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뉴스 전북본부 데스크칼럼 <편집자시선>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현안들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하고 격려할 것은 뜨겁게 격려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주변의 정치적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전북특별자치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와 완주군의 행정구역 통합을 두고 우범기 전주시장과 유희태 완주군수의 ‘맞짱 TV 공개토론’이 세 차례 잇달아 펼쳐졌으나 두 지자체장은 기존 입장만 반복한 채 설전을 벌였다. 새로운 정보와 논리랄 것도 없이, 공론의 장을 마련했다는데 의미를 찾기에도 크게 부족했다는 평가다. 일부에서는 ‘전파 낭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 시장은 ‘주민투표’, 유 군수는 ‘선(先) 여론조사’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우 시장은 “주민투표는 참여민주주의의 근본인 만큼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 냉철한 가슴을 가지고 판단해 달라”고 당부한데 반해 유 군수는 “행정안전부 결정 단계에 앞서 투명한 여론조사를 진행해 반대 여론이 높으면 구태여 주민투표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세 차례 토론 때마다 전주시의 재정문제, 105개 상생방안, 전주시청 이전, 혐오·기피시설의 완주 배치 문제, 복지 혜택 축소 등이 단골로 등장했다.
전주시의 6천억원대 지방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우 시장은 “전주시 빚이 금년 말이면 6천억 원을 넘는데 이 빚은 단순한 적자가 아니라 자산을 늘리기 위해 사용한 것이며 전주시는 11조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유 군수는 “전주시의 6천억원 빚에서만 매년 약 190억원의 이자가 발생한다”며 “이를 충당하려면 다른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고, 관광거점도시로 선정돼 국비 500억원 등을 지원받기로 했지만 매칭이 되지 않아 추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통합 찬성단체들이 제시한 105개 상생발전 합의안과 실효성에 대해서도 이견이 컸다.
유 군수는 ‘완주군과는 전혀 협의한 사실은 없다며 그 내용도 구체성이 부족했고, 대표성 또한 결여돼 있다’고 비판했고, 우 시장은 ‘105개 상생발전 과제는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법제화를 통해 강제력을 가질 예정이라며 완주군과 의회에서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해 주면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전주시 통합 청사 이전을 놓고도 유 군수는 ‘시청이 완주로 온다는 자체를 완주군민은 믿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전주시청을 도청으로 옮기고 현 시청 자리를 소리문화의 거점으로 발전시키고 도청을 만경강으로 옮길 것을 도지사와 상의를 해 달라’고 제안했다.
이에 우 시장은 ‘도청은 별도의 문제고 진행되는 문제들이 마무리된 후에 논의가 필요하다’고 얼버무렸다.
혐오·기피 시설 이전에 대해 우 시장은 ‘전주에는 이미 공공시설이 설치돼 있고, 완주군도 이를 함께 활용하고 있다며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시설이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으나, 유 군수는 ‘완주 입장에서 보면 우려는 현실적인 문제라며 완주의 가용면적이 4배나 넓어 결정 구조가 바뀌면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행정통합 이후 완주군의 복지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두고도 유 군수는 ‘전주에는 돈이 없다’고 직격했고, 우 시장은 ‘현재 받고 있는 복지혜택 축소는 없고 통합 후 미래지향적으로 복지혜택을 키우자’고 제안했다.
완주·전주 행정구역 통합을 놓고 찬성 측과 반대 측이 서로 유리한 주장만을 펼치고 두 지자체장의 토론마저 ‘맹탕’으로 끝나면서 주민들은 더 큰 혼란에 빠지는 모양새다. 여기에 전북자치도지사와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자치단체와 정치권의 자존심 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다.
완주가 지역구인 안호영 의원은 전주·완주 통합 추진 절차를 ‘정치쇼’라고 비판하고 ‘전주와 완주에 익산시까지 특별자치단체로 묶는 전북형 메가시티’를 제안하며 김관영 도지사에게 토론을 제안했다. 김 지사도 통합 찬반 토론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 성사 여부가 주목되는 가운데 갈등만 키우는 것은 아니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김 지사가 이재명 대통령과의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전주·완주 통합에 대한 지원을 건의했으나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와 여당은 ‘주민이 원하는 통합을 지역 스스로 정리하는 게 우선’이라며, 지역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의 생각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중앙정부나 당이 나서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을 직접 중재하기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른다는 입장이다.
당초 예상했던 9월 전주·완주 통합 주민투표 일정도 미뤄지는 분위기다. 지난 7월 임명된 윤호중 행정안전부장관의 업무 파악과 일정을 고려하더라도 한 달 내 주민투표를 치르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클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10월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완주·전주 행정통합 찬성 측과 반대 측의 홍보전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완주군 공무원들의 조직체인 노조까지 반대하는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고, 완주군의회는 군민을 대상으로 한 두 차례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1.0%와 65.0%의 통합 반대 의견이 나왔다고 공개했다.
통합 논의가 길어질수록 지역 민심은 양분하고 찬·반 양측 감정의 골 역시 깊어질 수밖에 없다. 완주·전주 통합을 추진했던 지난 세 차례 선례를 봐도 주민 갈등과 후유증은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상처로 남았다.
통합을 결정할 절차들이 졸속으로 진행돼도 안 되겠지만 주민투표든 여론조사든 보다 빠른 결론을 내고, 결과에 승복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정부도 조기에 결론을 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지역에서는 통합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분열과 갈등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