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치료 성과가 높아지면서 아픈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장기 입원과 반복되는 치료를 견디는 동안 아이들의 배움은 멈추고, 학교와 친구들에게서 멀어진다. 병원학교와 원격수업이 교육의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충분한 학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치료를 마친 뒤 원래 학교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온전한 지원도 없다. 아프다는 이유로 아이가 배움과 미래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 아픈 아이들의 투병이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8편에 걸쳐 묻는다. [편집자주]

복도 끝으로 들어서자 ‘밝은교실’이라고 이름 붙여진 작은 방 하나가 나타났다. 벽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만든 작품이 붙어 있었고, 책장에는 동화책과 문제집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색연필, 스티커, 폴리머 점토, 소꿉놀이 장난감도 눈에 들어왔다.
병동 복도에서 들리던 소리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멀어졌다. 대신 교실 안에서는 연필이 종이에 닿는 소리, 교사의 수업, 질문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만 들렸다. 한 아이는 수학문제 풀이에 열중했고, 비니를 쓴 아이는 사인펜 색깔을 신중히 골랐다. 담요를 덮은 아이는 작고 마른 손으로 점토를 주물러댔다. 아이들의 복장은 모두 똑같았다. 흰 바탕에 병원 로고가 가득 새겨진 환자복 차림이었다.
아이들이 연필을 꼭 쥐고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진지하게 집중한다. 친구들을 만나면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진다. 이 시간만큼은 환자가 아닌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간다. 이곳은 병원 안의 학교였다.
병실·검사실·치료실…다시 짜인 열 살의 하루
12일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병원학교 밝은교실은 소아암으로 진단받고 장기간의 항암 치료로 인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20년 전 처음 마련됐다. 지난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 지정 최초의 병원학교로서 경기 고양시 풍산초등학교와 학교 병설 유치원의 순회학급으로 출범했다.
병원학교란 암이나 만성질환으로 3개월 이상 입원치료 또는 잦은 통원치료를 받아 정규 학교 출석이 어려운 건강장애학생을 위해 병원 내에 설치된 학급을 말한다. 서울 지역을 제외한 다수의 병원학교는 교사 1명이 수업하는 순회·파견학급 형태로 운영되며, 여러 학교 학년의 학생이 함께 수업받는다.

오양은 지난 4월 ‘횡문근육종’을 진단받았다. 지난 2월 처음 이상이 발견돼 수술받았다. 팔 아래쪽에서 만져지던 2.5㎝ 크기의 동그란 멍울은 조직검사를 통해 암으로 판명됐다. 현재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열 살의 하루가 병실과 검사실, 치료실을 중심으로 다시 짜였다. 오양 가족의 생활은 치료가 시작된 뒤 크게 달라졌다. 오양의 어머니인 박서연(49·경기·가명)씨는 한 달 가운데 집에서 보내는 날이 일주일도 되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고 했다.
“항암치료를 받을 때마다 입원했다가 퇴원하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아영이가 지금까지는 치료를 잘 버텨주고 있고 컨디션도 괜찮은 편이지만, 아직 치료 초반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이번에도 잠깐 나왔지만, 다음 주에 다시 병원에 가야 합니다.”
평범한 일상의 변화…불안감이 덮쳐왔다
오양은 평소 노는 걸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이였던 만큼 병원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답답한 병실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 점이었다. 아픈 아이에게 학교를 쉬는 일은 단순히 수업 몇 시간을 놓치는 문제가 아니었다. 교과 진도에서 멀어지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빠지고, 교실에서 자신의 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이 뒤따랐다. 평범한 일상의 변화는 아이에게 큰 불안으로 다가왔다.
“아영이는 친구를 정말 좋아하는데 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하면서 일상이 전부 달라졌어요. 항암치료 자체도 힘들지만,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이에게 더 큰 어려움이었어요.”

“아영이는 항암치료를 시작한 뒤 학교를 많이 그리워했어요.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죠. 하지만 치료가 이어지고 몸이 힘든 상황에 익숙해지면서부터 그런 이야기도 점점 하지 않게 됐어요. 평범한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아이가 온전히 ‘아픈 아이’가 돼버릴까, 다시는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어요. 하지만 병원학교를 다니면서 조금이라도 일상을 유지하면 치료가 끝난 뒤 원래 학교로 아이의 복귀가 쉬워지고,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게 됐어요.”
배움이 멈추지 않도록
병원학교에서의 교육은 정해진 시간표보다 치료 일정과 건강 상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항암치료를 받은 날에는 아이가 교실까지 오는 것조차 쉽지 않다. 수업 도중 갑자기 열이 나거나 구토 증상이 나타나 병실로 돌아가는 일도 있다. 몸 상태가 괜찮은 날을 골라 수업에 참여하더라도 감염 위험 때문에 여러 학생이 한 공간에 모일 수 없는 시기도 있다.
병원학교에서 하루를 보낸 기록은 생활기록부에 남지만, 아이가 무엇을 배웠고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한지까지 원적학교에 충분히 전달되지는 않는다. 치료 기간이 길어질수록 또래와의 학습 격차는 커지고, 아이는 학교 복귀에 대한 부담을 느끼게 된다. 박씨도 치료 이후를 걱정했다. 지금은 아이가 병원학교에 가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지만, 치료가 몇 달 이상 이어지면 원래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학부모 참관수업을 비롯한 여러 행사가 진행되지만, 저희는 참여할 수 없어요. 평소 학교에 다녔다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가정통신문이나 학사 일정도 잘 연결되지 않아요. 그런 순간마다 아영이가 학교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일상을 살다가 여행을 떠났을 때 느끼는 삶의 환기와 즐거움이 있듯 아영이에게 병원학교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어요. 아영이는 병원학교에 가는 날만 기다립니다. 어른에게도 버겁고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는 아이에게 학교와 교육은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오양의 꿈은 간호사다. 박씨는 시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불안해하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지금부터 미리 보고 실습한다고 생각해. 꼭 치료 잘 마치고 나아서 나중에 아픈 친구들을 많이 도와줘”라고 말해왔다. 아이가 병원에서 배운 시간이 아픔의 기억으로만 남지 않길 바랐다.
이제 오양은 “엄마, 이제 간호사 선생님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 것 같아. 나중에 간호사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