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 “염증이 장 안쪽까지 퍼져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화장실을 갈 때도 있어요. 심한 혈변과 복통에 밤새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하고요.”
9년째 궤양성대장염을 앓고 있는 30대 환자 이민정(32·가명) 씨의 말이다. 이씨는 대학교 4학년이던 2011년 갑작스러운 혈변과 급박변 증상으로 처음 동네 병원을 찾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비슷한 증상이 간간히 있었지만 이번에는 유독 심한 복통과 쓰라림이 6개월 넘게 지속돼서다.
병명은 궤양성 대장염. 최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를 물러나게 한 바로 그 질환이다. 아베 신조는 1차 집권 때인 2007년 9월 궤양성 대장염 악화로 물러난 데 이어 두 번째 사임을 결정했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조차 퇴장시킬 정도로 일상생활을 괴롭히는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악명이 높다.
궤양성 대장염은 대장의 점막 또는 점막하층에 국한해 지속적인 염증이 나타나며, 수 주 이상 지속되는 혈변과 설사, 점액변, 대변절박증, 뒤무직 등의 증상이 대표적이다.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지만 아직 완치방법은 없다.
젊은이들에게 빈발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국내 궤양성 대장염 유병률은 인구 10만 명당 69.3명으로 추정되며 20~40대의 젊은 층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또한 발병률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궤양성 대장염 환자는 2010년 2만8162명에서 2019년에는 4만6681명으로 10년 사이 2배가량 늘었다.
갑작스러운 급박변과 복통으로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이 많지만 병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실제 환자들조차 진단 시기를 놓치기 쉽다. 실제 대한장연구학회가 염증성장질환을 앓고 있는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환자 4명 중 1명은 발병한지 1년 이상이 지나서야 병원을 찾은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김씨도 정확한 진단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케이스다. 2011년부터 동네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정식 치료가 아닌 좌약 처방 등 증상에 따른 대증치료만 3년간 지속하다 뒤늦게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김씨는 “3년간 동네의 일반병원에 다니면서도 궤양성 대장염이 정확히 어떤 질환인지 잘 몰랐다.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산정특례까지 적용되는 큰 병인지는 대학병원에 가서야 알게 됐다”며 “일찍 알았더라면 좀 더 잘 치료받고, 관리도 잘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고 토로했다.
일상생활에도 제약이 적지 않다. 주기적으로 증상이 관리되는 비활동기(관해기)와 활동기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증상이 심해지는 활동기에는 직장생활은 물론 여행조차 쉽지 않다. 김씨는 “사회초년생 때 인턴으로 근무할 때가 기억에 남는다. 술자리나 회식자리가 특히 어려웠다. 술을 마시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증상이 심해지는데, 윗사람들에게 평가받는 인턴 입장에서 병력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어 마음고생을 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활동기에서는 젊은 사람조차 빠르게 증상이 악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환우회 회원 가운데 한 20대 후반 남성분은 기존에 헬스트레이너로 일하는 건장한 성인이었는데도 활동기 두 달여 만에 근육이 다 빠질 정도로 악화된 사례도 있다. 그만큼 계속해서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다”라고 전했다. 김씨는 궤양성대장염 환우회(UC사랑회) 운영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병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투병생활을 공유를 통해 정서적 위안을 나누고 있다.
김씨는 “생활 패턴 자체가 병을 중심으로 바뀌는 것 같다”며 “미팅이나 모임, 여행 장소에서도 화장실 위치가 1순위다.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이해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스트레스성 배탈’이나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둘러대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궤양성 대장염은 생소한 병이지만 조금만 이해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화장실 문제에 대한 이해가 가장 큰 배려인 것 같고, 식사 때 한 메뉴로 통일하지 않기, 자극적인 음식을 강요하지 않기 등이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진료현장에서는 김씨와 같이 숨겨진 젊은 환자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윤호 순천향대천안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의 경우 설사와 점액 등의 증상은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출혈의 증상은 치질에 의한 것으로 오인해 질환을 방치하다가 질환이 악화된 후에야 병원을 찾게 되는 경우가 비교적 흔하다”며 “설사가 3~4주 이상 지속되는지, 배변 횟수가 지속적으로 하루에 3~4회 이상인지, 코 같은 점액이나 피가 변에 섞여 나오지 않는지를 잘 확인해서 증상 있으면 병원을 방문해 전문가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치료와 일상생활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정 교수는 “증상이 호전되면 환자분들이 투약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재발 및 증상의 악화 가능성이 점점 증가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투약이 필요하다. 또 증상이 없어도 중등도 이상의 대장염증이 관찰되는 경우가 흔하고, 장기간 지속되는 염증이 있는 경우 대장암이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변 사람들의 정서적 지지도 투병생활에 도움이 된다. 정 교수는“ 궤양성 대장염 환자분들이 비활동성 염증상태인 경우에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평생 치료를 받고 관리해야 하기 불안, 우울,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주변에서 정서적인 지지와 상황에 따른 적절한 배려가 중요할 것 같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염증성장질환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높이고, 편견과 오해를 해소하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환자들에게 경제적 부담과 우울감과 같은 정신적 부담으로 발생하는 삶의 질 저하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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