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쥐는 체온이 높고 동굴 등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생활특성 때문에 다양한 변종 바이러스가 발생한다.
또 먹이환경 영역이 인간 생활권과 겹치기 때문에 가축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이를 전파하고, 이것이 사람에게도 전달돼 질병을 일으킨다.
과거 큰 피해를 발생시킨 사스코로나(SARS-Cov-2)나 메르스코로나(MERS-CoV) 등이 대표적인 박쥐 유래 인수공통바이러스다.
때문에 이 같은 바이러스의 전파원인 박쥐의 장기를 직접 연구하면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유리하지만, 지금까지는 주로 열대지역에 서식하는 과일박쥐만 제한적으로 활용해 한계가 있었다.
펜데믹 막는 세계 최대 박쥐 오가노이드 구축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신·변종 바이러스와 미래 팬데믹에 선제 대응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실험모델 마련에 성공했다.
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와 유전체교정연구단 공동연구진이 우리나라 서식 박쥐에서 유래한 장기 오가노이드를 제작, 바이러스 감염 특성과 면역반응을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 플랫폼을 개발했다.
오가노이드는 성체 및 배아 줄기세포를 실험실 환경에서 분화해 장기세포 구성 및 기능을 모방한 3차원 장기유사체다.
연구진은 우리나라와 동북아, 유럽 등에 널리 서식하는 식충성 애기박쥐과와 관박쥐과 5종의 박쥐에서 기도, 폐, 신장, 소장 등 다조직 오가노이드 생체모델을 구축, 이를 활용해 코로나(SARS-Cov-2, MERS-CoV), 인플루엔자, 한타 등 박쥐 유래 인수공통바이러스의 특이적 감염 양상과 증식 특성을 규명했다.
이들 고위험 바이러스가 특정 박쥐종과 장기에서만 감염되거나 증식하는 경향을 보였고, 특히 한타바이러스는 박쥐 신장 오가노이드에서 효과적으로 증식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 같은 결과는 박쥐 신장 오가노이드가 한타바이러스의 감염 특성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감염모델로 활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연구진은 박쥐 오가노이드에 다양한 인수공통바이러스를 감염시켜 박쥐의 종과 장기, 바이러스 종류에 따라 나타나는 선천성 면역반응을 정량적으로 확인했다.
선천성 면역반응은 병원체 감염 시 특정 병원체를 구분하지 않고 즉각 작동하며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에서 분비된 신호물질 ‘인터페론’을 통해 주변 세포에 항바이러스 신호를 전달해 바이러스 증식 및 전파를 억제한다.
실험결과 동일한 바이러스라도 박쥐의 종이나 감염된 장기에 따라 면역 반응의 강도와 양상이 뚜렷이 달랐다.
이는 박쥐가 다양한 바이러스에 대한 방어 메커니즘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다양한 인수공통바이러스의 자연 숙주가 될 수 있는 생물학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박쥐 오가노이드가 바이러스-면역 상호작용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플랫폼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연구진은 야생 박쥐의 분변샘플에서 포유류 오르토레오바이러스(MRV)와 파라믹소바이러스 계열의 샤브 등 두 종류의 변종 바이러스를 발견, 이를 배양해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샤브 유사 바이러스는 기존 일반적 세포배양 방식에서는 증식되지 않았지만, 박쥐 오가노이드에서는 효과적으로 증식됐다.
이는 박쥐 오가노이드가 실제 박쥐의 장기 환경을 매우 유사하게 구현해 기존 세포모델보다 더 높은 생리적 재현성과 민감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연구진은 기존 3차원 박쥐 오가노이드를 2차원 배양 방식으로 개량해 고속 항바이러스제 스크리닝에 적합한 실험플랫폼으로 확장했다.
3차원 오가노이드는 모양과 크기가 균일하지 않아 자동화된 실험이 어렵고, 분석과 평가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 반해 연구진이 개발한 2차원 플랫폼은 오가노이드 유래 세포를 평평한 배양판에 펼쳐 균일한 세포층을 형성하고 있어 실험이 용이하고 분석이 빠르다.
연구진은 이 플랫폼을 활용해 분리한 박쥐 유래 변종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렘데시비르 등 항바이러스제 효과를 정량분석한 결과 기존 세포주 시스템보다 감염억제 효과를 더욱 민감하고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박쥐 오가노이드가 신·변종 바이러스의 감염성 평가와 치료제 선별에 모두 활용 가능한 생리학적 모델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실증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김현준 IBS 선임연구원은 “지금까지의 박쥐 오가노이드 연구는 열대 지방에 서식하는 과일박쥐에 한정되었고, 장기 유형도 대부분 단일조직에 국한됐었다”며 “이번 연구는 박쥐 종 다양성과 조직 다양성을 모두 아우른 세계 최대 규모의 박쥐 오가노이드 라이브러리를 구축함으로써, 그동안 세포주 기반 모델로는 어려웠던 바이러스 분리, 감염분석, 약물반응 평가를 한 번에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본경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이번 연구는 박쥐 장기의 생물학적 환경을 실험실에서 구현한 것으로, 특히 바이러스에 대한 박쥐 조직의 감염 반응을 정량적으로 추적할 수 있어 인수공통감염병의 병리 메커니즘 연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영기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장은 “이번 박쥐 오가노이드는 글로벌 감염병 연구자들에게 표준화된 박쥐 모델을 제공하는 바이오뱅크 자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박쥐유래 신·변종 바이러스 감시와 팬데믹 대비에 기여할 수 있는 핵심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IF 44.7)’ 16일자에 게재됐다.
한편, 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는 국가 감염병 분야 기초연구 거점기관으로, 바이러스의 발병・전파부터 감염・면역, 분석・대응까지 연구 역량을 확충하고 기관 간 협력 확대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