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상 체계가 현장의 부담을 충분히 받쳐주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참여 기관이 적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업의 성패를 가늠하기에는 통합돌봄과 재택의료는 이제 막 시행된 제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빠른 진단이 아니라, 이 사업이 어느 속도로, 어떤 방향으로 자리 잡아 가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일이다.
이제 막 시작된 제도
통합돌봄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는 이제 석 달 남짓이다. 의료 영역에서 핵심인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도 2022년 말 시작돼 현재 전국으로 확대되는 단계에 있다. 어떤 제도든 출발선에서 곧바로 완성된 형태를 갖추지는 않는다. 참여 기관의 수가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라기보다 초기 단계의 사업이 통상적으로 거치는 국면에 가깝다.
여기에 한 가지 사정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환자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진료하는 재택의료는 우리 의학 교육이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영역이다. 의과대학에서 방문진료를 체계적으로 가르친 적이 없었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맞이하는 일과 환자의 생활 공간으로 들어가 그 삶의 조건 전체를 마주하는 일은 서로 다른 역량을 요구한다. 이러한 역량은 단번에 갖춰지지 않는다. 일차의료 현장에서 한 사례씩 경험과 교육이 축적되는 시간을 통해서만 단단해진다. 지금의 의료진은 그 길을 처음으로 닦고 있는 셈이다.
양적 확대보다 질적 기반
그래서 조급한 확장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참여 기관 수를 빠르게 늘리는 일은 어렵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준비가 갖춰지기 전에 외형부터 키우면 정작 담보되어야 할 돌봄의 질과 의료적 역량은 흔들리기 쉽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와 만성질환자, 임종기 환자를 집에서 돌보는 일은 작은 차이가 환자의 상태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참여 기관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돌봄의 질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리한 외형 확장이 아니라 기본기를 다지는 일이다. 현장에서 신뢰할 만한 재택의료의 표준을 세우고, 그 경험을 다음 의료진에게 전수하며, 지역마다 제대로 작동하는 사례를 축적하는 일이다. 이런 토대 위에서야 확산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시간이 든다. 완성된 형태의 제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낸다고 해서 돌봄의 그물망이 하루아침에 짜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아니라 네트워크
통합돌봄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가장 짚어야 할 지점이 여기에 있다. 통합돌봄은 행정이 설계도를 그려 부품을 끼워 맞추는 ‘시스템‘이 아니다. 한 지역 안의 여러 주체가 오랜 시간 관계를 쌓으며 하나씩 엮어가는 ’네트워크‘다. 관(官)이 지시하고 민간이 따르는 수직적 관계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의원과 병원, 방문간호와 돌봄 인력, 복지 현장이 서로를 동등한 동료로 인정하고 각자의 역량을 키워가며, 그 사이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때 비로소 네트워크는 작동한다. 이 같은 수평적 신뢰와 자발성이 통합돌봄을 떠받치는 기반이다.
결국 제도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은 현장의 ‘사람’이다. 환자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려는 의사들이 재택의료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진료실을 벗어나 지역사회로 발걸음을 옮기는 의료진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들이 짊어진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줄 유연한 지원이 필요하다. 보상의 문제는 그 환경을 떠받치는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일 뿐, 그것만으로 헌신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일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고 조급해하기보다 이 제도가 본래 더디게 진행되는 과정임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통합돌봄은 지역사회의 여러 구성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가는 지난한 작업이다. 지역사회의 가치를 신뢰하고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이 환자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차분히 기다리는 사회적 인내가 지금 필요하다.
씨를 뿌린 지 석 달 만에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통합돌봄에 정작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압박이 아니라, 뿌리가 자리 잡도록 지켜보는 시간과 신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