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투자 늘리라는데”…‘약가인하’ 시행 앞두고 불확실성 커진 제약업계

“R&D 투자 늘리라는데”…‘약가인하’ 시행 앞두고 불확실성 커진 제약업계

정부, 8월부터 제네릭 약가인하 개편안 추진 예고
R&D 투자·신약 개발 확대 요구 속 제약사들 대응 전략 고심
업계 “약가인하 先 추진, R&D 투자 여력 위축 우려”

기사승인 2026-07-15 06:00:06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정부가 연구개발(R&D) 중심의 산업 구조 전환을 목표로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에 혜택을 부여하는 ‘약가인하’ 정책을 추진하면서 제약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 정책을 통해 제약사들의 R&D 투자 확대와 신약 개발 등을 촉진한다는 구상이지만, 업계에서는 오히려 제약사들의 R&D 투자 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8월부터 제네릭(복제약)과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 산정 체계를 개편할 방침이다. 기존에는 약가 산정률에 있어 53.55%의 동일한 기준을 적용받았지만 앞으로는 R&D 투자 수준, 신약 개발 성과, 수출 규모, 윤리경영 등 여러 요건에 따라 ‘혁신형·준혁신형·일반 제약기업’으로 구분해 향후 3년간 약가를 차등 적용한다.

이번 개편안은 약가 우대를 제약사의 R&D 투자와 연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최근 3년 평균 매출액을 기준으로 △1000억원 미만의 기업은 R&D 투자 9% 이상 △1000억원 이상 기업은 R&D 7% 이상 △cGMP 또는 EU GMP 기준을 충족한 기업은 R&D 투자 5% 이상일 경우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인증받을 수 있게 했다. 혁신형 제약기업은 최대 5년간 49%의 산정률을 적용받는다.

새롭게 도입되는 정책인 ‘준혁신형 제약기업’은 최대 4년간 47%의 산정률을 적용받고 이후 일반 제약기업과 동일한 수준인 45%를 적용받는다. 다만 준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세부 심사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업계에서는 중견·중소 제약사는 물론 일부 대형 제약사들도 인증 대상 여부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 제시되면서 제약사들도 R&D 중심의 사업 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약가 우대 혜택이 R&D 투자 역량과 연계되는 만큼 장기적인 신약 개발 기반 확보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주요 제약사들은 R&D 조직을 재편하거나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대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종근당은 최근 R&D 전문 자회사인 ‘뉴라테온’을 출범했다. 이를 통해 신약 개발과 기술 연구 기능을 전문화하는 동시에 바이오 연구센터 구축과 R&D 투자 확대를 추진하며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종근당은 올해 1분기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이 높아진 만큼 앞으로도 이와 같은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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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온스는 R&D 중심 사업 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바이오 R&D 자회사인 휴온스랩과 휴온스생명과학을 잇달아 흡수 합병하며 R&D 역량을 자회사가 아닌 본사로 집중시켰다. 제조와 바이오 플랫폼, 신약개발 기능을 일원화하고 연구개발 효율성을 높여 앞으로 강화될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기준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한미약품은 지난 6월 미국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에 차세대 신약 후보물질 ‘소네페글루타이드’에 대한 약 1조9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신약 개발 성과를 입증했다. 이를 통해 신약 파이프라인을 바탕으로 R&D 중심 기업으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동아에스티는 R&D 조직 개편과 핵심 인사 재편을 통해 신약 개발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3월 최고연구개발책임자(CSO)를 새로 선임한 데 이어 R&D 조직의 역할과 책임을 재정비하고, 항체약물접합체(ADC) 전문 자회사인 앱티스와의 공동 연구도 확대하고 있다. 제품개발 조직을 세분화해 R&D 효율성과 파이프라인 상업화 역량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이 제약사의 R&D 투자를 유도하기보다 오히려 투자 여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R&D 중심의 사업 구조로 전환하기 위해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함에도, 약가인하가 먼저 추진되면서 기업들이 체질 개선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이번 약가제도 개편이 R&D 중심 체질로의 전환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정작 업계는 오히려 R&D와 신약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다”면서 “약가인하로 자금줄이 끊기면 제약사들은 R&D를 축소,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약을 개발하는 데만 최소 3~5년이 소요돼 제네릭 중심 수익 구조의 제약사들은 당장 신약 개발에 착수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그나마 혁신형·준혁신형 기업 인증을 받아야 조금이라도 더 R&D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인증 기준도 완전히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약가인하를 추진해 답답함이 크다”고 우려했다.

전문가 역시 약가 개편과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제도의 시행 시점 차이에 따른 정책의 불확실성을 지적했다. 김현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약가제도 개편의 핵심은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우대인데, 제도 개편은 12월 시행을 앞둔 반면 약가 변경 고시는 8월부터 적용된다”면서 “두 제도가 정합성을 갖추지 못하면 제약업계의 R&D 중심 전환과 혁신 생태계 조성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재훈 기자 jjhoon@kukinews.com
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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