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투자 유도하는 해외, '따상 기대'에 멈춘 한국 [상장後③]

장기 투자 유도하는 해외, '따상 기대'에 멈춘 한국 [상장後③]

기사승인 2025-05-21 06:00:08
쿠키뉴스 자료사진

공모가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금융당국은 제도 개선에 나서왔다. 하지만 공모가 고평가, 상장 초 주가 급락, 책임 공백 문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단기성 투자라는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지 않고는 어떤 제도 개선도 근본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공모가를 어떻게 정하느냐’에서 비롯된다. 해외 주요국은 공모가를 정하는 방식부터 다르다. 시장 수요를 더 넓게 반영하고 단기 매도보다 장기투자를 유도한다. 이제 한국도, 공모가 산정 방식과 목적을 다시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홍콩·일본 등 개인도 참여하는 공모가 결정 구조

한국 IPO 시장에서 공모가는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 결과에 크게 좌우된다. 기관투자자는 전체 공모 물량의 60~80%를 배정받는 핵심 투자자군으로 주관사 입장에서도 시장 영향력이 큰 수요층이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지난 1월 ‘IPO 및 상장폐지 제도 개선 공동세미나’에서 “최근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증가는 제도변화, 단기차익 기대심리 등에 기인하고 있다”며 “문제는 이런 기관투자자 증가가 수요예측 단계부터 공모주 과열 양상을 초래한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이 선임 연구위원의 ‘최근 IPO 시장의 개인투자자 증가와 수요예측제도의 평가(2021)’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기관 수요예측을 통해 공모가를 결정하고 이후 일반 청약을 받는 반면, 해외 주요국은 개인 청약과 수요예측을 병행하거나 개인투자자도 공모가 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일본은 주관사가 기업 실사를 바탕으로 공모예정가를 먼저 정한다. 대형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로드쇼 과정에서 수요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반영해 공모예정가 밴드를 1차 조정한다. 이어 약 7~8일간 기관과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이때 개인투자자들도 기관투자자처럼 희망 공모가와 배정 물량을 신청할 수 있다.

홍콩은 2주간 기관 수요예측을 진행한 뒤, 예측 마감 시점에 공모예정가 밴드를 설정한다. 이어 3~4일간 개인투자자 공모를 수행한다. 주관사는 수요예측과 개인투자자 공모 절차를 동시에 마감하고 공모예정가 밴드 내에서 최종 공모가를 결정한다. 대만은 주관사가 4영업일 동안 기관 수요예측을 실시하고, 그 과정 중간(2일차)부터 일반 청약을 병행한다. 이후 두 수요를 함께 반영해 공모가를 결정하는 구조다.

한국거래소

미국·영국 등 상장 이후에도 시장 안정성 확보 장치 


해외 주요국들은 상장 이후 시장 안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갖추고 있다. 단기 수익에 집중된 매도세를 억제하고 장기보유 유인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국내는 일정 기준만 넘기면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지만, 미국 IPO 시장은 주관사가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기관투자자만을 수요예측에 참여시킬 수 있다. 또한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 등록 전 적격 기관투자자와 소통해 IPO 수요를 판단할 수 있도록 지난 2019년부터 사전수요예측 제도인 ‘TTW(Testing the Waters)’를 운영 중이다. 

영국도 이와 유사한 파일럿 피싱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도 2022년부터 적정 공모가 밴드를 위한 기관투자자 수요 정보를 사전에 취득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사전수요예측은 증권신고서 제출 전에 일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이뤄지는데, 현재 국내에선 증권신고서 제출 전 적정 가격에 대해 고지하는 것이 사전 공모행위로 금지돼 있다. 

홍콩·싱가포르·유럽에서는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 제도는 일정기간 보호예수(락업)를 조건으로 특정 기관투자자에게 공모 전 주식을 일정비율 사전 배정하는 것을 말한다. 코너스톤 투자자의 단기 매도 제한으로 상장 직후 주가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 상장 전 일정 물량을 확정적으로 인수하는 구조기 때문에 투자 유치 불확실성이 감소한다. 일반적으로 코너스톤 투자자는 기관급 장기 투자자인 만큼 공모가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신호가 될 수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쿠키뉴스 자료사진

국내 제도도 움직인다…7월부터 개편


해외처럼 구조를 바꾸는 접근은 국내에선 시작 단계다. 금융당국도 올해 7월 개편된 IPO 제도 시행을 예고하며, 단기차익 중심의 수요 구조에서 장기투자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IPO 제도 개선의 주요 골자는 △기관투자자 의무보유 확약 확대 △수요예측 참여자격 강화 △주관사 역할과 책임 강화 등이다. 

금융당국은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코너스톤투자자 제도와 사전수요예측제도 도입을 추진키로 했지만,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도입 시점은 불투명하다. 사실 이 제도들은 국내서 도입이 꾸준히 논의돼 왔지만, 법 개정이 필요해 구체화되지 못했다. 특히 코너스톤투자자 제도는 한국거래소가 2018년 사업계획에 해당 제도를 포함하면서 공식 논의가 시작됐고 금융위원회도 2020년과 2022년에 도입 검토 계획을 발표했지만 별다른 진전 없이 7년간 답보에 머물고 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