 물리치료사 방문재활은 정책이 어느 정도 정착한 오는 2028~2029년 도입될 예정인데, 현재 단계에서 법 개정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폈다.

책임 소재 문제도 제기한다. 김교웅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사고 발생 시 의사는 ‘환자 상태 변화를 몰랐다’고 하고, 의료기사는 ‘처방대로 했다’고 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 가장 큰 피해는 환자와 가족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가장 크게 경계하는 지점은 향후 의료기사 직역의 독자 업무 확대나 개원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정우 치협 회장 직무대행은 “만약 의료기사 업무가 의사·치과의사의 ‘지도’가 아닌 ‘처방·의뢰’만으로도 가능해진다면 예측 불가능한 의료기사의 독단적인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며 “명백히 보건의료 체계의 근간을 흔들며 부실 진료를 양산하게 돼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게 된다”고 했다.


19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위원장인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심사할 법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위원장인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심사할 법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의 반발이 극심하자 법안을 발의한 남 의원은 보건복지부와 논의해 의료기사 단독 개원의 가능성을 지워 개정안에 수정 반영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의료계는 국회가 심사를 강행할 경우 전면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지역의사회도 연이어 법안 규탄 및 즉각 철회를 요구하면서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안에는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똑같이 의료기사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의 한 의원 법안에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원격지도’를 통해 의료기사가 의료기관 외 장소에서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원격지도의 대상 업무와 환자 범위, 방법, 수행 장소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부산시의사회는 성명서를 내고 “국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의료 입법은 충분한 공청회와 전문가 의견 수렴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면서 “남인순·최보윤 의원 발의 개정안을 즉각 폐기하고, 한지아 의원 발의안을 중심으로 환자 안전을 담보하는 합리적 입법을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 출신인 한 의원도 정부의 수정안처럼 처방 중심으로 방문재활 체계가 바뀔 경우 환자 안전에 대한 현장의 공백이 커질 수 있다는 데 힘을 실었다. 그는 지난 1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정부 수정안은 의료체계에 미칠 파장, 환자 안전보다 ‘책임 공백’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짚었다.

의료기사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쟁은 의사·치과의사와 의료기사 간의 충돌로 번질 모양새다. 지난 7일 대한임상병리사협회와 대한의료기사단체총연합회는 부산 해운대구에서 개정안 국회 통과를 요구하는 총궐기집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이 법안이 직역 간 권한 확대 문제가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노인·장애인·만성질환자에게 필요한 방문 검사와 재활 등 지역사회 보건의료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이광우 임상병리사협회장은 “임상병리사의 검사 역량은 질병 조기 발견과 만성질환 관리에 필수적”이라며 “의사의 처방 또는 의뢰에 따라 환자의 가정을 찾아 진단검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초고령사회가 요구하는 의료체계 변화다”라고 피력했다.

이날 복지위 법안소위에선 ‘처방·의뢰’ 표현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위는 향후 추가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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