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80)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80)

영국의 전원을 그린 존 콘스터블

기사승인 2025-08-04 09:00:03
존 콘스터블, 오스밍턴 밀스 위 다운스에서 본 웨이머스 만(Weymouth Bay from the Downs above Osmington Mills), 캔버스에 유채, 1816년경, 보스턴 미술관

존 콘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은 해안 풍경을 종종 그렸는데 이는, 밍스턴 마을 근처 도싯셔(Dorsetshire) 언덕에서 레드클리프 포인트를 통해 웨이머스 만을 바라본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구름은 화면의 반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웅장함을 내뿜는다. 왼쪽 먹구름 아래 멀리 포틀랜드 섬이 보인다.  

콘스터블은 1816년 9월 런던에서 북동쪽으로 90km정도 떨어진 에섹스 지방에 있는 <위븐해 공원Wivenhoe Park>을 완성하여 그림 값을 받는다. 그 자금으로 40살이 된 콘스터블은 그 해10월 7년간 구애한 마리아 빅넬(Maria Bicknell)와 처가의 반대를 물리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오스밍턴 밀스에서 6주간 신혼여행을 보냈다.

이 작품은 놀라운 파노라마 원근법과 지형을 정확히 묘사한 것으로 보아 야외에서 유화스케치로 그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종종 콘스터블은 스케치를 그렸고 심지어 밖에서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다. 

1823년, 그는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며 이 곳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했다. “멀리 도싯셔 언덕은 당신과 나에게 항상 소중한 기억이 될 오스밍턴의 옛 모습을 그리워하게 했습니다.” 화가 부부는 7명이나 되는 자녀를 낳아 행복하게 살았다. 부인이 결핵으로 죽고 난 뒤 콘스터블은 충격에 빠져 검은 상복을 입고 자녀들을 혼자 키웠다. 

콘스터블은 19세기 초 영국 풍경화의 발전에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건초 실은 마차>가 1824년 프랑스 살롱에 출품되었다. 그리하여 17세기 네덜란드의 풍경화도 주목을 받았고, 이후 1830년대 파리 근처의 퐁텐블로 숲 가의 바르비종(Barbizon)에 모여 도시의 번잡한 소음으로부터 탈출하여 조용하고 소박한 자연 풍경을 그리는 바르비종 파가 생겼다. 그래서 보스턴 미술관에서는 콘스터블의 풍경화를 바르비종 파와 함께 회랑에 전시해 놓았다. 

보스턴 미술관 내부

존 콘스터블, 스토어 계곡과 데뎀 교회(Stour Valley and Dedham Church), 1815년 경, 캔버스에 유채, 55.6x77.8cm, 보스턴 미술관

토마스 피츠휴(Thomas Fitzhugh)가 신부 필라델피아(Philadelphia Godfrey)의 결혼 선물로 의뢰한 이 비옥한 들판의 이미지는 고드프리의 가족인 올드 홀 파크(Old Hall Park)의 부지 언덕이다. 이 그림에는 결혼 후 런던으로 떠날 예정이었기에 신부의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익숙한 풍경을 주문한 신랑의 자상한 마음이 담겼다.  

전경에는 농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수레에 건초를 싣고 있고, 멀리 데뎀 교회가 보인다. 데뎀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지대 풍경으로 손꼽히며, 특히 스토어 강 근처의 수변 초원이 유명하다.  

콘스터블의 풍경은 그가 살고 일했던 영국 카운티의 특정 위치를 포착한다. 서퍽(Suffolk) 카운티와 에식스(Essex) 카운티의 경계를 따라 흐르는 스토어(stour) 강을 그린 풍경화이다. 이 지역은 화가가 즐겨 묘사한 다양한 그림 덕분에 생존시에도 “콘스터블의 나라”로 알려지게 되었다. 콘스터블은 “나는 내 자리를 가장 잘 그려야 한다. 그림은 감정을 표현한 또 다른 단어일 뿐이다.” 라고 주장했다.
 
존 콘스터블, 스토크 바이 네일랜드(Stoke-by-Nayland), 1836, 캔버스에 유채, 126x169cm, 시카고 미술관

“여름 아침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콘스터블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에 대해 얘기했다. 런던에서 여러 해를 보낸 후에도 콘스터블은 어렸을 때부터 자랐던 시골을 계속해서 묘사했다.

<스토크 바이 네일랜드>는 서퍽에 있는 고향 마을 이스트 버그홀트(East Bergholt)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이다. 그는 캔버스의 왼쪽, 마을을 향한 밝고 바람이 잘 붙는 풍경과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그늘진 터널 같은 시골길로 나누었다. 콘스터블은 편지에서 이 그림이 “7월이나 8월, 밤에 약간 소나기가 내린 후 다음 날 아침, 8 ~9 시의 시간대를 묘사하여 그림의 그늘진 부분의 이슬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화가는 표면을 흰색 하이라이트로 장식하여 반짝이며 젖은 효과를 연출했다. 그래서 전체가 이슬이 맺힌 것처럼 보이며, 전경에는 개울과 웅덩이가 있다. 그리고 비옥한 땅을 강조하며 빗물의 무게로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물을 강조했다.

붓과 팔레트 나이프로 그려진 <스토크 바이 네일랜드>는 콘스터블이 공개적으로 전시한 그림으론 완성도가 부족하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림을 본 순간 이전의 콘스터블의 그림과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미완의 작품이 때론 완성작보다 많은 것을 말해주곤 한다. 화면 위에는 이미지에 대한 자유로운 실험과 탐색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며, 이는 작가가 그림을 통해 세상과 교감했던 순간의 흔적이다.

거칠고 생생한 표면 질감은 단지 붓으로 그린 풍경이 아니라 실제 자연을 눈앞에 펼쳐 놓은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자연 요소와 인공 건축물이 동시에 어우러진 이 장면 속에는 콘스터블이 꿈꾸던 시골의 조화로운 이상향이 고요하게 배어 있다. 그는 자연을 낭만화하거나 이상화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속에서 인간과 환경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한 화가였다.

"제분소 댐 등에서 새어 나오는 물소리, 버드나무, 오래된 썩은 판자, 끈적끈적한 기둥, 벽돌 세공,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합니다." 

이 스케치는 결국 완성되지 않았지만, 콘스터블의 창작과정과 예술관을 더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붓질의 속도와 흔적, 긁힘조차도 작가가 얼마나 자유롭고 진지하게 자연과 마주했는지를 말해주는 언어다.

완벽을 향한 여정은 종종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콘스터블의 이 작품은 바로 그런 여정의 한 지점에서, 우리가 예술을 통해 자연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햄스테드(Hampstead) 콘스터블의 집

콘스터블은 아내의 건강 때문에 1819년부터 매년 여름을 햄스테드에서 보내며 이곳에서 100점 이상의 하늘 풍경과 구름을 그렸다. 그는 이곳에서 영국의 변화무쌍한 자연과 하늘의 모습을 관찰하고 화폭에 담았다. 콘스터블은 “두시간 전의 풍경과 어제의 풍경과 오늘의 풍경은 절대 같을 수 없다”고 말했다. 

보불전쟁(1870~71)으로 런던에 피신에 있던 모네는 콘스터블과 터너의 풍경화를 보고 인상주의 포문을 연 <인상, 일출>을 그리게 된다. 이후 모네를 상징하는 연작 시리즈는 콘스터블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햄스테드의 숲길

존 콘스터블, 주교의 땅에서 본 솔즈베리 대성당, 약 1825년, 캔버스의 유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이 그림은 현재 뉴욕 프릭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는 1826 년의 그림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존 콘스터블, 주교의 땅에서 본 솔즈베리 대성당, 1826, 캔버스에 유채, 88.9x112.4cm, 뉴욕 프릭 컬렉션

콘스터블이 그린 솔즈베리 대성당은 단순한 건축물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한 화가가 친구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세계관을 담아 완성해낸 감정의 풍경이다.

이 대성당의 그림은 오랜 친구인 솔즈베리 주교 존 피셔 박사, 그리고 그의 조카이자 <백마>의 후원자였던 존 피셔 대주교와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콘스터블은 이들을 위해 남쪽 정면을 여럿 그렸는데, 그 첫 번째 버전은 흐린 하늘과 무거운 분위기를 띤 채 지금은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이 어두운 하늘 아래의 대성당은 피셔의 요청과는 거리가 있었다. 콘스터블은 이에 응답하듯, 구름을 걷어내고 하늘을 열었다. 두 번째 버전에서는 밝은 광휘가 건축물을 감싸고, 구도 또한 더욱 개방되어 있다. 마치 대성당이 빛을 향해 서 있는 듯하다.

이 두 작품은 같은 구조물을 그렸지만, 그 정서는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숭고함과 경외의 감정을, 후자는 평온함과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이처럼 그의 붓끝은 대성당을 넘어서, 관계와 감정, 그리고 그날그날의 하늘이 지닌 의미를 함께 담아낸다. 같은 장소, 다른 하늘. 그 사이에서 콘스터블은 말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 당신의 풍경은 오늘 어떠냐고.

콘스터블은 이전처럼, 주교가 아내에게 대성당의 첨탑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담았다. 그 뒤로 양산을 쓴 젊은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는 아마도 딸들 중 한 명으로 보인다. 작품이 완성될 무렵 주교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족은 이 그림을 소중히 간직했다. 끝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최금희의 그림 읽기> 출간 안내


<작가의 말>
그동안 발표해 왔던 칼럼들을 한데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짧은 글 속에 담긴 예술, 삶에 대한 사유들이 이번 모음집에서 새로운 숨결로 다가가길 기대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걷던 사색의 시간들이 이제는 종이 위에서 다시 이어지길 바랍니다. 작은 쉼표가 필요한 순간마다 곁에 두고 펼쳐 볼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출간 소식에 많은 관심과 따뜻한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