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의무기록(EMR) 등 진료정보가 개별 기관 안에 머물러 있고, 표준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을 활용하면 진료정보의 표준화, 나아가 서로 활용할 수 있는 체계로 더 빠르게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29일 서울대병원에서 개최된 ‘AI 기반 환자 의뢰·회송 체계 정책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의료기관의 인공지능 전환(AX)이 단순히 한 병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의료기관 간 연계와 의료체계 전반을 바꿀 수 있는 혁신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오는 6월부터 ‘보건의료 전주기 AX 스프린트 사업’에 본격 착수한다. 개별 병원의 EMR과 의료영상 저장 전송시스템(PACS)에 AI를 직접 연동해 중복 검사를 줄이고, 환자 이동 과정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EMR 보급률과 전 국민 건강보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의료기관마다 서로 다른 데이터 표준을 사용하면서 상호 활용이 어렵다는 한계가 지적돼 왔다. 데이터는 축적돼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원활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이 때문에 검사·진료·회송 단계에서 어느 병원을 갈지 선택하는 것도, 진료기록을 챙기는 것도 모두 환자의 몫이었다. 의료진 입장에선 진료정보 교류를 위해 현장 의료진이 개인의 차트를 일일이 검토하고 요약해야 했고, 의뢰서를 어떻게 작성할지 역시 주관적으로 판단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진료 의뢰나 회송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구축된 진료정보 교류 시스템을 보면 의료기관 종별로 차이가 있고, 활용 측면에서도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연계의 격차와 활용의 격차를 동시에 풀어야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는데, 이 두 가지가 모두 막혀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는 의료 현장에서 환자 의뢰 및 회송 절차가 AI 기반으로 자동화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환자 의뢰·회송 AX 실증은 우선 서울·경기, 강원, 전남 권역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된다.
서울·경기 권역은 서울대병원·서울의료원·성남시의료원, 강원 권역은 강원대병원·영월의료원·강릉의료원·평창보건의료원, 전남 권역은 전남대병원·광주기독병원이 선정됐다. 선정된 공공병원에는 하반기 추진 예정인 ‘공공의료 AI 고속도로 사업’과 연계해 국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공공 AX 전용망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신 연구위원은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선 진료정보 교류의 회복이 전제 조건”이라며 “진료정보 교류가 원활히 된다면 환자의 전원·회송 흐름이 보다 합리화되고, 수도권 쏠림 현상도 완화될 수 있으며, 나아가 지역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투자와 신뢰를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진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대병원이 구상하고 있는 AX 사업은 EMR 문서와 진료기록, 검사 결과, 스캔 자료를 구조화하고 국제전송기술표준(FHIR)을 기반으로 문자·음성인식을 활용한다. 이를 AI 에이전트가 요약·평가하고 서식 초안을 만들면 의료진이 이를 확인해 근거를 확정한다. 환자 치료 종료 후 결과가 좋아지면 다시 전원·회송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곽수헌 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어떤 검사 결과를 통해 어떤 질환을 배제해야 하는지, 어떤 치료나 수술이 필요한지, 어떤 결과가 나오면 다시 재회송할 수 있는지와 같은 중요한 메시지를 의료진이 입력하게 된다”며 “AI는 그 입력 내용에 대한 근거와 논리를 만들어주고, 직관적 판단을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열악한 지방의료원에 AX 사업을 어떻게 정착시킬지는 과제다. 공공병원들 중에 EMR 시스템이 낙후된 곳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조승연 영월의료원 외과 과장은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회장을 맡았을 때도 EMR 개발을 함께 논의하고 살펴봤지만, 수준이 너무 낮았다”며 “EMR 입력을 하느라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려울 정도다”라고 토로했다.
상급병원의 EMR과 지방의료원의 EMR은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네트워킹도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조 과장은 “단편적인 프로그램 도입도 필요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병원이 진료정보와 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특히 지극히 열악한 지역 공공병원의 강화와 안정적 운영이 선결 조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희숙 강원대병원 공공부원장도 “강원대병원이 권역책임의료기관이고 강원도 내 5개 지방의료원이 있지만, 실제 환자 정보를 원활하게 공유하지는 못하고 있다”며 AX 전환이 갈 길이 멀다고 짚었다.
조 부원장은 “지금 가장 부족한 부분은 강원대병원 같은 권역책임의료기관에서 AX를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 조직이 없다는 점”이라며 “가령 ‘공공의료 AX 지원센터’와 같은 조직이 구성돼 해당 조직이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하반기에 전산 자원을 보급하고, 함께 공유해서 쓸 수 있는 GPU를 제공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정보가 표준화되지 않으면 GPU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거나,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생길 수 있어 지방 공공병원을 대상으로 데이터 표준화 작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