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이슈추적] 암환자에게 희망고문인 맞춤형 표적 항암제2014-08-07 08:45:55

-연재순서

①암환자에게 희망고문인 맞춤형 표적 항암제

②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이란

③[기고] 더딘 항암제 건강보험 급여화, 환자는 답답하다(안기종 환자단체연합 대표)

④[현장에서] 암환자의 희망고문이 더 안타까운 이유는

우리나라 현재 암환자는 100만명을 훌쩍 넘는다. 암환자 및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과중한 경제적 부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되어왔다. 한국의료패널의 연구에 따르면 암환자 가구는 다른 환자 가구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의료비를 지출한다.

또한 진료비 부담으로 입원 병원의 수준을 낮추거나 고가의 신약 등 비급여 진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따라 암환자 생존율도 3~5년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해 생명마저 경제력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암환자를 비롯해 중증질환으로 신체적,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 보장성 강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대체약제가 없거나 사회적 요구도가 큰 품목을 우선 검토대상으로 보고 15개의 우선 순위 품목을 작년 7월 발표했다.

이 약들의 사회적 요구도와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15개 항목 중 1년 간 급여를 인정받은 항목은 25%에 지나지 않으며, 여기에 포함되어 있던 품목들도 최근 비급여 판정을 받음으로써 이 정책에 대한 실효성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들 질환자 대부분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우선 검토대상의 신약이 보험을 받기까지 몇 년씩 걸려 생명을 담보로 한 환자들의 희망고문이 계속되고 있다.

◇“돈을 마련하기 어려워서 이제 치료를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A씨(40세, 남)는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두 딸이 있다. 잦은 기침이 낫지 않아 감기인가 싶었는데 평소 흡연도 하지 않고 가족력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폐암 4기를 진단받았다. 폐암 진단을 받으면서 A씨는 EGFR, KRAS 라는 2개의 유전자 검사를 했다. 비급여 유전자 검사에 수십만원을 썼지만 두 가지 모두 음성이었기 때문에 표적할 유전자 대상이 없어 일반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두주가 채 지나기도 전에 숨이 차고 호흡이 힘들어지는 등 처음 진단할 때보다 상황이 점점 나빠졌다.

이후 ALK라는 역시 비급여의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고, ALK 유전자 변이가 발견됐다. 다행히 ALK 유전자로 인한 폐암에는 표적 항암제가 존재한다. 이러한 특수 환자의 경우 일반 항암제보다 표적치료제가 보다 우수한 효과를 보인다. 그러나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한 달에 약값만 수백만원이 든다. A씨는 “지금 돈이 문제인가요, 아이들이 저렇게 어린데 하루라도 더 살아야죠.”라며 표적치료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약은 하루 한 알만 복용하면 되고 화학항암치료와 달리 독성도 별로 없어 병원에도 자주 다닐 필요가 없다. 치료효과도 빨리 왔다. 그러나 놀랍게 호전되는 것에 대한 기쁨과 달리 매달 수백만원의 치료비가 점차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남은 돈이 별로 없다고 형편이 닿는데 까지만 치료를 하고 그만두어야겠다는 A씨. 몸은 좋아졌는데 마음에 병이 생긴다.

◇가구소득보다 더 많은 비용을 의료비로 지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1977년 처음 시행돼 적은 건강보험료를 걷는 대신 중요 질환의 의료 서비스만 보장하는 형태로 전 국민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리게 됐다. 하지만 보험료 부담이 낮은 대신 보장 급여도 적기 때문에 중증질환으로 인한 의료비 부담을 겪는 국민들은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리기 어려웠다. 일례로 상급병실 차액이나 선택진료비, 그리고 고가의 항암제 같이 비급여 진료비 비중이 높은 중증질환 환자의 실제 본인 부담율은 24% 로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켰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가구 총수입에서 의료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초과하는 경우를 ‘재난적 의료비 지출(catastrophic health expenditure)’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WHO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재난적 의료비 지출을 경험한 가구 비율은 영국의 40배다. 국민의 약 15%가 무보험 상태인 미국과 비교했을 때도 약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진료비가 연간 500만원 이상 발생한 상위 50개 질환 중 의료비 부담이 과중한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 환자의 진료비가 전체의 61%를 차지한다. 즉, 많은 사람들이 언제 의료빈곤계층으로 전락하게 될지 모르는 현실이다. 전체 진료비 중4대 중증질환의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다른 질병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암환자의 실제 진료비 보장율은 다른 4대 중증질환 중 가장 낮아 그들의 경제적 부담은 갈수록 심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보장성 강화 정책?

정부는 이러한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4대 중증질환 보장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연달아 내놓았다. 특히 최근에는 항암제, 희귀난치질환 치료제 등 고가 약제에 대한 보험급여 확대와 항암제 선택 및 치료진단 관련 유전자 검사를 보험급여에 포함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하나가 위험분담제도다. 위험분담제도 도입으로 고가신약의 효능, 효과나 보험 재정 영향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의약품의 투여비용을 제약사가 일부 분담하게 하여 환자들이 경제적 부담을 덜게 됐다.

그러나 위험분담제도조차 항암제 약제비를 줄이기 위한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우선, 우리나라의 항암제 보험등재율은 선진국의 평균 등재율의 절반 수준이고, 급여평가율 또한 낮아 다양한 항암제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하다. 우여곡절을 겪고 보험 급여에 등재된 표적항암제 조차 1차 치료약에 내성이 생긴다면 약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국민 78%가 민간건강보험에 따로 가입해 치료비용을 조달해야 하는 등 암환자 가족들은 보험료마저 이중으로 지출해야만 원하는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다.

현재 표적항암제 중 보험급여 혜택을 볼 수 있는 약물은 일부에 불과하다. 일례로 폐암은 국내 암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며 그 중 80%이상이 비소세포성 폐암 환자여서 이들을 위한 표적항암제의 급여등재가 시급하지만 EGFR 유전자 양성 환자를 위한 이레사(아스트라제네카)와 타세바(로슈)만이 급여 혜택을 받고 있다.

때문에 다른 변형유전자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ALK 양성 환자를 위한 표적항암제는 잴코리(화이자)가 유일한 맞춤형 표적항암제다. 잴코리는 ALK환자의 생존율을 2배 이상 늘리며, 65% 이상의 복용환자에게서 암세포가 줄어드는 효과를 입증했다. 기존의 항암화학요법의 반응률이 10%에 불과하기 때문에 더욱 ALK 양성 비소세포성 폐암 환자들에게 기대를 받는 약제다. 하지만 국내 허가 후 몇 년 째 급여등재가 되지 않아 약값을 감당하기 힘든 환자들은 복용을 포기하는 등, 그들을 두 번 힘들게 하고 있다.

이영수 기자 ju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