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주민들 거의 다 떠났죠. 그나마 살던 사람들도 거의 다 이사 갔어요. 살고 있는 사람도 몇 없어요” (주민 A씨)
5일 방문한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충정아파트 외부는 녹색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는 상태였다. 모서리가 부셔져 있는 벽돌 계단을 올라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내부. 정면에 보이는 계단을 따라 살펴본 내부 복도의 천장과 벽은 시멘트가 벗겨져 조각이 떨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복도 천장을 보수하려 했는지 나무 널빤지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층층마다 집 현관문 앞에는 거주민들의 짐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빨래를 밖에서 말리는 듯 옷들이 외부에 널려 있는 집들도 있었다. 장독대가 나와 있기도 했다. 여름이라 더운지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생활하는 주민도 있었다. 복도에는 TV에서 들려 나오는 방송 소리와 주민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충정아파트는 국내 최고령 아파트다. 1937년 일제강점기에 준공돼 올해 89살을 맞이했다. 1932년 충정아파트 일대 부지를 사들였던 일본인이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을 지었다. 당시에는 소유주의 이름을 따 ‘도요타 아파트’로 불렸다. 이후 주거용 아파트로 사용되다가 호텔로 업종이 바뀌었고 6‧25 전쟁 당시에는 유엔 전용 호텔로 활용되는 등 여러 용도 변경을 거쳐 지금의 아파트 형태로 남게 됐다.
충정아파트는 노후화되면서 심각한 안전 문제를 가지고 있다. 노후화, 불법 증축 등이 맞물려 서대문구가 실시한 아파트 정밀 안전진단에서 최하 등급인 E등급(즉시 철거) 판정을 받았다. 서울시는 ‘마포로 5구역 제2지구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및 정비계획 결정안’을 가결하며 충정아파트 철거 계획을 밝혔다.

충정로역 9번 출구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초역세권’ 아파트가 즉시 철거 판정을 받기까지 방치된 이유는 정비사업이 수차례 무산됐기 때문이다. 가장 처음 재건축이 논의된 시점은 1979년이다. 당시 충정아파트 일대가 도시환경정비사업 구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주민들의 갈등에 부딪혔다. 4층 이하 세대와 5층 세대가 보상금 문제로 대립했다. 충정아파트는 본래 4층으로 5층은 불법 증축된 것이기에 5층 세대는 토지 지분이 없었다. 재개발 논의가 이어지면서 5층 주민들은 보상을 원했다. 하지만 4층 이하 세대들은 4층 세대는 지분이 없다며 반대했다.
충정아파트를 문화재로 보존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서울시는 충정아파트를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 공식 인정해 2013년 ‘100년 후의 보물, 서울 속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2019년에는 지역 유산을 지키자는 의미에서 충정아파트에 문화시설 자격을 부여하려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 등으로 무산됐다.
오랜 시도 끝에 충정아파트는 주상복합 시설로 탈바꿈을 시도 중이다. 현재 충정아파트를 포함한 인근 저층 주택을 지하 6층~지상 28층, 총 192가구 규모의 주상복합 시설로 재건축하는 사업이 추진 중이다. 총 사업비는 약 1314억원에 달한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시공사 선정 이후 관리처분이 나면 충정아파트 철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충정아파트는 지난 2021년 9월 이후로 매매 거래가 끊긴 상황이다. 당시 충정아파트 전용 90.91㎡가 6억원에 거래됐다. 전월세 거래만 유지되는 상태다. 지난 4월 전용 69.09㎡가 보증금 1000만원, 월세 53만원에 체결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