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정의 1도 올린 세상] 거짓말이 불가사리(不可殺伊)를 만났을 때

[이연정의 1도 올린 세상] 거짓말이 불가사리(不可殺伊)를 만났을 때

이연정 충무교육청 교육연구사

기사승인 2025-08-05 10:03:20
이연정 충무교육원 교육연구사

여덟 살,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동안 겪지 못했던 많은 교칙과 법칙은 아이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웠던 유치원과 학교는 전혀 다르다. 딱딱한 책상과 걸상에 앉아 있는 걸 제일 어려워했다.

“복도에서 뛰지 말아라, 책·걸상 위에 올라가지 말아라,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이용해라, 수업 시간에 조용히 해라, 발표하려면 손을 들어라, 친구를 때리지 말아라, 착한 말을 써야 한다” 등 명령과 지시로 관철된 많은 교칙은 고통스러운 인내심과 기억력을 요구했다. 아이는 교칙이나 규칙에 대한 지속적인 확인과 추궁에 당황해하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제법 솔직했던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후 금방 들통날 거짓말이 늘었다. 예를 들면 “숙제는 다 했니? 일기는 썼니?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투지는 않았니?” 등 일상에 대한 사소한 질문에 아이는 “다했어요. 썼어요. 안 싸웠어요.”라고 대답했다. 가장 빠른 해결 방법은 사실을 확인하여 거짓말의 최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처벌 중심의 해결법은 거짓말에 내성을 일으키기 쉽다. 즉, 거짓말은 처벌의 강도만큼 강해질 것이고, 그 논리는 더욱 교묘해질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심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거짓말은 불리한 상황에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숨기거나 왜곡하는 행동이다. 불리한 상황을 보편적인 상황이 되도록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이 중요하다.

“숙제는 어떻게 하고 있니? 일기는 언제쯤 쓸 예정이니?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과는 재밌었니?” 등 문장의 시제는 완료형에서 진행형으로, 결과보다는 과정 중심으로, ‘예 혹은 아니오’를 요구하는 이분법적 질문보다는 상황을 설명하는 질문으로 바꾸었다. 간혹 거짓말을 할 때에는 이유를 찾아보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는 응원해 주었다. 그러는 동안 믿음은 아이와 함께 쑥쑥 자라났던 것 같다. 말랑한 양심과 수치의 눈물을 아는 청년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은 매일매일 거짓말을 읽는다. 

정직, 선행, 봉사와 같은 선량한 사람들의 기사는 뉴스 알고리즘에서 멀어져 갔다. 거짓을 사실과 구분해야 하는 초인적 분석 역량과 과장과 조작으로부터 감춰진 진실을 찾아야 하는 희한한 숨바꼭질이 스마트폰에서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다. 어떤 거짓말은 공동체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놀라웠고 파급력도 컸다. 진실을 잃어버린 사회는 불신을 키웠고, 갈등과 대립으로 치달았다.  

우리는 일상에게 크고 작은 거짓말을 수없이 마주하며 살아간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한 하얀 거짓말, 본인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방어적 거짓말, 인정과 호감을 요구하는 과장된 거짓말 등을 자신도 모르게 일삼기도 한다. 하지만 거짓말이 악의적 의도와 습관을 갖게 된다면 개인뿐 아니라 사회를 위협하는 암적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이른바 사회적 문제가 되는 가짜 뉴스나 정보의 왜곡, 딥페이크와 조작 등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거짓말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거짓말이 가진 대표적 증상은 호흡이 가빠지거나 얼굴이 붉어지고 몸이 배배 꼬이거나 손바닥이 땀으로 젖는다. 특히 거짓말은 마음의 창 앞에서는 더욱 약하다. 눈을 필요 이상 깜박이거나 시선을 회피하고, 두리번거리거나 오히려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지나친 긴장감이나 감정의 억제로 인한 부작용으로 말을 더듬거리거나 같은 말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평소와 다른 침묵이 동반하기도 하고, 답변이 늦어지기도 한다. 최초의 거짓말은 순수한 욕망의 산물일지 모르나 거짓은 쉽게 습관화되고 진실을 가리기 위해 변형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치 불가사리(不可殺伊)처럼. 

쇠를 먹고 악몽과 사악함을 키운다는 전설 속 괴물인 불가사리는 불가살이(不可殺伊)로 ‘절대 죽일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을 가진다. 불가사리는 밥알처럼 작은 괴물이었다. 처음에는 바늘부터 먹었지만, 점차 못, 숟가락까지 모든 쇠붙이를 먹어 가며 몸집을 키웠다. 아주 작은 악행이 더 큰 악행을 불러오듯 거짓말 역시 중독성과 확장성이 크다. 다행히 불가사리가 불(火)에 취약했듯, 거짓말은 신뢰와 믿음으로 키워진 양심에 취약하다.  

아이의 거짓말은 성장의 과정일 수 있다. 양심을 키우는 올바른 교육이 없다면 아이는 결국 불가사리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서툰 거짓말이 쇠붙이 갑옷을 입지 않도록 나부터 양심에 불을 지펴보자.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