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고려대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교수는 암과 같은 희귀난치질환자들의 치료권 확대를 위해 유전자 가위 기술의 임상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고려대 의과대학 제공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유전자 가위는 DNA 서열을 가지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엔지니어링이 가능합니다. 박테리아는 물론이고 바이러스, 식물에게도 적용할 수 있고요. 특히 암은 기술이 상용화됐을 때 제일 먼저 적용할 가능성이 클 정도로 연구개발이 많이 됐습니다. 문제는 규제가 너무 엄격해 환자에게 적용할 수가 없어요.”
김경미 고려대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교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의 임상 적용 가능성을 높이는데 주력을 다하고 있다. 올해 노벨화학상 대상이기도 한 유전자 가위는 질환을 유발하는 문제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교정하는 기술로, 치료가 어려운 희귀난치질환 및 유전질환도 해결할 수 있어 생명과학계의 ‘혁명’으로 불릴 정도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기술적‧윤리적 측면 때문에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은커녕 기초연구조차 접근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김 교수를 비롯한 일부 연구자 및 관계자들은 환자들의 치료 기회 확대를 위해 연구 가능 범위를 확대하고 일부 질환에 한해 사람 대상의 임상시험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 정교해지는 기술…외국선 사람 대상 임상 활발
유전자 가위 기술은 DNA 염기서열의 특정부위를 인식하고 자르는 방식에 따라 제1세대 징크핑거(ZEN. 2002년), 제2세대 탈렌(TALEN, 2010년), 제3세대 크리스퍼(CRISPER/Cas9, 2012년) 기술로 발전했다. 특히 보다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원하는 유전자만 제거할 수 있는 크리스퍼 기술은 희귀난치병 치료의 길을 열었고, 이에 올해 노벨화학상도 해당 기술을 개발한 프랑스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미구의 제니퍼 A.다우드나에게 돌아갔다.
미국이나 중국 등에서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인체 대상 임상연구가 활발하다. 지난해 암 환자 3명의 면역세포 유전자를 편집하는 데 성공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세포면역치료센터 소장 연구팀은 인체를 대상으로 한 첫 임상 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는 연구결과를 올해 2월 발표했다. 연구진은 암환자의 혈액에서 면역세포인 T세포를 추출한 다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암세포를 찾아가 결합하도록 유전자를 교정하고 이를 다시 환자에게 주사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했다. 그 결과 환자들에게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고 최대 9개월까지 생존하는 것을 확인했다.
중국에서는 베이징대의 덩홍쿠이 박사 연구진이 에이즈와 백혈병에 걸린 환자 치료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해 치료 가능성을 열었다.
최근에는 기술 적용 질환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인체에 직접 주사해 몸 안에서 유전자 교정을 하는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앞선 치료 방식은 환자의 세포를 꺼내 몸 밖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질병 유전자를 교정하는 ‘체외 유전체 교정’ 방식으로, 부작용 위험이 낮은 대신 적용 질환의 범위가 암이나 에이즈 등으로 한정된다. 반면 체내 교정은 바이러스 등을 이용해 체내에 직접 유전자 가위를 전달하기 때문에 면역 거부 반응 등 부작용 위험이 큰 대신 적용할 수 있는 질병의 범위가 다양하다.
체내 교정 방식의 기술 임상을 시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미국의 바이오기업 에디타스 메디신과 우리나라 툴젠이 있다. 에디타스는 선천성 희귀 망막질환인 레베르 선천성 흑내장 환자의 눈에 직접 주사할 수 있는 치료제 임상 1·2상을 시작했고,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원천기술을 보유한 툴젠은 희귀질환 샤르코마리투스병, 혈우병 등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 “체외 교정 방식 치료 임상은 시도해 볼만”
국내 연구자들은 환자의 치료권 보장을 위해 우리나라도 인체 대상 임상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경미 교수는 “체외 교정은 몸 밖에서 교정한 세포를 다시 이식하기 때문에 면역반응 위험을 줄일 수 있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방식이 아니”라며 “또 배아나 생식세포가 아닌 일반 세포에 적용하는 방식인데 우리나라는 과거 황우석 사태 이후로 관련 제도 등이 모두 보수적으로 막혀있고, 치료 목적의 시술도 안 되고 동물 대상 임상시험만 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외국에서 이미 임상을 시작한 체외 교정 방식은 어느 정도 안전성이 확보된 상태이기 때문에 적어도 암 등 난치병을 대상으로는 임상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면서 “미국에서 시행한 임상결과만 보더라도 생존기간 9개월이라는 것은 말기 암환자에게는 꽤 의미 있는 기간이다. 더 이상 치료법이 없어 위험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새 치료법을 쓰느냐 마느냐는 환자가 판단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생물의약품을 연구하는 연구자 A씨도 “성인을 대상으로 교정을 시도하면 전달 효율성 때문에 효과가 100% 나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치료 효과는 볼 수 있다”며 “물론 배아 상태에 적용하면 치료 효과를 더 높일 수 있지만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 금지돼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유전자 가위 기술 적용 질환 확대를 위해 연구 대상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국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은 유전자 편집 치료의 임상연구 범위를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는 질병으로 한정하고 있어, 유전질환이나 난치성 질환의 일부 암, 에이즈 등의 질병만 대상이 된다.
이에 최근 국회에서는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유전질환,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그 밖에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병의 치료를 위한 연구이거나 ▲현재 이용 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유전자치료의 효과가 다른 치료법과 비교하여 현저히 우수할 것으로 예측되는 치료를 위한 연구 중 하나에만 해당하면 된다.
관련해 하태길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기존에 연구 허용범위가 좁게 규정돼 있어 국내에서 연구하기가 불편하다는 요청이 많았다”며 “이를 인지하고 현재 법 개정 작업 중에 있다. 조건이 완화되면 암과 같은 중증질환은 물론 만성질환 등 다른 질환 치료 연구도 활발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연구 또는 치료 질환을 제한하지 않고 모든 질환에서 우수한 유전자 편집 치료를 연구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지만, 대산 연구자의 윤리적 책임은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픽사베이
◇ 까다로운 규제에 기업 부담 커…치료제 임상 어려운 이유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한 ‘유전자 치료제’는 안전성만 확인되면 임상시험이 가능하다. 그러나 진입 장벽이 높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임상시험계획서(IND)를 제출한 기업은 전무한 수준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식약처는 치료제 개발 기업들이 참고해 임사시험을 신청‧진행할 수 있도록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한 첨단바이오의약품 품질평가 가이드라인’을 지난 2018년 마련했다. 식약처 세포유전자치료제과 관계자는 “유전자 치료제 임상 및 허가 과정도 일반 해열제를 만드는 것과 똑같다. 기업이 IND를 제출하면 안전성을 검토하고 부작용 위험이 없다고 판단되면 허가를 한다. 이어 임상 과정에서 유효성이 확인되면 승인을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최근 치료제 제품화를 위해 상담을 신청하거나 IND를 제출한 기업이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연구자들은 까다로운 규제와 부족한 정부 지원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주위 벤처기업 관계자 얘기를 들어보면, 식약처의 안전성 기준이 너무 높아 승인받기가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고 전했다.
연구자 A씨는 “황우석 사태 이후 기업들이 거의 트라우마에 가까운 상태로 식약처 승인이 안 될 거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유가 되지만, 식약처에서 요구하는 자료들을 토대로 테스트해 그에 맞는 결과를 낼 수도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각종 규제로 임상시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규제만 글로벌 기준에 맞추려고 하니 연구자 입장에서는 숨이 막힐 수밖에 없다. 게다가 희귀난치질환자는 수가 적고, 사망하더라도 치료제 임상 때문인지 질환 때문인지 판단하는 것이 애매해 리스크를 많이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기술을 활용하고 싶은 의사가 없어 기술력을 쌓을 수 없는 환경도 문제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임상의가 환자 1명이라도 살리고 싶어 연구를 신청하면 연구비를 지원 받는다. 또 연구 기간 동안 진료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연구에 전념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연구비를 충분히 지원하는 것은 물론, 환자를 모집할 수 있도록 관심을 높이는 정책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품화 관점에서의 기술력이 부족해 임상 진입 장벽이 높게 느껴질 수 있다는 입장도 있다. 김석중 툴젠 치료제사업부 본부장은 “국내에 유전자 치료제 연구를 하는 곳은 많지만 제품화의 관점에서 그렇게 (기술이) 진전된 곳이 많다고 하긴 어려워 IND 신청이 많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상시험은 기본적으로 상업화를 전제로 한 치료 물질을 환자에 사용하면서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시험하는 물질이 마지막 상업화되는 물질과 거의 같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생산이나 품질의 관점에서 많은 노력과 투자가 들어간다”며 “하지만 많은 첨단의약품, 특히 유전자치료, 세포치료 계열은 아직 많은 경험이 쌓인 부분이 아니고, 실제 동물시험에서의 최적화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사람에서 어떤 반응이 오는지를 보면서 최적화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일본이나 중국에서 유전자 치료제가 빠르게 임상단계에서 유효성이 평가되고, 불치병 환자들이 임상으로라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은 임상연구 트랙의 신설 및 적극적 활용이었다”라면서 “최근 시행된 첨단재생의료법에 임상시험과 구분되는 임상연구 트랙이 신설되고 이에 대한 세부사항을 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세부사항이 확정되고 운영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에 임을기 복지부 첨단의료지원관은 “기존 유전자치료제의 경우 약사법으로 규정돼 임상시험 진입 과정이 엄격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 부분을 완화하기 위해 별도 트랙을 신설해 연구기관 지정이나 심의위원회 구성 등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