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선거법 파기환송심 연기에…‘헌법 84조’ 해석 두고 다시 ‘시끌’

李대통령 선거법 파기환송심 연기에…‘헌법 84조’ 해석 두고 다시 ‘시끌’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기일 ‘추후 지정’
민주 “당연한 결정…형소법 예정대로 추진”
국힘 “사법부 역사 큰 오점…입법·정치적 대응”

기사승인 2025-06-09 19:28:41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 2차 태스크포스(TF)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법원이 재판 연기의 근거로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명시한 헌법 84조를 들면서, 정치권에서는 해당 조항의 해석과 적용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7부(이재권 부장판사)는 오는 18일로 예정된 이 대통령의 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심 기일을 변경하고 추후 지정(추정)하기로 했다고 9일 밝혔다. 

기일 추정은 재판 일정을 연기하거나 변경하면서 다음 기일을 지정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법률상 소송 절차가 진행되기 어렵거나 중단되어 사건의 결론이나 감정 결과를 기다려야 할 때, 기일 지정이 실질적으로 무의미해지는 상황에서 활용된다.

서울고법은 이번 결정을 “헌법 제84조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면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헌법 84조에 명시된 ‘소추’의 의미를 놓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소추’에 공소 제기뿐 아니라 공소 유지도 포함된다고 해석하며, 재직 중인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 절차 역시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판부가 재판 연기의 근거로 헌법 84조를 명시한 만큼, 사실상 진행 중인 형사 재판도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에 포함된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 재임 기간에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 재판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당선 이후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정지하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반면 국민의힘 등 야권은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굴복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헌법 84조에 따라 재판이 중단된다는 명확한 해석이 필요하다”며 “(선거법 사건 기일이 연기됐다고 해서) 형사소송법 개정안 추진을 보류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조 수석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공직선거법 외 4개의 재판이 동시 진행되고 있는 점을 들어 “법원이 개별 재판부에 맡기겠다는 태도를 갖고 간다면 곤란하지 않겠는가”라며 “개별 재판부의 의견으로 정리되면 헌법 정신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될 수밖에 없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오는 12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이 재판을 안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헌법 84조의 취지에 따라 임기 이후로 연기하자는 것”이라며 “오늘 서울고법의 조치도 같은 맥락이다. 보복성 표적 수사와 억지 기소로 어차피 무죄가 나올 게 뻔한 재판에 일 잘하는 대통령의 시간을 허비해서 되겠는가. 재임 중 재판을 중지하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이 대통령을 100% 부려 먹어야 한다”고 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미국 검찰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기소 자체를 취소한 것처럼, 우리나라 검찰도 현직 대통령에 대한 헌법 조항을 적극 인용해 정치적 기소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고법의 재판 연기 결정에 “사법부의 흑역사”라며 맹비난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이 대통령이 5건의 재판을 중지 없이 끝까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헌법 84조는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지 이미 기소된 형사 사건의 재판까지 중단하라는 것이 아니”라며 “법원 스스로 통치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원들과 함께 헌법 질서를 지키기 위한 입법적·정치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같은 자리에서 “헌법 84조는 대통령에 대해 새로 기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지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며 “권력의 바람 앞에 미리 알아서 누워버린 서울고법 판사의 판단은 두고두고 사법부의 흑역사로 남을 것”이러고 했다. 

검찰 출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꺾은 고법 결정은 사법부 역사에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며 “헌법 84조는 대통령 직무집행과 무관하게 임기 시작 전에 이미 피고인 신분에서 진행 중이던 형사재판을 중지하라는 조항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동훈 개혁신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이미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해 형량만 정하면 되는 데도 사법부는 이 대통령 취임 며칠 만에 기일을 미뤄 권력 앞에 자발적으로 굴복했다”며 “대통령이 되면 죄가 사라지는가. 사법부는 독립을 포기했고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날을 세웠다. 
권혜진 기자
hjk@kukinews.com
권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