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 스포츠]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스타디움.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B조 2차전에서 맞붙은 이곳에서 전반 15분 한국의 골 그물망이 흔들렸다. 아르헨티나의 선제골이 터진 것이다.
첫 득점의 주인공은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나 카를로스 테베스(맨체스터시티)와 같은 아르헨티나 선수가 아니었다. 상대의 골문을 겨냥해야할 한국의 간판 공격수 박주영(AS모나코)이었다. 그가 생애 첫 월드컵 득점을 자책골로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결과는 1대4 완패. 경기를 마친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을 굳은 표정으로 지나가는 그를 붙잡고 섣불리 속내를 들춰내는 기자는 없었다. 대답은 묻지 않아도 뻔한 것이었다. 그렇게 닷새가 흘렀다.
16강 진출권을 놓고 나이지리아와 벼랑 끝 승부를 벌이게 된 3차전에서 1-1로 균형을 이루던 후반 5분 그에게 만회의 기회가 찾아왔다. 상대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에서 키커로 서게 된 것.
직접 슛을 할 수도 있고 동료에게 공을 연결해 어시스트를 노릴 수도 있었지만 그의 선택은 슛이었다. 오른발로 과감하게 감아 찬 슛은 큰 곡선을 그리며 상대 수비벽 오른쪽 옆을 지나갔고 골키퍼의 손까지 피해가 골문 오른쪽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가 사실상의 월드컵 데뷔골을 터뜨리는 순간이었다. 닷새 내내 굳었던 그의 표정도 순식간에 해맑게 바뀌었다. 그라운드에서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그에게 동료 선수들이 달려들어 그동안의 시름을 덜어주었다. 결과는 2대2 무승부. 비록 승리하지는 못했으나 그의 골은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견인했다.
믹스트존을 나오는 그에게 기자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프리킥 슛이)골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줄 알았다”면서도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거들어 기분이 좋다. 내가 또 골을 넣을 수 있다면 (8강으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이 될 것”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이어 “(아르헨티나전에서) 자책골을 넣은 뒤 대표팀의 형들이 나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덕분에 부담을 덜 수 있었다”고 동료들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 대해서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1~2골 차 승부가 될 수 있다”고 예상한 뒤 “내가 얼마나 골을 넣을 수 있을지 예측하기란 어렵지만 최선을 다한다면 새로운 일(사상 첫 원정 8강 진출)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더반(남아공)=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