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를 둘러싼 면세업계와 공항공사 간 갈등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출국자 수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음에도 정작 면세 매출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임대료를 둘러싼 긴장이 심화하는 모습이다. 법원까지 나서 조정 절차에 돌입했지만 인천공항공사가 협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 내 면세점 임대료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법원이 나서 회계법인을 통해 임대료의 적정성을 감정하는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지난 4월과 5월에 걸쳐 인천공항공사를 상대로 인천지방법원에 민사조정 신청을 제기한 바 있다. 대상은 1·2 여객터미널 내 화장품·향수·주류·담배 매장으로, 양사는 현재 부과되는 임대료가 과도하다 주장하며 약 40% 수준의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지난 2023년 7월부터 10년간 인천공항 출국장 면세점 운영권을 확보해 현재 8년가량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다. 입찰 당시 제시된 여객 1인당 수수료는 약 1만원 수준으로, 최근 공항 이용객 수를 감안하면 양사의 월 임차료는 각각 약 300억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양사는 중국인 단체관광객 유입 부진, 개별 관광객의 소비 패턴 변화, 고환율 등으로 면세점 구매자 수가 급감했으며 이에 따라 여객 수에 연동해 산정되는 현재의 임대료 체계는 영업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각각 697억원, 35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두 회사는 지난해에만 전체 매출의 39%에 달하는 전체 5051억원을 임차료로 납부한 것으로 나타나 임대료 부담이 손실 확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신라면세점은 올해 상반기에만 16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신세계면세점 역시 1분기에 23억원의 손실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지난 6월30일 1차 조정에 이어 오는 14일, 2차 조정기일을 예정해 뒀다. 그러나 인천공항공사는 해당 조정절차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실질적인 협의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오는 14일 열리는 2차 조정기일에는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며, 면세업계가 주장하는 40% 수준의 감면 요구는 사실상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의 조정 절차가 진행 중인 만큼 상황을 지켜보겠지만 현재로서는 임대료 조정 계획이 구체적으로 마련된 바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인천지방법원은 지난달 14일자로 삼일회계법인을 포함한 외부 전문기관에 임대료 감정을 의뢰하는 ‘감정촉탁결정’을 내려 현재 감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 법원이 당사자들의 주장과 제출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현 시점에서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임대료 수준을 산정하는 것이 조정 절차의 핵심이라 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감정 결과는 내달 초 나올 예정이며 면세점 업계는 이를 바탕으로 조정이 실질적인 협의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업계는 인천공항공사가 조정기일까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적자를 감수하고 있는 면세점들이 최악의 경우 철수까지 검토할 수 있다며 공항공사 측의 보다 적극적인 협의 자세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업계는 출국객 수가 회복세를 띠고 있는 상황임에도 임대료 부담으로 인해 실적 반등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한 인원은 3531만1000명으로 팬데믹 이전 수준에 근접했으며, 올해 상반기 출국자 수 역시 1808만8352명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상반기를 웃돌았다. 반면 같은 기간 인천공항 면세점 매출은 1조1601억원으로 2019년 상반기(1조3866억원) 대비 83.7% 수준에 그쳤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임대료뿐만 아니라 외국인을 포함해 국내 여행객들도 면세점 쇼핑에 대한 선호가 낮아진 데다, 경기 침체로 인해 쇼핑 품목의 단가 자체가 낮아지는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을 중심으로 올리브영, 편의점 등 체험형·저가형 쇼핑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면세 산업은 다이궁 중심의 가수요를 줄이는 등 구조적인 변화 속에서 업계 전반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의 임대료 체계는 과거 면세업이 호황이던 시절을 기준으로 설정돼 있는데, 이는 현재의 매출 구조나 소비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단순히 고객 수에 연동된 방식이 아니라 실질 매출 등을 기준으로 공항과 면세점 양측이 모두 수용 가능한 새로운 임대료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