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동 불편한 만성질환자의 사각지대, 삶의 궤적을 돌보는 재택의료의 가치 [병원이 집으로]

거동 불편한 만성질환자의 사각지대, 삶의 궤적을 돌보는 재택의료의 가치 [병원이 집으로]

노동훈 원장(편한자리 의원, ‘방문진료 의사 노동훈 원장의 당뇨 이야기’ 저자)

기사승인 2026-07-23 06:00:07
동두천 구도심의 언덕, 주차가 힘든 낡은 빌라에 차를 세웠다. 왕진 가방을 어깨에 메고 계단을 올라 3층으로 향했다. 숨이 차오를 무렵 도착한 문 앞, 굳게 닫힌 철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어르신, 방문진료 의사가 왔습니다!” 목청을 높여도 묵묵부답이다.

첫 방문진료 시도는 그렇게 빈손으로 끝났다. 나중에 요양보호사를 통해 듣기로 귀가 어두운 데다, 낯선 이의 방문에 겁을 먹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 방문은 요양보호사를 통해 약속을 잡고서 문을 열 수 있었다.

방 안의 풍경은 참담했다. 코를 찌르는 찌릿한 오줌 지린내 속에서, 어르신은 기력이 쇠해 기어 다니며 생활하고 있었다. 혼자서는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상태였다. 진료를 시작하며 팔에 혈압 커프를 감는 순간,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셨다.

오랜 시간 관리되지 못한 신체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간신히 측정한 혈압과 혈당 수치는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높았다. 언제 급성 합병증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운 상태였다. 이대로 두면 큰일 나겠다는 걱정이 생겼다.

치료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당장 쓰러질 듯 마른 어르신에게 시급한 것은 생명을 지탱할 식사였다. 경관식을 처방했다. 영양 공급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 비로소 의학적 개입을 시작했다. 드시던 약을 파악해 복잡하게 얽힌 처방을 조절했다. 약물의 상호작용과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 투약을 이어가자, 요동치던 혈압이 서서히 안정세를 찾기 시작했다.

난관은 혈당 관리였다. 당뇨는 식단과 운동 등 일상 생활 습관에 영향을 받는다. 병원 진료실에서는 ‘음식 조절하시고 운동하세요’라는 한 마디로 끝나지만, 거동이 불가능한 고령자에게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어르신과 눈을 맞추고 생활 습관 개선의 필요성을 설명했고, 요양보호사에게도 당뇨 관리를 위한 교육을 했다. 의료진과 돌봄 인력, 그리고 환자의 삼박자가 재택 공간에서 팀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기 방문과 집중 관리가 이어지면서 어르신의 상태는 호전되었다. 방 안 가득했던 퀴퀴한 냄새가 사라진 자리에 활력이 채워졌다. 삶은 계란, 오이, 당근, 방울토마토, 고등어 등 당뇨 관리 식단을 유지한다. 기어 다니시던 어르신이 주변 물건을 이용해 잡고 천천히 걸어 다니실 수 있게 되었다. 무너졌던 인간의 존엄이 방문진료를 통해 일어선 순간이다.

이 환자의 사례는 현장 중심의 방문진료에서 혈압과 혈당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거동이 불편해 병원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노인 환자들은 도처에 있다. 만성질환을 방치당한 채 사각지대에서 서서히 허물어져 간다. 의사가 가운을 벗고 환자의 집으로 갈 때, 보이지 않던 질병과 회복이 보인다.

당뇨와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은 처방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환자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주거 환경과 매일의 생활 습관이 치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방문진료는 단순히 찾아가는 의료 서비스를 넘어, 사각지대에 놓인 생명을 구하고 삶의 궤적을 끝까지 돌보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더 많은 의사들이 진료실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와, 따뜻한 기적에 동참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공고해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