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약계층 아동의 끼니를 지키기 위한 아동급식카드가 술·담배 구매와 허위 결제 등에 악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아동이 보호시설에 입소하거나 사망한 뒤에도 카드 사용이 중단되지 않는 등 자격 관리와 예산 집행 시스템 전반에 심각한 허점이 확인되면서 정부가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이하 추진단)과 보건복지부는 24일 결식아동 급식카드 운영실태 합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추진단과 복지부는 급식카드 운영실태를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합동조사를 진행했다.
아동급식카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한부모 가정 등 18세 미만 취약계층 아동이 끼니를 거르지 않고 적절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가 발급하는 카드다. 음식점과 편의점 등 지정 가맹점에서 식사나 식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복지부는 지원 대상자의 자격과 한 끼당 지원 단가 등을 지방정부에 권고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국 182개 지방정부가 총 5621억원의 예산을 들여 급식카드를 운영했으며, 약 15만 명의 아동이 지원을 받았다.
부모 가게서 1억7000만원 허위 결제
조사 결과, 급식카드로 술과 담배를 구매하는 등 아동의 식사와 무관하게 사용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정부가 전국 17개 광역시·도에서 시·군·구 한 곳씩을 선정해 표본 조사한 결과, 서울·인천·부산·광주를 제외한 13개 광역시·도에서 급식카드로 술이나 담배를 구매한 내역이 발견됐다.
현재 급식카드 가맹점 가운데 편의점은 술·담배 결제를 기술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반면 대부분의 일반 마트에는 이 같은 결제 제한 시스템이 설치돼 있지 않아 술·담배를 비롯해 아동 급식과 관계없는 물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술·담배 구매내역이 확인되지 않은 서울 등 4개 광역시·도는 일반 마트의 급식카드 가맹점 등록을 가급적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식당을 운영하는 결식아동 부모가 자신의 가게에서 자녀의 급식카드 충전금을 허위 결제한 사례도 적발됐다. 이 같은 방식으로 급식카드를 부정 사용한 부모는 55명으로, 허위 결제액은 약 1억7000만원에 달했다. 일반 마트 업주와 공모해 자녀의 급식카드를 가게에 맡긴 뒤 세제와 휴지 등 생활용품을 한꺼번에 대량 구매한 사례도 확인됐다.
급식카드가 식사와 관련성이 떨어지는 업종이나 일반적인 식사시간이 아닌 심야시간에 사용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정부가 182개 지방정부의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카드 사용내역을 분석한 결과, 전체 발급 카드의 약 14%인 2만2000여장이 한 차례 이상 식사와 관련성이 낮은 업종에서 사용됐다.
카페 결제액이 약 10억90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학원·병원·미용실 등 생활시설에선 약 1억4000만원, 술집에선 약 700만원, PC방·만화방 등 오락시설에선 약 500만원이 결제됐다.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심야시간에 결제된 금액은 약 92억원으로, 같은 기간 전체 급식카드 결제액 2096억여원의 4.4%에 달했다.
심야시간 사용액은 편의점이 약 40억원으로 전체의 42.9%를 차지했다. 일반음식점은 약 37억원으로 40%, 카페는 약 3억2000만원으로 3.4%였다.
아동 사망 후에도 급식카드 부모가 사용
급식카드가 취지와 다르게 사용된 배경에는 지방정부의 허술한 카드 발급과 자격 관리가 있었다. 지방정부는 복지부 표준매뉴얼에 따라 급식 지원 대상 아동을 복지정보 통합시스템인 ‘행복e음’에 등록하고 자격의 적정성을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지방정부는 지원 대상자를 행복e음에 등록하지 않고 별도의 카드 발급 시스템으로만 관리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이름을 카드 사용자로 입력해 급식카드를 발급하는 것도 가능했다.
시설 입소와 사망, 학교 졸업 등 아동의 자격 변동사항을 확인하고 신속하게 카드 사용을 중지해야 하지만, 이 같은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부모의 학대로 아동이 보호시설에 입소해 부모와 분리됐는데도 부모가 급식카드를 계속 사용한 사례는 14명, 약 550만원으로 파악됐다. 아동이 사망한 이후에도 부모가 카드를 사용한 사례도 1건 확인됐으며, 결제액은 약 61만원이었다.
아동이 충전된 급식비를 모두 사용하지 못해 자동 소멸된 금액도 상당했다. 지난 2024년 기준 급식카드 충전액 가운데 사용되지 않고 소멸한 금액은 총 171억여원으로, 전체 충전액 2207억여원의 7.8%에 달했다. 충전액의 10%도 사용하지 않은 아동은 4800여명이었다.
아동과 보호자들이 급식카드를 사용할 경우 취약계층으로 낙인찍힐 것을 우려하거나, 카드 사용방법과 이용 가능한 가맹점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조사됐다.
정부, 급식카드 부정 사용 주기적 점검
정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방정부에 아동급식카드가 제도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권고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지원할 방침이다. 우선 급식카드를 아동의 식사 목적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카드사 가맹점과 결제시스템을 개선한다.

술집 등 아동의 식사 목적에 맞지 않는 업체는 급식카드 가맹점으로 자동 등록되지 않도록 차단한다. 기존 가맹점도 업종을 재확인해 부적정 업종은 제외하고, 심야시간 급식카드 이용도 제한할 예정이다. 가맹점 업주가 허위 결제 등 부모의 부정 사용에 협조한 사실이 적발될 경우엔 급식카드 가맹점에서 제외하는 등의 조치를 하도록 지방정부에 권고할 방침이다.
급식카드 발급과 자격변동 관리도 강화한다. 복지부는 급식카드를 발급한 지방정부 담당자가 대상 아동을 행복e음 시스템에도 반드시 등록하도록 관련 지침을 개정할 계획이다. 행복e음에 등록된 아동이 시설에 입소하거나 사망·졸업하는 등 자격 변동사항이 발생하면 담당자가 신속히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의 변동 알림 기능도 올해 안에 개선한다. 지방정부 급식카드 발급시스템과 행복e음 간 정보 연계도 지원한다.
부모의 부정 사용이 의심되거나 장기간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아동 등에 대해선 지방정부가 주기적으로 점검하도록 할 방침이다. 지방정부 담당자가 제도 변화와 관리 기준을 숙지할 수 있도록 정기교육도 마련한다.
아이들이 지원금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도록 카드 사용방법과 미사용 충전액에 대한 안내도 강화한다. 카드 발급 단계에서 사용방법과 이용 가능한 가맹점 등을 충분히 안내하고, 카드 사용액이 적은 아동 가구에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사용 가능 잔액을 알릴 계획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8월부터 182개 지방정부를 대상으로 카드 색상과 표기 등 디자인에 불필요한 낙인효과를 유발하는 요소가 있는지 전수조사하고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앞으로는 급식카드가 외관상 일반 카드와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도 아동과 보호자에게 별도로 안내해 낙인 우려를 줄일 방침이다.
김영수 추진단장은 “지방정부가 급식카드 발급에 치우쳐 사후 관리에는 소홀했던 부분이 확인됐다”며 “새로운 지방정부가 시작되는 만큼, 아동급식제도 전반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급식카드는 장점도 있지만, 도시락이나 반찬 배달 등 급식지원 제도의 취지에 보다 부합하는 대안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수엽 복지부 제1차관은 “아동급식카드의 본래 취지에 맞게 부적절한 품목의 결제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가맹점을 지속해서 확대하겠다”며 “아동들이 이용 가능한 식당이나 카드 잔액을 알지 못해 지원금이 방치되지 않도록 사용자 맞춤형 안내도 대폭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