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대통령이 6·3 대선 이후 이후 처음으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 출석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9일 윤 전 대통령의 내란우두머리·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사건 6차 공판을 열었다.
법정에 출석한 윤 전 대통령은 이날 법원에 들어서며 ‘대선 결과를 어떻게 봤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또 자신이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던 ‘김건희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 등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특검이 출범을 앞둔 데 대한 입장과,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진짜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도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평소 재판 때 늘 메던 붉은색 넥타이 대신 옅은 붉은색과 흰색이 교차된 무늬의 넥타이를 맸다. 또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웃어 보이는 등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이날 오전 9시50분쯤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빨간 모자와 ‘윤 어게인(YOON AGAIN)’이 적힌 티셔츠와 뱃지를 착용하고 법원 청사 서관 출입구에 모여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현장에는 총 150여명의 지지자가 집결한 것으로 추산됐다.
‘문 부수고 국회 진입’ 윤 전 대통령 지시 재확인
이날 재판에선 증인으로 출석한 이상현 전 육군특전사령부 1공수여단장(예비역 준장)에 대한 반대신문이 이뤄졌다.
이 전 여단장은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막기 위해 “문을 부숴서라도 국회에 진입하라”는 지시가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내려졌다고 다시 한번 진술했다. 현장 지휘를 맡았던 군 장성이 지시 내용을 녹음까지 남기면서, 지시의 최종 주체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26일 열린 5차 공판에서도 이 전 여단장은 계엄 당시 곽종근 특전사령관을 통해 “유리창을 깨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라”, “대통령님이 도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고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법정에선 이 전 여단장이 소속 부대인 제2특전대대 대대장에게 해당 지시를 전달한 통화 녹음도 재생됐다.
이번 공판에서도 이 전 여단장은 국회의원 강제 연행 지시의 주체로 윤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측 반대신문에서 “검찰 조사 당시 곽 전 사령관에게서 ‘상부와 화상회의 중이다’, ‘상부에서 국회 의결을 막기 위해 문을 부숴서라도 들어가라’, ‘필요하면 전기를 끊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이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직접 들은 것이 맞냐”고 거듭 묻자, 이 전 여단장은 “대통령이라고 들었다”며 “누가 그런 지시를 했느냐고 물었을 때 곽 전 사령관이 대통령이라 말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시 2특전대대 대대장과 통화하면서 ‘대통령이 이런 지시를 했다’고 전달했다. 상부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통령 지시라고 전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전 여단장은 또 안효영 제1대대장과의 통화에서도 “대통령이 문을 부숴서라도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했다”는 말을 직접 전달했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 측이 “곽 전 사령관에게서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직접 듣지 않았으면서도 왜 부하에게 그렇게 말했느냐”고 추궁하자, 그는 “국군통수권자의 지시는 곧 대통령의 지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같은 워딩을 썼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군의 특수한 명령 체계를 언급하며 “우리는 접촉지역에서 북한과 대치하며 정보 하나하나를 생명처럼 여긴다. 지시 하나의 오류가 작전 전체의 성패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상급 지휘관의 명령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허위 진술 의혹? 죽음도 각오해”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이 전 여단장에게 당시 참모장과 방첩대장 간의 비화 통신 내용을 언급하며, 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는 사실을 들었는지를 물었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여단장은 “참모장을 통해 들었다”고 답했다.
검찰이 “통화 내용을 보면 대통령 지시를 받고도 물러서라는 취지의 지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자, 이 전 여단장은 “대통령이 지시한 것은 맞다”면서도 “내용은 재판과 관련돼 있어 진술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이 전 여단장이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허위 진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 전 여단장 역시 현재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전 여단장은 “사건 이후 부하들이 망연자실한 상태였기에 자초지종을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만약 내 밑에서 누가 처벌받는다면 나는 죽어버리겠다’고 약속했다”며 “죽음의 심정이었다. 죽음보다 못한 처벌을 피하려 거짓말할 생각으로 군생활을 하진 않았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날 공판은 정권 교체 이후 열린 윤 전 대통령의 첫 내란 혐의 재판이다. 재판이 종료된 이후에도 일부 지지자들은 법원 입구에서 “윤석열! 대통령!” 구호를 외쳤다.
앞서 국회는 지난 5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켰으며, 이르면 1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될 것으로 관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