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응급실에 응급환자 아닌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외래 일정 잡아놓고 못 기다리겠다고 온 사람도 있어요.”
응급실 의료진들이 비(非)응급환자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예약한 날짜보다 빨리 진료를 받고 싶거나 상급종합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응급실로 내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전공의 파업 등의 영향으로 응급실 업무 부담이 폭증하고 있어 ‘비응급환자’의 병상 차지 문제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다.
일례로 대구시는 최근 대구 지역 6개 대형병원의 비응급환자 이용 비율이 평소보다 10~20% 정도 증가해 응급환자 중 경증환자 비율이 50%가 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비응급환자나 경증환자의 응급실 이용 자제를 시민들에게 요청했다.
이는 지난 21일부터 전공의 무기한 업무중단, 26~28일까지 2차 의료계 집단휴진의 영향으로 비상 진료체계가 가동되면서 경증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로 몰렸기 때문이다.
소위 빅(BIG)5 병원으로 불리는 상급종합병원이 있는 수도권 상황은 더 심각하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내 경증환자 쏠림 현상은 전공의 파업과는 무관하게 이전부터 지속돼 오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로 꼽혀왔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제공하는 진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응급실로 내원하는 환자들 때문이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외래 예약해놓고 하루를 못 기다려서 응급실로 오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를 내쫓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홍기정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료진들의 업무로딩을 줄이기 위해 경증환자를 포함한 ‘비응급환자’의 진료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홍 교수는 “응급실 내 과로 이슈는 늘 있었다. 과밀화된 응급실에서 로딩이 많이 걸리는 상황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거기에 코로나19 이슈까지 터지면서 의사는 물론 간호사들의 업무가 엄청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응급실 내 비응급환자부터 제한해야 한다. 우리 병원 응급실에서 비응급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70~80%다. 요양병원에서 처치하는 석션을 큰 병원에서 하고 싶다고 오는 식”이라면서 “진짜 응급환자 위주의 진료가 이루어져야 의료진 과로나 감염 이슈가 일부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응급실에 경증환자가 쏠리면 의료진은 물론 환자 치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병상이 부족해지면 정작 치료가 급한 중증의 응급환자들이 남는 병상을 찾아 헤매다가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응급실 내 경증환자 쏠림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수는 없는 실정이다. 정부가 비응급환자에 한해 응급의료관리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지만 한 해 전국 응급실 이용자가 약 1000만명에 달하는 등 정책 효과는 미비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응급의료관리료는 6만1900원, 지역응급의료센터는 5만3640원, 지역응급의료기관은 2만630원이며, 기관 평가결과에 따라 가감산된다. 비응급환자를 막기 위해 응급의료관리료를 확 높이면 응급환자의 수가도 높아진다는 부작용이 있다.
장영진 복지부 응급의료과장은 “응급실을 통해 내원하면 병원비가 조금 비싸게 나온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진료비에 응급의료관리료 전액을 붙이기 때문”이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는 상황이라면, 이용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차원에서 소방과 연계해 환자를 적정 병원에 이송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하는 노력도 있어야겠지만, 구급대원들이 적정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려고 해도 환자가 특정 병원을 언급하면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장 과장에 따르면, 현재 복지부는 인식개선 홍보를 위한 포스터와 동영상을 제작‧배포하고 있다. 다만, 투입되는 홍보 예산이 적어 단시간 내 효과를 보기에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의료전달체계의 재정립’도 시급하다.
조석주 부산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경증환자가 큰 병원으로 쏠리는 이유는 결국 의료전달체계가 망가져서 그렇다”고 꼬집었다.
조 교수는 “서울만 봐도 강남 지역엔 내과가 없고 성형외과만 있다. 빅5가 아닌 병원은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 아이가 열이 나면 부모는 어디로 가겠느냐. 의학적으로 의사가 봤을 때 심각한 병이 아니라도 해도 보호자는 막막하니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는 것”이라며 “환자와 보호자, 구급대와 병원이 각자의 역할을 알고 서로 협조하는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해 환자가 적절한 병원에 가서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흐름을 잘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과장도 “현재 의료전달체계는 강제가 아닌 환자 선택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응급실 인력을 늘려도 특정기관에 환자가 쏠린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상급종합병원 및 응급실이 중증환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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