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처음엔 승산없는 싸움에 제자들이 피해볼까 만류했습니다. 지금은 열심히 해라, 마음으로 돕겠다는 심정입니다.” 지방 대학병원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요즘 이틀 간격으로 24시간 당직을 선다. 물론 틈틈이 오전·이브닝 근무를 병행하면서다. 퇴근 후 눈만 붙였다가 다시 응급실로 향하는 나날이 수 일째 이어지고 있다.
전공의 파업 2주째인 3일 전국 대학병원 의료진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 일선 교수들이 전공의와 전임의가 빠진 자리를 대신해왔지만,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진료 및 수술 지연 등이 불가피해졌다. 병원계에 따르면, 주요 병원들의 진료량은 기존 대비 40~50%가량 줄었다.
이날 서울성모병원 교수들은 진료와 수술의 ‘단계적 축소’를 알렸다. 서울성모병원 교수협의회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통해 “서울성모병원의 전공의와 전임의가 자리를 비운 지 벌써 열흘이 넘었다. 외래, 수술 및 당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체력은 점점 고갈되고 이제 그 한계에 도달했다”며 "외래진료 변경과 수술연기로 인하여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뜻을 전했다.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진들도 지난달 28일 야간당직 등 업무가중으로 ‘진료 축소’를 선언했다. 이들은 “모든 교수들이 의료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입원환자, 중환자, 응급환자 및 코로나-19 환자의 진료와 야간당직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며 “8월 31일 이후 1주일 간 연기가 가능한 외래와 시술 등의 진료를 축소하고 입원환자 진료에 집중할 예정이다. 그 이후에도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외래 진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공의에 이어 대학병원 교수들까지 집단행동을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등 정부의 정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파업 전공의에 대한 고발 등 정부의 행정처분도 교수들의 반발을 샀다. 앞서 서울성모병원과 서울대병원을 포함해 전국 의과대학과 교수단체에서는‘전공의 지지 및 정부의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가 연일 발표되고 있다.
전날인 2일 서울아산병원 교수진들은 "의대생과 젊은 의사들의 정당한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필수진료에만 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젊은 의사들의 행동을 지지하며 강력한 단체 행동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고대구로병원 내과 교수 일동도 ‘전공의들의 사투와 정부의 졸속 정책 추진을 더는 묵과할 수 없다’며 집단 사직 의사를 밝혔다.
최철원 고대구로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내과교수 55명 중 53명의 사직서를 모았다. 우리 학생과 전공의들이 다치는 일이 생긴다면 사직서 제출을 감행할 생각”이라며 “다만 의사로서 입원 환자들과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내팽겨 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공의대는 해결책이 아니다. 이미 군장학생 제도가 실패한 전적이 있음에도 불합리한 정책을 하필 이 시기에 밀어붙이는지 의문이다. 국민들에 실상을 알리기 위해 나섰다”며 집단행동의 배경을 전했다.
필수의사 부족을 체감해온 지방 대학병원 교수조차 ‘공공의대 설립’ 등에는 고개를 저었다. 류병윤 춘천성심병원 외과 교수는 “우리 병원 외과는 예전부터 전공의 지원자가 드물었다. 올해는 아예 외과 전공의가 없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공공의대를 지어서 외과의 등 필수의사를 보충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라고 했다.
류 교수는 “대학만 짓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교육자, 교육시스템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배출된 의사들이 외과의사로 일할 곳이 있는지, 여건이 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며 “의료정책에 현실감이 없고 이상론만 있어 답답할 따름이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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