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공감대…대상 선정·사후 관리 숙제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공감대…대상 선정·사후 관리 숙제

희귀질환 치료제 등재기간 240→100일 단축
건강보험 재정 투입 가치 평가 과정 필요
美 MFN 정책에 글로벌 제약사 위축 우려
“환자 목소리 듣고 제도에 반영되길”

기사승인 2026-05-27 12:14:53
보건복지부가 27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신속등재 추진방향 공청회’를 개최한 가운데 한국GEN근육병환우회 환자들이 질문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보건복지부가 27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신속등재 추진방향 공청회’를 개최한 가운데 한국GEN근육병환우회 환자들이 질문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정부가 올해부터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 기간을 현행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희귀질환 치료 접근성을 높이되, 근거 기반으로 책임 있게 관리한다는 구상이다. 희귀질환 환자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시범사업 대상 약제 선정 기준과 사후 약가 관리 방식, 환자 의견 반영 절차를 두고 우려가 제기된다.

이은주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은 27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신속등재 추진방향 공청회’ 발표를 통해 “희귀질환 치료제는 일반 신약과 달리 환자 수가 적어 임상 근거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고, 개발 치료제가 소수이면서 질환 자체가 중증이거나 대체 치료 수단이 제한된 경우가 많다”며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개선 배경을 설명했다.

그동안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어 치료 효과를 단기간에 충분히 검증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또 일반 신약과 동일한 절차로 평가할 경우 실제 치료 현장에서 적시에 사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최근 4년간(2022~2025년) 건강보험에 등재된 희귀질환 치료제 20개의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이후 등재까지 걸린 기간을 분석한 결과, 2년11개월에서 길게는 3년10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희귀질환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건강보험 등재에 소요되는 기간을 현행 240일에서 100일로 단축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또 실사용 자료(RWE)와 추가 임상시험 등을 통해 근거를 축적할 수 있는 기간을 부여하고, 이후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를 통해 임상적 성과와 비용 효과성 등을 사후에 평가하고 급여 적정 수준도 다시 검토할 계획이다.

올해는 등재 필요성이 높은 희귀질환 치료제 23개 정도를 우선 선정해 추진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제도화를 검토해 나갈 예정이다. 시범사업 대상 약제는 희귀질환 치료제이면서 외국에서 일정 수준 이상 급여 또는 등재된 품목이다. 시범사업 신청 약제에 대해선 대체 약재가 있는지, 환자에게 신속한 사용이 필요한 약재인지, 예상되는 재정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선정할 계획이다.


이은주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이 27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개최된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신속등재 추진방향 공청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이은주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이 27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개최된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신속등재 추진방향 공청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이 사무관은 “희귀질환 치료제 등재 절차를 간소화한다고 해서 임상적 유효성 평가 자체를 생략하거나 완화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약제의 임상적 유용성은 현행 기준에 따라 충실히 검토하되, 비용과 재정에 관한 사항은 별도의 계약 절차에서 관리하고 등재 이후의 책임성을 보완하는 방향이다”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약가와 예상 청구액 협상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A8 국가(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일본·캐나다) 최저가의 일정 비율로 약가를 계약하고, 예상 청구액은 사후에 설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허가·등재 후 실사용 자료 수집 기간 동안 청구 심사 자료와 의료기관 추가 임상 자료를 연계한 레지스트리를 구축해 분석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다.

이 사무관은 “사후 평가 기준과 급여 조정 근거는 환자와 제약사가 모두 납득할 수 있도록 명확히 제시하고, 필요한 범위에서 공개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며 “이를 통해 사업 평가, 급여 조정이 신뢰성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범사업 대상과 구체적인 선정 절차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보고를 거쳐 추진할 방침이다.

시범사업 약제 선정 ‘질환 위중도’ 기준 쟁점

이날 공청회에선 전문가와 업계, 환자단체 간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추진 방향성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조민우 울산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신속 등재 제도의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전제가 필요하다. 당장 생명이 위급하거나,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기능 회복이 어렵고 환자의 삶이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 힘든 경우처럼 긴급성이 큰 환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약제여야 한다”며 “외국에서 허가를 받고 일정 정도의 기간을 거쳐 입증된 결과가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을 때 국내에도 적용해 볼만하다”고 평가했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신속 도입에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사회적 합의와 가치 평가 과정도 필요하다. 조 교수는 “가치 평가 과정에서 좋은 결과가 확인된다면 더 큰 가치를 부여할 수 있고, 반대로 기대한 효과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없다”면서 “따라서 신속 등재 이후 사후 평가 체계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하며, 업계 역시 이러한 평가 구조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보건복지부는 27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신속등재 추진방향 공청회’를 개최했다. 신대현 기자
보건복지부는 27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신속등재 추진방향 공청회’를 개최했다. 신대현 기자
시범사업 대상 약제 선정 시 ‘질환의 위중도’ 기준을 어떻게 가를지는 쟁점이다. 질환의 위중도를 기대여명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재호 한국노바티스 전무는 “기대여명이 12개월 이하 또는 24개월 이하인 환자만 위중하다고 보고 그런 치료제만 신속 등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복지부의 취지인지 의문이 있다”며 “환자가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접근성 강화라는 관점에서 대상 약제의 범위와 질환 위중도 기준은 업계와 학계가 함께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미국 정부의 ‘최혜국 약가참조 정책(Most Favored Nations, MFN)’으로 인한 제약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이 큰 점은 업계의 부담이다. 미국이 특정 국가의 의약품 실제 가격을 제약사에 요청하면 이를 공개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 전체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시장을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도 채 되지 않는 한국 시장에서 임상 결과를 토대로 비용효과성을 다시 입증하고 약가를 재평가해야 한다면 어떤 회사도 국내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전무는 “어렵게 연구개발한 희귀질환 치료제가 다른 나라에선 고가로 등재돼 환자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데, 한국에선 사후 약가 관리 과정에서 회사가 추가 비용을 들여 임상을 해야 하고 그 결과가 기존 임상 결과와 다른 방향으로 나온다면 이는 한국만의 이슈가 아니라 글로벌 이슈로 확대될 수 있다”며 “업계의 마켓 액세스 담당자들은 본사를 설득하고 이 제도의 실효성을 설명해야 하는데, 이 방식으로 제도가 운영된다면 복지부가 기대하는 희귀질환 치료제 환자 접근성 강화가 실제로 가능할지에 대해 상당한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환자단체는 이번 발표의 주체인 ‘환자’가 빠졌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급여 적정성 평가 세부 절차를 보면 급여 기준과 관련한 위원회가 나오는데 그 어디에도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내용은 없다”며 “공청회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다.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환자들이 치료제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알아줘 그것을 제도에 반영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정부는 정 사무총장의 지적에 공감한다며 환자의 건강 증진과 치료 접근성 향상이라는 제도의 목적에 맞게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강준혁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자료를 준비하고 정책을 마련하면서 그 안에 어떤 철학을 담을 때 환자의 관점이 너무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다른 정책을 추진할 때도 본질에 더 맞춰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시범사업의 본사업 전환 의지도 드러냈다. 강 과장은 “시범사업이 결국 본사업으로 전환되기 위해선 시범사업 단계에서 일정 부분 성과가 나와야 하고, 좋은 선례가 쌓여야 한다”며 “시범사업 대상 약제를 몇 개까지 할 것인지, 중증도를 어떻게 볼 것인지와 같은 부분은 운영 과정에서 일정 부분 구체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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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