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전미옥·유수인·노상우·한성주 기자 =의료계가 ‘의대정원 확대’ 등에 반대하며 집단 파업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이기적인 집단행동에 나섰다며 비난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의대생이 의사국가시험 응시도 취소하고, 비난이 뻔히 예상되는 ‘파업’까지 불사하며 정부정책에 반대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의사수에 대한 문제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도 정부는 OECD 데이터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의사수가 부족하다고 주장해왔고, 이에 반해 의료계는 의사수의 문제보다 지역별·과목별 편중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며 팽팽이 맞서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확산되며 지역 의료진만으로 감당하기 힘들어진 상황이 됐고, 의사수(공공의료 전담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가 오는 2022년부터 10년 간 의대 입학 정원을 매년 최대 400명씩 늘리겠다고 발표하며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다.
당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필요한 곳에, 필요한 의사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정책 목표를 밝혔다. 의사를 충원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의료 서비스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가 부족한 산부인과·흉부외과·응급의학과 등을 전공하는 인원이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효과도 제시됐다.
이에 반발하며 의사들은 병원이 아닌 거리로 나왔다. 지난 14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의 총파업에 이어 21일에는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가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고, 26일부터는 3일간 2차 총파업에 들어갔다. 의료현장에서는 진료 뿐 아니라 수술도 미뤄지고 있어 환자들의 불편도 큰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수도권 소재 수련병원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전임의들에게 진료 업무로 복귀하라며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하기도 했다.
◈의대 지망 예비수험생은 ‘혼란’
의대가 생기고 정원이 늘어날 것이라는 소문은 의과대 진학을 준비하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는 희소식이 됐다. 최근 3년 대입 수시/정시 모집에서 의대 지원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정원확대나 의대신설은 입학의 기회를 늘려주기 때문이다. 이에 학원가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2022년 의대 입시준비 요강설명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였지만,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향방을 알 수 없게 되자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온라인 수험생 커뮤니티인 수만휘(수능날만점시험지를휘날리자) 카페에는 막막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한 학생은 “이번에 의대생 전체가 동맹 휴학하면 내년도 의대 신입생은 못 뽑는 건가요? 휴학한 학생 수만큼 신입생 수는 줄어드는 건가요. 의대를 희망하고 있는데 답답합니다. 만약에 의대 정원 늘려도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몰려들면 고3은 불리하지 않을까요”라며 걱정을 토로했다.
다른 학생은 “진짜로 전남에 의대가 생겨요? 현 고1이면 갈 수 있는 건가요? 만약 갈 수 있다면 진짜 의지가 활활 탈 것 같은데. 그리고 공공의대라는 건 어떤 건지 잘 모르겠네요. 의사들이 파업하는 거면 아무래도 (공공의대 설립이) 안 될 가능성이 높을까요?”라며 현 상황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의과대와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은 어떨까. 예비의사임에도 현 의료정책에 대해 큰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조승현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장은 “뒤틀린 의료전달체계와 고질적인 저수가 문제를 그대로 두고 의사만 늘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미비한 의료전달체계와 필수의료 분과 기피 현상의 원인은 무시하고 의사 수 증원을 통해 표면적인 문제만 해결하겠다는 것인데 의대 정원확대는 의료의 질 저하와 결국 의료시스템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고,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공의의 무기한 파업과 의학과 4학년의 국가고시 응시 거부를 지지한다고 밝힌 서울대의과대 의학과 3학년생들은 성명문을 통해 “현재 의료체계에서 단순히 의사수를 늘리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원래 의도와 정 반대로 의료불균형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의료취약지역은 의사가 부족해 발생하는 것이 아닌 인구가 적고, 수요가 적은 지역에서는 지금의 수가제도 아래에서 병원이 자생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라고 지적했다.
◈전공의는 “의료질 저하 등의 부작용, 결국은 의료시스템 몰락”
이번 투쟁의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전공의들은 현재의 의료 교육의 부실함을 지적하며 정원 확대보다 현 교육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중엽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대표(전공의)는 “밥그릇 투쟁이라고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현재 의대 교육이 굉장히 부실한 곳이 많다. 한 교수님을 10명씩 쫓아다니거나 교원이 없어 다른 병원에 파견 나가기도 한다. 실습 대신 강의로 대체하기도 하는 등 부실한 교육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19 때문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와 의사를 많이 양성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하는데 국내 의료인력 양성 능력을 봐야 한다. 대전협에서 수련을 이렇게 진행하면 안 된다고 계속 건의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의사 수만 늘린다면 안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
의사수 부족 추계에 대해서도 “OECD평균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이미 의사 밀도로 치면 전세계 3위고, 의료 접근성으로 치면 미국은 초진을 보기 위해 평균 24일이 걸린다. 우리나라는 21분이 걸리는 의료 접근성도 좋은 나라다. 의사의 배분이 잘못된 것”이라며 “지방에 환자도 많이 없다. 그런 것도 없이 지역의사 균등분배만으로는 의료의 하향평준화가 나올 수밖에 없다. 모든 환자가 수도권에 몰리는 상황에서 지역에 의사를 묶어 놔봤자 배울 수 있는 환자가 없어 실력이 떨어질 것이고, 의무복무만 지나면 수도권으로 몰릴 것이다”고 지적했다.
◈병원계는 “의사 구하기 힘들어”…적정인력 위해 확대 필요 VS 전체 인력 부족 아닌 특정 파트 부족
병원계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대한병원협회는 의사 증원 등에 공식적으로는 찬성 입장을 밝혔지만 협회 내부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장은 “지방뿐만 아니라 웬만한 민간병원이 결원 충원에 애를 먹고 있다. 전공의 특별법으로 인해 전공의 업무는 반절로 줄었는데, 이를 대신한 인력충원은 요원한 것이 현실”이라며 “의대 정원은 수년간 경직되어 있었다. 무작정 희소가치를 높이는 것보다는 적정 인력이 있어야 의사의 권익과 사회적 역할 확대되고 도움이 된다고 본다. 희소가치만 높이면 좋겠지만 너무 부족하면 재앙이다. 의사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박진규 대한지역병원협의회장은 지역별 의사 부족 문제는 인정했지만 전체 인력 부족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방 의사구하기 어려운 것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 파트가 부족한 것이지 전체 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사람보다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며 “예컨대 지역병원 응급실에 심장스텐트를 시술할 의료진이 매일 24시간 스탠바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영국의 경우 병원들끼리 요일을 정해서 필수의료 의사들이 대기하도록 조율하는데, 우리나라는 각 병원별로 의사를 뽑아야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성종호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전문의)는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주장은 의사가 OECD평균대비 적다는 것, 지역 의사수가 적다는 것, 중증의료 필수의료 담당 의사가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의 수요 공급을 각 나라별로 비교하기 어렵다. OECD 평균보다 적다는 데 우리나라 국민소득이나 인구수가 비슷한 영국·미국·일본 등과 비교하면 비슷하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또 OECD 통계는 의사의 근무시간이나 의사의 근무일수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의사가 고생하니 의사를 늘려서 고생을 줄이자, 환자의 진료시간을 충분히 늘리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 있지만, 수가의 변화가 없다면 환자의 수가 줄어들면 손해다. 의료기관에서 의사를 뽑을 이유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또 지역별 불균형에 대해서는 “OECD자료를 보면 일본과 한국이 지역불균형이 적다고 나온다. 전 국민이 안 가는데 의사를 가라고 하면 안 된다. 결국 도시로 몰린다. 의사의 진료도 줄어드니 치료 수준도 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는 “의사수 증원은 필요하지만 정부의 방식은 문제”
시민단체는 의사수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의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관계자는 지역불균형의 문제가 의사수가 아닌 인력 배치 때문이라고 하는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 “단순 수치로도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병원 대기시간이 길고 제대로 된 진료도 받기 어렵다는 건 이미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또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통계는 10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면서 “정부도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려고 했지만 의사단체의 반대 때문에 추진이 안됐다. 그렇게 밀린 숙제를 하려니까 의사들이 파업까지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의대 정원으로 의대생들이 제대로 졸업한다고 가정했을 때 많아야 3000명이다. 그 중 상당 부분은 공중보건의사 등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는데, 최근 여학생과 의학전문대학원생 비율이 늘면서 공보의는 10년 전에 비해 1500명으로 줄었다”며 “결국 취약지역 등의 의료보건기관에서 활동했던 의사들이 대폭 감소한 거다. 또 기피 과목에 지원하는 전공자들이 줄면서 돈이 되는 진료 등에 의사가 몰리는 상태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에 대해서는 “전공의들의 착취 문제와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의사들은 더 뽑아야 한다. 이를 반대하는 건 이율배반적인 주장이다”라고 지적하고, 정부에 대해서는 “늘어난 의대생들을 통해 공공의료를 확대하고 이들이 지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게 중요한데 지금은 당장 장학금 줘서 10년 쓰다가 보내는 방식이다.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방법이 틀렸다”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의사 부족 문제는 점점 더 심화되는 중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됐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의사 수는 13만명이나, 현재 활동의사 수는 10만명에 불과하며, OECD 평균만큼 필요한 활동의사는 약 16만명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역별로 보더라도 서울은 인구 1천명당 의사 수가 3.1명인데 반해, 경북 1.4명, 충남 1.5명으로 지역 편차가 크고 지역 의사수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나라 의사 10만명 중 필수진료과목인 감염내과 전문의는 277명, 소아외과전문의는 48명 등 일부 과목은 의사수가 적은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의료산업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고 기초의학이나 응용의학의 발전을 도모할 의과학자의 양성도 시급한 분야이기 때문에 의사 수 증원에 대한 정책 철회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kioo@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