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6개월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예상치 못한 건강보험 재정이 빠져나가고 있다. 사상 초유의 경제난에 건강보험료 징수율마저 감소해 이대로라면 ‘보장성 강화 정책’ 시행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국회에서는 국고지원의 정상화를 위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 코로나 진료 등에 1000억원 썼지만 수입은 줄어…적자 폭 커졌다
지난 6월 26일까지 코로나19 감염 검사와 입원에 소요된 비용은 최소 1300억원이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이 중 건보 재정에서 나간 금액은 약 970억원에 달한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재정동향&이슈’ 최신호를 보면, 가장 많이 지출된 항목은 ‘코로나 진단검사비’로 확인됐다. 1300억원 중 473억원이 사용됐다. 그 다음은 코로나 확진자의 음압격리실 입원료로 403억원이 지출됐다. 진단검사는 건당 7만5880원(병원)에서 8만2200원(상급종합병원) 수준이었는데, 한 사람이 여러 번 검사를 받는 경우도 있어 이 시기까지 검사를 받은 사람은 41만7961명으로 집계됐다. ‘국민안심병원’ 운영과 관련해서도 약 185억원이 사용됐다.
반면, 경제상황 악화로 보험료 징수율은 전년 대비 감소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경감된 건보료는 9000억원이 넘는다. 전봉민 의원실(미래통합당)이 최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코로나19 관련 건강보험료 경감현황’에 따르면, 총 경감액은 9115억원으로 확인됐다.
앞서 복지부는 3월~5월까지 특별재난지역은 하위 50%, 그 외 모든 지역은 하위 40%에 해당하는 가입자의 건보료를 30~50% 경감했다. 이에 올해 1분기 적자규모는 943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489억원이나 증가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경제상황의 어려움으로 보험료 징수율이 감소했고, 코로나19 대응에 헌신한 의료기관의 재정적 어려움을 경감하기 위해 선지급(전년 동월 건보 급여의 100~90%를 우선지급)과 조기지급(급여비 청구 후 지급까지의 소요기관을 12일 단축)을 시행함에 따라 올해 1월~3월 당기 수지는 전년 동기대비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 코로나, 독감 등 유행 예상…적립금 한계로 건보료 인상 불가피
예상치 못한 재정이 빠져나가면서 일명 ‘문재인 케어’라고도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시행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2017년 8월 시행된 보장성 강화 정책은 오는 2022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올려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필요한 재정은 그간 공단이 모아놓은 적립금의 일부(10조원)와 건보료로 충당키로 했으며, 건보료는 매년 3.49%씩 인상하기로 했다. 이에 지난해 기준 누적 적립금은 17조7712억원으로 전년 20조5955억원보다 2조8243억원 감소했다.
하지만 올해 건보료율 인상은 3.2%에 그쳤고, 올 하반기 2차 대유행, 독감 등 기타 호흡기 감염병 유행 등이 예상되고 있어 재정 적자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적립금은 재난 발생 시를 대비해 쓸 수 있도록 10조원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2022년까지 쓸 수 있는 금액도 한정된다.
때문에 내년도 보험료가 인상되지 않으면 보장성 강화 정책 실행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게 건보공단 측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정책이) 아예 중단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계절성 유행병 등 다른 질병들이 함께 발생하면 건보 지출이 크게 늘어난다. 또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수가도 인상됐기 때문에 건보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면서 “특히 올해 인상률이 기존에 정한 3.49%보다 낮기 때문에 보완해 책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 시행한 건강보험 관련 국민신뢰도 조사에서 처음으로 87% 이상이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그만큼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건보 제도가 큰 역할을 한 것”이라면서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동결은 어렵다. 적정부담과 국고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년도 건보료율은 내달 24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애초 지난 6월 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정해질 계획이었지만 인상률을 둘러싼 이견, 코로나19 사태 등 여러 이슈로 연기됐다.
그러나 경제적 부담 등의 이유로 건보료 인상을 반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진행한 ‘건강보험 부담 대국민 인식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내년도 건강보험료율 동결 또는 인하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3% 인상을 찬성하는 응답은 2.6%에 그쳤고 인하 17.4%, 동결 35.9%, 1% 미만 인상 18.4%, 1∼2% 인상 17.8% 등의 순이었다. 소득 대비 건강보험료 수준이 부담된다는 답변도 62.9%에 달했다. 해당 조사는 전국 만 20∼59세 성인 남녀 1174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국고지원 14%’ 명시하는 개정안 국회서 재발의
최근 문을 연 21대 국회에서는 ‘국고지원의 정상화’ 방안을 재논의하고 있다. 국고지원의 법제화는 지난 20대 국회 때도 추진됐지만 보건복지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하다가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에 기동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15명의 의원들은 ‘국가의 건강보험재정 지원 강화’를 골자로 한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6월19일 발의했고, 이달 15일 개회된 복지위에 상정돼 홍형선 복지위 수석전문위원이 검토보고를 한 상황이다.
개정안은 ‘건보료 수입의 14% 지원’ 규정의 실효성을 높였다. 현행법에서는 국고지원의 비율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4%에 상당하는’으로 돼 있는데, ‘14%에 해당하는’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실제로 ‘상당하는’이라는 불명확한 법적 명시로 인해 기획재정부는 14% 미만이어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해석했고, 지난 4년간 국고지원 비율은 연례적으로 미달했다. 작년 실제지원액은(5조9589억원)은 보험료 예상수입액(57조8154억원)의 10.3%에 불과했다. 지난 13년간(2007년~2019년) 건보 국고 미지급금은 24조7314억원에 달한다.
반면, 건보 재정에서 국민이 내는 보험료의 비중은 86%가 넘는다. 또 국고지원이 13~14%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세수입은 매년 확대되고 있다. 2009년 국세수입 일반회계는 157조9000억원 수준이었으나 지난해에는 286조원까지 확대됐다. 국세수입 대비 국고지원율은 2015년 2.7%였으나 2017년부터는 2.0%, 2018년 1.8%, 2019년 2.0%로 줄었다.
홍 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개정안은 건보 재정의 법정지원율을 ‘해당 연도 보험료 수입액의 14%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명확히 하고 국가 지원금에 대한 사후정산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것으로 정부 책임성을 강화하고 재정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타당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연례적인 국고 과소지원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복지위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결산심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시정요구를 하고 있다”면서도 “철저한 이행을 위해서는 법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참고로 사후정산제란, 예상수입액과 실제수입액의 차이로 국가지원금의 차액이 발생할 경우 이를 정산하는 제도다.
이와 관련해 한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건보 재정 안정성에 빨간불이 켜진 만큼, 안정적인 국고 지원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건보료 인상 및 불필요한 지출 규제를 통해 국민과 보건의료계가 책임을 다하는 만큼, 정부도 국고 지원 정상화를 통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 “문재인 케어 시행으로 건보 보장성을 높이고자 노력하는 만큼, 국고 지원 법제화가 이번 국회에서 꼭 통과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의사협회도 “적극 찬성한다”면서 “더 나아가 미래 자정환경을 고려하면 현행 14%에서 16%로 상향하는 등 규모 확대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한편, 검토보고에 포함된 관계 기관들 중 기획재정부는 14%에 해당하는 국고지원 규모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고, 사후정산제 도입도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도 국고지원 규모 확대취지에는 공감하나 사후정산제 도입은 재정당국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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