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 첫 보건복지부 수장으로 의사 출신인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명됐다. 그간 정부 내 의사결정권자가 없어 지지부진하던 의료계와의 협상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특혜 복귀’ 논란에 대한 환자단체의 반발과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은 풀어야 할 숙제다.
정 장관은 22일 국무회의 참석과 함께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이재명 정부 초대 복지부 장관으로서 기쁜 마음과 동시에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낀다”며 “장기화된 의정갈등, 지역·필수·공공의료 위기, 초고령화에 따른 돌봄 수요 증가,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과 자살률 등 복지부가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당면한 과제는 의정갈등 해소다. 지난해 2월 의대 2000명 증원 이후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1년 반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정 장관도 지난 18일 인사청문회에서 의료정상화를 우선 추진 과제로 꼽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 뒤 의정 간 대화 물꼬가 트이면서 병원과 학교를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복귀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전공의들은 지난해 제시했던 ‘7대 정부 요구안’보다 압축된 ‘3대 요구안’을 발표하며 한 발 물러났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9일 △윤석열 정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재검토를 위한 현장 전문가 중심 협의체 구성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및 수련 연속성 보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를 위한 논의 기구 설치 등을 요구했다.
복지부도 해당 요구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모양새다. 복지부는 21일 입장문을 통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의료체계 정상화 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협의할 예정”이라며 “수련협의체를 가동해 수련 환경 개선 및 수련 연속성 보장 등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정 장관 취임으로 의정갈등 해결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8년 만에 임명된 의사 출신 장관인 데다 의료계로부터 신망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그간 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대해 반발하며, 정책 추진을 주도한 조규홍 전 복지부 장관, 박민수 전 복지부 2차관과 대화 테이블에 앉지 않겠다고 날을 세웠다.
의료계는 정 장관 임명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며 의정 간 대화가 조속히 이뤄지길 희망했다. 대전협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정 후보자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을 환영한다”면서 “지속가능한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에 깊이 공감한다. 중증·핵심의료 재건을 위한 진정성 있는 대화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이날 “하루빨리 전공의들이 수련을 재개하고, 의대생들이 교육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화의 장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면서 “정 장관 임명이 국민과 의료계 모두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정 후보자도 취임사를 통해 의정갈등 해결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국민과 의료계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의료개혁을 추진하겠다”면서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를 도입해 적정인력 규모에 대한 과학적인 추계를 시행하겠다. 지역·필수·공공 의료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충분한 보상도 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추가 의사 국가시험, 병역특례 등 특혜를 줘선 안 된다는 여론은 넘어야 할 산이다. 환자단체들은 조건 없는 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지난 21일 논평을 내고 “진정성 있는 사과도 책임 있는 복귀 일정도 없이 오직 요구를 관철하는 방식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결코 납득될 수 없다”면서 “(복귀를 위한) 조건은 없어야 한다. 복귀 없는 협상은 환자에게 고통일 뿐”이라고 호소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지난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발적 의사에 따라 사직·휴학했다고 주장하면서 1년 5개월 동안 의료와 교육 현장을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은 조건 없이 복귀해야 한다”면서 “먼저 복귀한 이들에게는 정부에 의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만큼 복귀는 조건 없이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국민들의 시선도 차갑다. 지난 17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의대생·전공의에 대한 복귀 특혜 부여 반대에 관한 청원’ 글이 올라왔다. 22일 오후 5시 기준 4만8000여명의 동의를 얻어 조만간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 요건인 5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청원인은 “일부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교육과 수련을 스스로 거부한 후 복귀를 요구하며 특혜를 기대하는 모습은 형평성에 어긋나며 국민적 박탈감을 심화시킨다”고 썼다.
이와 관련 정 장관은 22일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을 방문해 “특혜에 대해 따가운 지적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일방적인 정책으로 시작된 일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또 2년 이상 의사 배출에 공백이 생기면 국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 눈높이로 신속히 정상화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찾을 것”이라며 “수련협의체를 통해 의견을 모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