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 중심 말기 돌봄의 뼈아픈 한계
의료 현장에서는 임종기 판단의 모호함, 체계적인 돌봄 시스템의 부재, 그리고 환자 가족과 의료진이 겪는 극심한 심리적 부담으로 인해 정작 가장 중요한 환자의 인격적 존엄성이 위협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말기 돌봄은 대부분 병원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익숙한 환경과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분리된 환자는 낯선 의료 환경 속에서 질병과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병원 중심 시스템은 명확한 한계를 드러낸다. 환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기보다 관리와 처치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쉽다. 환자의 존엄성을 지키기보다 치료와 연명의료 결정이라는 의료적 절차에 집중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통합적이고 지속적인 돌봄보다 단편적인 의료 행위에 치중해 환자와 가족이 겪는 정서적·사회적 고통을 온전히 보듬지 못한다. 병원에서의 임종이 보편화되면서 가족의 심리적·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이는 다시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러한 한계 속에서 ‘죽음’을 선택지로 고려하게 만드는 현재의 논의는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돌봄 시스템을 제공하지 못한 현실을 보여준다.
돌봄의 장소를 ‘집’으로: 재가 돌봄과 재가 임종
생의 마지막을 존엄하고 평안하게 보낼 권리는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돌봄의 장소를 병원에서 환자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집’으로 옮기는 일이다. ‘재가 돌봄’과 ‘재가 임종’은 단순히 임종 장소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돌봄에 대한 철학과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재가 돌봄’은 환자가 자신의 집에서 필요한 의료 서비스와 돌봄을 통합적으로 제공받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무엇보다 환자가 가장 익숙하고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환자 중심 돌봄을 지향한다. 더불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자원봉사자 등이 하나의 팀을 이뤄 환자의 신체적 고통 완화뿐 아니라 심리적·사회적·영적 필요까지 충족하는 전인적 통합 돌봄을 제공한다. 나아가 환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이 겪는 슬픔과 부담을 덜어주고, 환자와 의미 있는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처럼 환자와 가족 모두를 아우르는 재가 돌봄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때 비로소 환자는 자신의 집에서 존엄하고 평화롭게 삶을 마무리하는 ‘재가 임종’을 맞이할 수 있다.
보편적 돌봄 문화를 위한 우리 사회의 과제
‘재가 돌봄’과 ‘재가 임종’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돌봄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사회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 우선 건강보험 수가 체계 개편을 통해 재가 의료 및 돌봄 서비스에 대한 현실적이고 충분한 수가를 보장해 의료기관과 돌봄 제공 인력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아울러 병원에서의 급성기 치료 이후 지역사회로 원활하게 연계돼 재가 돌봄으로 전환될 수 있는 끊김 없는 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인프라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은 인력과 인식이다. 재가 돌봄에 특화된 전문성을 갖춘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기존 인력에 대한 보수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죽음을 의료의 실패가 아닌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좋은 죽음(well-dying)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공동체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맺음말
삶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환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일은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돌봄이다. 우리가 지금 마주한 과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아니라 ‘남은 생을 어떻게 존엄하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다.
‘재가 돌봄’과 ‘재가 임종’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인간적인 해답이 될 수 있다. 환자가 자신의 공간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평안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는 사회, 바로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생의 말기’의 모습일 것이다. 이를 위해 국회와 정부, 의료계와 우리 사회 모두가 지혜를 모아 생명을 끝까지 지지하는 돌봄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