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해 수업을 거부했던 의대생들이 1년 반 만에 전원 복귀를 선언했다. 장기화된 의정 갈등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긴 했지만, 의사 양성체계의 완전한 정상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제 공은 각 대학과 수련병원, 정부로 넘어갔다. 의대생 복귀가 양질의 의사 양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육 체계 전반을 개선하고,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12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교육위원회, 의협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와 정부를 믿고 학생 전원이 학교에 돌아가 의대 교육 및 의료체계가 정상화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작년 2월 집단 휴학에 돌입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집단행동이 장기화되면서 지친 의대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진 데다 이달 말 미복귀생에 대한 각 대학의 유급, 학사경고 처분이 임박하자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의대생 대다수는 유급 시한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 5월 기준 전국 40개 의대 재학생 1만9475명 중 유급 대상자는 8350명(42.8%)으로 집계됐다. 제적 대상자는 46명이다.
의대생들이 돌아가겠다고 선언했지만, 마음대로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 의대는 1년 단위의 ‘학년제’로 운영돼 1학기에 2학기 수업을 들을 수 없다. 원칙적으로 유급되면 내년 3월에나 복학할 수 있다. 예과생은 여름 계절학기로 부족한 수업을 벌충하는 방안이 있지만, 본과생은 1년에 최소 40주가량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 본과 4학년의 경우 복귀해도 9월 의사 국가고시 응시 일정을 맞추기 어렵고, 의사 국시를 보는 데 필요한 ‘병원 임상실습’도 이수하지 않은 상태다.
결국 유급 대상자가 수업에 복귀하려면 대학과 정부가 학사 유연화와 같은 특례를 열어줘야 하는데, 이 경우 여러 논란이 예상된다. 우선 이미 복귀한 학생들과의 형평성 문제다. 복귀한 학생들은 이미 수업을 듣고 시험을 봤다. 의대협은 정부에 “학사 일정 정상화를 통해 의대생들이 교육에 복귀할 수 있게 종합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수하지 못한 수업을 보충해 내년에 정상적으로 다음 학년에 진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면 학교에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의대 인프라 부족에 정상 교육 불투명
의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의대생들이 복귀를 선언하며 기존 재학생(24·25학번)과 내년 신입생(26학번)까지 3개 학년이 1학년 수업을 듣는 ‘트리플링’은 피하게 됐지만, 지금도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교육위원회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가 추진했던 국립의대 건물 신·증축이 예정된 건물들은 여전히 설계·행정 절차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발주하는 턴키(설계·시공 일괄 입찰) 방식이 국토교통부 심의에서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받으며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에 따라 턴키 방식으로 추진하려 했던 8개교 8개동은 사실상 사업 추진이 중단됐다. 일반 공사 방식이 적용돼야 하는 나머지 9개교 12개동 역시 대학별 증원 규모 재논의와 공간 검토 지연 등의 이유로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의대 증원에 따라 건물을 짓기로 한 것이었는데, 증원 재논의 결정에 따라 학생 수가 불확실하게 되면서 사업을 잠시 중단했다는 게 교육부 측의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국립의대 9개교 21개 건물 신·증축이 설계 및 행정 절차 단계에서 멈춘 셈이다.
인프라 부족은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의학교육 평가인증과 직결된다. 의평원은 입학 정원이 10% 이상 증원된 30개 의대를 대상으로 2025학년도부터 6년간 매년 주요 변화 평가를 시행한다. 평가에서 불인증을 받은 의대의 경우 학생들은 6년 과정을 졸업하더라도 의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얻지 못하게 된다. 이미 울산대, 원광대, 충북대 등 3개 의대가 의평원 ‘불인증 유예’ 판정을 받았다.
2026학년도 모집 인원은 증원 이전으로 돌아갔지만, 증원된 정원으로 2025학년도 신입생을 받은 의대는 교육 인력·시설 확충이 늦어지면서 인증평가 탈락과 교육 질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이 지난 4일 발간한 ‘무리한 의대 증원이 의료 시스템에 미칠 영향’ 보고서를 보면, 인터뷰에 참여한 의대 재직 교수들은 “현재 교육 환경으로는 (늘어난 의대생을) 감당할 수 없다”며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대학 차원에서 증원에 대비해 시설과 자원을 확충 중’이라는 응답은 63.6%에 그쳤다. 18.2%는 ‘구체적인 계획조차 없다’고 답했다. 교수들은 “강의 공간은 충분하더라도 도서관이나 기숙사 이용이 쉽지 않을 수 있고, 의평원 평가인증에서 기준을 통과하기 어려운 의대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료계 국민적 반감 극심…“최소한의 사과 이뤄져야”
의료계를 향한 국민적 불신과 반감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의대생 복귀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정부가 의료계 집단 요구에 번번이 굴복한다’는 비판 여론이 크다. 과거에도 의료계의 집단행동에 정부가 휘둘리거나 정책이 좌초됐는데, 이번에도 나쁜 선례가 추가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의정 갈등이 길어지는 동안 환자들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10개 단체가 모인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발적 의사에 따라 휴학했다고 주장한 만큼 정부와 국회는 복귀한 의대생에게 특혜성 조치를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이제 더는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를 겪고 싶지 않다”며 ‘필수의료 공백 방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도 의대생들이 대국민 사과 없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처사는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상급종합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일찌감치 복귀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있는데 뒤늦게 들어오면서 마치 개선장군처럼 행세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학사 일정을 자기들 피해 없게 만들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 원칙대로 1년 유급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최소한 먼저 들어온 학생들에게 그리고 국민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면서 “학생들을 위해서, 미래 의료를 위해서라도 이건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각 대학과 함께 복귀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12일 입장문을 통해 “시기, 방법 등을 포함한 복귀 방안은 대학 학사 일정과 교육 여건, 의대 교육과정의 특성을 고려해 대학 및 관계 부처와 충분히 논의하고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