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대표[쿠키 건강칼럼] 나의 아내는 2001년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담당 의사는 6개월 시한부인생 선고를 했고 아내는 큰 절망감에 빠졌다. 네 살 된 딸과 10개월 된 아들을 위해서라도 꼭 살아야 한다며 투병의지를 애써 보이려고 했던 아내의 어색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내는 우여곡절 끝에 기적의 신약으로 불리는 세계 최초의 표적항암제 글리벡을 임상시험으로 복용하게 됐다.
아내는 이 글리벡을 징검다리 삼아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치료성적이 좋아서 3년 6개월 전부터는 글리벡 복용을 아예 중단하는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다. 아내의 백혈병 투병과 글리벡 복용을 계기로 나는 ‘한국백혈병환우회’라는 환자단체에서 활동하게 됐다.
◇고유한 경험을 한 사람과 전문적 지식만 있는 사람의 차이
내가 환자단체에서 활동한 지도 어느 듯 15년이 되었다. 그동안 환자의 생명, 안전, 인권과 관련한 수많은 경험들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 나를 많이 힘들게 한 사건이나 사람은 대부분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 일반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고유한 경험을 가진 환자들의 근거 있는 목소리를 결국은 이해하고, 양보하고, 믿어준다. 그러나 전문적 지식만 가진 사람들은 끝끝내 고유한 경험을 가진 환자들의 그 경험은 틀렸거나 잘못된 것으로 몰아가고 자신의 견해를 고집한다.
이는 서울에 실제 가 본 사람과 서울에 가 보지 않고 말이나 책으로 서울을 아는 사람의 차이와도 흡사 유사하다. 서울에 가서 실제 남대문을 본 사람은 신기한 듯 ‘남대문에 문턱이 없더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서울에 가 본 적도 없고 남대문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집 안방 문에도 문턱이 있는데 그렇게 큰 남대문에 어떻게 문턱이 없겠냐?’며 우긴다. 논쟁의 결과는 대부분 서울에 가서 남대문을 실제 본 사람이 지고, “내가 문턱이 있는데 제대로 못 본건가?”라고 자신의 경험을 의심하게 된다.
최근 일부 약사단체 약사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경구용 표적항암제인 글리벡 치료에 장기간 적응된 암환자들과 보건복지부, 식약처 등 정부기관 수장에게 오리지널약을 복용하다가 중간에 복제약으로 바꾸어 복용(switching)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결론적으로 기존에 복용하던 글리벡 오리지널약을 복제약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약사단체와 시민단체는 “글리벡 복제약은 오리지널약과 성분이 동일하고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에 유효성과 안전성이 동등하다”라는 식약처의 공식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식약처장 이외 보건복지부장관에게까지 이러한 식약처의 공식 입장을 강요하고 있고, 식약처의 공식 입장 이외 다른 설명을 추가하면 이단으로 낙인찍고 모질게 비판한다.
◇식약처와 보건복지부는 존재이유와 역할이 다르다.
식약처는 의약품 시판허가를 해주는 정부기관이고, 시판허가의 기준은 ‘복제약의 경우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통과한 동일 성분 약제’라는 것이다. 식약처 시판허가 이후 그 약제를 환자에게 사용하고 그 효능이나 부작용을 실제 관리하는 것은 주로 의사의 몫이고, 그 약의 효능이나 부작용을 직접 경험하는 것도 환자의 영역이다.
세계 최초의 경구용 표적항암제인 글리벡의 만성골수성백혈병 10년 생존율은 90%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6천여 명의 글리벡 복용 암환자들은 지난 16년 동안 글리벡을 복용하며 암세포 악화를 막고 백여 개가 넘는 각종 부작용을 잘 관리하면서 안정적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런데 환자 본인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도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가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에 대한 행정처분으로 6천여 명의 암환자들이 그동안 잘 복용하던 글리벡을 하루아침에 최고 1년까지 건강보험 적용이 정지될 수 있다는 소식을 한번 접했다고 생각해 보라. 이런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글리벡 복제약이나 효능이 더 좋지만 새로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스프라이셀, 타시그나, 슈펙트 등의 대체 신약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일 환자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것이 과연 인권적으로나, 의학적으로나 타당한 것인가?
보건복지부는 글리벡을 복용하는 암환자들을 직접 치료하는 의료현장의 임상의사들의 전문적인 의견을 반영해 글리벡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정지처분 대신 과징금 처분으로 갈음하였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불법 의약품 리베이트 투아웃제’를 도입할 때 국민건강보험법령에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건강보험 급여 정지처분 대신 과징금 처분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까지 해놓았기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의 글리벡 과징금 처분이 잘못되었다며 공익감사 청구까지 했으나 감사원은 보건복지부장관의 행정처분이 적절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렇게 글리벡 건강보험 급여 정지처분 이슈는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류영진 식약처장님은 글리벡 복용 환자들의 공개 질의서에 답변해 주십시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평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한손에는 <표적항암제 글리벡을 장기간 복용중인 암환자 6천여 명의 안전과 인권보다 약사 직능의 이익을 우선하는 류영진 식약처장은 공개 질의에 신속히 답변하라.>라는 내용과 <① 표적항암제 글리벡을 최고 16년까지 장기간 복용중인 암환자 6천여 명 대상으로 ② 환자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제약사의 불법 리베이트를 처벌한다는 명목으로 ③ 암환자도 원하지 않고, 치료하는 의사도 권유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⑤ 성분이 동일한 글리벡 제네릭이나 성분이 동일하지 않는 대체 신약(스프라이셀, 타시그나, 슈펙트)으로 중간에 바꿔 복용하도록 강제해도 ⑤ 환자에게 아무런 피해가 없습니까?”>라는 류영진 식약처장에게 보내는 공개 질의서 내용이 적힌 큼직한 피켓을 들고 서울역에서 7시에 출발하는 오송행 KTX열차를 탄다. 오송역에 내려 택시 타고 식약처 정문 앞으로 이동해 출근시간인 오전 8시~9시까지 한 시간 동안 1인 시위를 한다.

보건의료 공급자단체나 보건의료인들이 말로는 해당 제도가, 해당 정책이, 해당 법률이 환자의 생명과 안전과 인권을 위한 것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결국은 자기 보건의료 직능의 이익과 기득권을 위한 경우를 나는 종종 본다. 한국백혈병환우회와 한국GIST환우회에서 글리벡 복용 환자와 가족들의 성난 마음과 상처를 진정시키는 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그 누구라도 환자의 생명과 안전과 인권을 함부로 위협하거나 무시한다면 앞으로 환자단체들은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다.

◇장기간 글리벡에 적응된 암환자들까지 복제약으로 바꾸도록 강요하지 마라
복제약 활성화 주장도 좋고, 성분명처방(의사가 약을 제품명이 아닌 성분명으로 처방하면 약사가 해당 성분의 여러 개의 제품명 약 중에서 한 개의 제품명 약을 선택해 환자에게 복용하도록 하는 제도) 주장도 좋다. 그런데 일부 약사단체와 시민단체에서 글리벡을 처음 복용하는 암환자라면 몰라도 장기간 글리벡에 적응된 암환자들까지 약을 복제약으로 바꾸도록 강요하지는 마라.
적어도 암 진단을 받아 글리벡을 복용하며 장기간 투병을 하거나 그런 암환자를 옆에서 지켜본 환자가족이 아니라면 해당 환자의 생명과 안전과 인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환자와 환자가족들은 암 투병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아프고 힘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