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건강보험 부과기준, 유흥업소 탈세 돕는다

허술한 건강보험 부과기준, 유흥업소 탈세 돕는다

유흥업 종사자는 본인 확인만으로 소득 발생 부인할 수 있어, 인건비 '거짓신고'

기사승인 2019-03-16 04:00:00 업데이트 2021-01-13 17:00:15

“국세청 등 관계기관은 유흥업소 등이 적법하게 세금을 내고 정상적으로 운영하는지 철저히 점검하길 바란다.”

지난 14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72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관하면서 이같이 주문했다. 마약·탈세·성매매 등의 혐의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강남 유흥업소 버닝썬 사태를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업소들은 현재 건강보험 부과기준 이용해 쉽게 탈세를 시도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흥업소 종사자들은 일정 기준 이상의 수입에 대해 종합소득세 납부의무가 있는데, 업소 측에서 자신 신원을 드러내려 하지 않은 종사자들의 매출을 다른 종사자에게 부과하거나 고액 인건비를 부과했다고 신고하는 정황이 포착된 것.

고액의 수입이 발생한 해당 종사자는 그에 맞는 건강보험료를 피하기 위해 유흥업소 종자사에게만 부여하는 기준경비율 코드 ‘940905’를 신청하고, 940905 소득자의 소득보험료는 0원이기 때문에 최저보험료를 내는 식이다. 반면 사업주가 신고한 인건비는 그대로 필요경비로 인정돼 소득이 적게 입력되고, 이렇게 되면 사업주가 부과해야 할 건강보험료도 낮아질 수 있게 된다. 

◇유흥업 종사자에게만 부여되는 ‘940905’, 소득발생 사실 부인할 수 있어

여기서 핵심은 코드번호 ‘940905’이다. 이 코드를 받으면 소득발생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 있다.

건강보험료(이하 보험료)는 수입에 따라 매년 달라지고, 늘어나면 보험료도 늘게 된다. 이에 따라 일을 그만두거나 수입이 없어지면 보험료를 조정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대체로 직장인은 4대 보험 지급 자체를 회사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퇴사를 하면 자동으로 직장에서 지역가입자로 자격이 변경된다.

그러나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프리랜서 등 일부 직군의 경우 일을 끝냈을 때 별도로 국가에 보고를 하지 않으면 전 직장에서 납부하던 금액 그대로 보험료를 낼 수밖에 없다. 벌어들이고 있지 않은 소득에 의해 과납된 보험료를 반환받기 위해서는 해촉증명서를 작성해야 한다. 해촉증명서는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소속, 재직기간 등으로 구성돼 내용상 경력증명서와 유사하며,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하면 된다.

그런데 유흥업소 종사자는 해촉증명서를 제출하지 않고 ‘본인 확인’만 하면 코드번호 ‘940905’가 발급돼 자동으로 무(無)소득으로 처리가 되어 최저보험료가 부과된다.

여기서 ‘본인의 확인만으로 가능’하다는 의미는 소득발생 사업장의 사업주나 세무서의 확인 없이 소득발생 사실에 대한 부인 또는 더 이상 관련 업종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본인의 주장을 수용한다는 의미이다.

◇사업주는 인건비 거짓 신고, 종업원은 사실 부인…‘짜고 치는 고스톱’ 될 수 있어

문제는 이를 악용해 사업주와 종사자가 소득을 낮게 신고하고 보험료를 적게 내는 등 탈세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에서 근무하는 A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 코드가 부여되는 과정은 대체로 이렇다. 유흥업소 사업주가 소득신고를 할 때 고액의 인건비 지급 내역을 신고하면, 이후 해당 업소의 종사자로 등록돼 고액의 소득이 잡힌 건강보험 가입자가 ‘해당 업소에 일한 적이 없다’고 하거나 ‘그만큼의 소득을 받지 않았다’고 반박하는 식이다. 이때 종사자에게는 이 코드가 적용된다.

즉, 사업주와 종사자의 입장이 다른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한 재평가를 거쳐 탈세 여부를 파악하고 적정 보험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절차 없이 상황이 종결된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사업주가 신고한 인건비는 필요경비로 인정돼 소득이 적게 입력되고, 부과해야 할 건강보험료도 낮아질 수 있다.

건강보험공단 직원으로 추정되는 직장인들이 익명으로 채팅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서 나눈 대화를 보면 이러한 추정이 기정사실화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테면 일을 한 적이 없는데 소득 자료가 잡혔다고 코드 신청을 하는 보험가입자 중 수년 동안 같은 코드가 잡힌 것이 확인된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201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유흥주점영업의 유흥종사자 실태연구에서는 업소 측에서 인건비 관련 신고를 정확하게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진행한 인터뷰 과정에서 과세가 소득발생자 별로 정확하게 부과되는 것 같지 않다는 점,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려 하지 않은 종사자들의 매출이 다른 종사자에게 부과되는 점, 이들의 소득세를 다른 종사자가 내고 있는 점 등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940905’가 부여되면 몇천만원을 벌었든 소득보험료는 0원이다. 다만 지역가입자로 넘어가기 때문에 재산에 따라 부과되는 보험료는 다르게 책정된다”며 “공단 내부에서도 이러한 업무처리지침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대체로 음지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공단 “국세청에서 만든 코드, 제대로 된 세무조사 필요”

그렇다면 왜 유흥업소 종사자들에게는 해촉증명서가 필요 없는 ‘940905’ 코드를 부여하는 것일까. 이는 해촉증명서를 작성하기 어려운 유흥업소 특성에 있다. 해촉증명서는 언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내역과 회사 명판 및 직인이 찍혀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또 다른 국민건강보험 관계자는 “유흥업소 종사자의 경우 해촉증명서 발급이 애매한 경우가 있어 믿고 보험료를 조정해주는 것이다”라며 “공단에는 국세청에서 신고한 소득 등과 차이가 있어 소득의 축소 또는 탈루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이를 심사하기 위한 소득축소탈루심사위원회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단순히 소득을 잘못 신고하는 경우도 있고 이런 일이 많지 않으면 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하기 어려움이 따른다”며 “특히 ‘940905’ 코드는 국세청에서 만든 코드다. 원칙적으로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제대로 실시해 정정소득을 내보내주면 우리도 보험료 조정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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