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 지구촌] 악성 뇌종양을 앓아 온 에드워드 케네디 미국 상원 의원이 25일 밤 매사추세츠주 히아니스 포트 자택에서 7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으로 형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이후 이어져 온 미국 정치 명문 케네디가의 영향력도 줄어들게 됐다.
케네디 의원 가족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가족과 우리 삶의 중심이자 빛을 잃었다"면서 "그러나 그의 신앙과 낙관주의, 인내심은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ABC 방송이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상원의원을 잃어 가슴이 무너지는 심정"이라고 슬퍼했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여사는 "저는 고인이 된 제 남편에 대한 케네디 의원의 지원과 친절함을 항상 기억할 것"이라는 서한을 보냈다. 케네디 의원은 1980년 DJ가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자 구명운동에 앞장선 바 있다.
지난해 5월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은 케네디 의원은 62년 상원 의원에 당선된 이후 미국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는 47년간 의회에 제출한 법안이 2500여개에 이를 정도로 왕성한 의정 활동을 해 왔다. 시사주간 타임은 2006년 그를 역대 10대 미국 상원의원으로 선정하면서 "모든 남녀노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원"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그는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의 인권과 권익을 보호하는 진보주의자로 통했다.
최근 자신의 사망을 예견하고 매사추세츠 주지사에게 유고시 (민주당 상원 의석 60석 유지를 위해) 후임자를 조기에 선출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공화당 의원들로부터도 초당적 성향 1위로 뽑힐 정도로 의회 내에서 화합을 위해 노력해 왔다.
백만장자 사업가로 주영국 대사를 지낸 조지프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케네디 의원은 2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큰형 조지프 주니어를 떠나보낸 것을 시작으로 누나 캐슬린은 비행기 사고로, 둘째 형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셋째 형 로버트 상원의원을 잇따라 암살로 잃는 비극을 겪었다. 케네디 의원은 가문을 이을 유일한 아들이 됐지만 잇단 죽음에 대한 공포와 여성편력에 대한 추문이 터지면서 대통령의 꿈을 접었다.
케네디가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1973년 아들 에드워드 주니어의 골수암 판정 이후 첫 부인 빅토리아 조안과 사이가 악화돼 81년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또 99년에는 조카 존 F 케네디 주니어와 조카며느리 캐롤린 베세트 등을 비행기 사고로 잃는 비운을 맛봤다. 그의 사망으로 94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줄곧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아들 패트릭에게 케네디가의 영광을 재현할 책무가 맡겨지게 됐다.
케네디 의원은 그간 모든 조카와 질녀들의 '대부'처럼 살아 왔지만 누구보다도 존 F 케네디 대통령 자녀인 캐롤라인과 존 F 케네디 주니어와 가까웠다고 한다. 비운의 케네디가는 이달 초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를 떠나보낸 데 이어 케네디 의원마저 세상을 떠남으로써 9남매 중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영국 대사를 지낸 진 케네디 스미스(81)만 남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동훈 기자 dhlee@kim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