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정부-제약사간 면역항암제 급여화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고액의 약값 해결 방안으로 ‘암관리기금’이 떠오르고 있다. 별도로 마련된 기금으로 치료비를 지원해 치료접근성을 높이고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재원 마련이나 형평성 문제 등의 논란이 제기될 수 있어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영국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CDF(Cancer Drugs Fund)’는 국가보험서비스 NHS의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항암제 사용 도움 프로그램이다. 비용효과성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추가 조사가 필요한 경우, 데이터가 수집되는 기간 동안 장기간 치료제 사용이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2011년 도입됐다.
영국은 면역항암제의 치료 접근성 제고를 위해 3단계로 나눠 지원하는데, 심각한 질환을 앓는 환자라면 의약품 조기접근제도(EAMS)를 통해 시판 전이라도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고, 급여 적용 전이라면 CDF를 통해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급여 적용시에는 NHS가 비용을 지원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암관리기금을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암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이를 통해 암검진, 암환자의 의료비 지원, 암 연구 및 진료 등에 관한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해 암환자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의원은 “건강보험 재정의 한계로 혁신적 항암제의 건강보험 급여화가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비급여 대상인 면역항암제를 복용하지 못한 일부 폐암환자들이 ‘개구충제’를 대용으로 사용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면서 “접근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은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건보 재원이 충분치 않다면 별도의 재정 지원 마련을 통해서라도 지원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책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 암환자들의 신약 항암제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강진형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교수가 17일 온라인으로 중계된 ‘암환자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정책토론회(비급여 중증암환자 고통분담을 위한 암관리기금 도입 논의)’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한국은 건강보험 지출이 경증질환 보장에 집중돼 있고, 혁신신약이 급여화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길다.
지난 10년 동안 건강보험 의약품 지출에서 혁신신약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9년 20%, 2010년 21%, 2011~2013년 20%, 2014년~2017년 18%, 2018년 20%로 거의 변화가 없고 경증질환 보장에 주로 집중됐다. 지난 2011년~2016년 도입(허가)한 혁신신약 수는 109개로, OECD 20개국의 평균인 119개보다 적다.
신약의 글로벌 허가 이후 보험급여까지 소요되는 기간도 823일로 OECD 20개국 평균인 519일보다 길다. 한국 다음으로 긴 국가는 이탈리아로 699일이다. 가장 짧은 국가는 미국 242일, 독일 299일 등이다.
이날 강 교수와 함께 주제발표를 진행한 임형석 한국폐암환우회 사무국장은 “4기 암환자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굉장히 빨리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최선의 치료를 적시에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하지만 월 600~800만원의 면역항암 치료비는 환우와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급여가 적용되는 2차 치료로 받으려면 생명을 담보로 한 표준항암을 받아야 한다”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암환자 건강보험 보장률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암관리기금 설립에 있어 형평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송준헌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은 “암환자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4년 약 50%에서 2018년 80%까지 확대됐고, 암 발생률도 인구 10만명 당 264명 수준으로 OECD 평균인 300명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며 “전체 환자의 보장률이 같은 기간 61%에서 64%정도로 오른 것과 비교하면 건강보험에서 암환자에 대한 보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암과 관련된 의료비 보장의 기본트랙은 건강보험이고, 그 외의 보조적 트랙으로는 담뱃세로 마련한 국민건강증진기금과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이 있다. 이렇게 세 가지 지원 제도가 있는데 이를 동시에 가져가기에는 사회적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어떤 제도를 주된 보장성 트랙으로 할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송 과장은 “또 기금을 마련한다고 했을 때 그 대상과 재정 규모가 어느 정도 될지 추정소요액이 구체화돼야 하고, 어떤 식으로 재정을 마련하고 어떤 기준으로 배분할 지도 정해야 하는데 행정하는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과제다”라면서 “꼭 기금이 아니더라도 경제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형태(제도)라면 충분히 스터디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연말에 3차 암관리종합계획이 끝나고 내년에 4차 계획이 시행되는데, 법안이 실효성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해서 검토를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박종헌 국민건강보험공단 급여전략실장도 “4대 중증질환 산정특례 대상자의 건보 보장률은 83.3%다. 그 중 약제비 부분이 더디긴 하지만 2017년 당시 1000명에서 2018년 4000여명, 2019년 5700여명으로 대상자가 늘고 있다”면서 “보험급여 과정에서 비용효과성 입증과 제약사와의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기금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교수 또한 “기금이 필요하다면 재원 마련은 영국을 참고해 그대로 갈 것인지, 다른 소스가 필요한지, 어떤 기구의 형태로 발족하는 게 좋을지, 혜택을 받는 환자는 누가 돼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져야 한다”라며 “영국도 암관리기금 운영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인풋보다 나가는 게 많다고 하더라. 만들어지게 된다면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두고 이해당사자들이 의견을 좁혀가야 한다”라고 전했다.
suin92710@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