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지원책 나왔지만…현장 “의료 붕괴 악순환 끊기엔 부족”

산부인과 지원책 나왔지만…현장 “의료 붕괴 악순환 끊기엔 부족”

사법리스크 경감·수가 인상안에도 비판 여론
“현장 떠난 의사들 돌아오게 할 방법 고민해야”

기사승인 2026-05-28 06:00:08
kuk20240812000033.950x.9.jpg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정부가 고위험 산모의 ‘응급실 뺑뺑이’를 막기 위해 모자의료 전원·이송 체계 강화와 산부인과 지원 확대 방안을 내놨지만, 의료계에서는 무너진 산과 의료를 회복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26일 국무회의에서 ‘고위험 임산부·신생아 및 응급의료체계 개선 방안’을 보고했다. 개선안에는 △모자의료 전원·이송체계 강화 △전국 단위 모자의료 협력망 구축 △모자의료센터 체계 재편 △산과·신생아 전문인력 부족 대응 △건강보험 수가·보상체계 개편 △의료진 법적 부담 완화 △불가항력 분만사고 국가보상 확대 등이 담겼다.

특히 정부가 산부인과 인력 확보 방안으로 수가 보상 강화와 의료진 사법리스크 완화 대책을 제시한 점이 주목받았다. 그동안 의사단체들이 요구해온 필수의료 지원 방향이 일부 반영됐다는 평가다. 여기에 1차 의료기관 의료진을 활용해 응급실 대기 인력을 늘리고, 시니어 의사를 활용해 인력 공백을 메우는 방안도 포함됐다.

그러나 현장 의료진들은 이번 대책만으로는 붕괴된 산과 의료체계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수가 인상과 법적 부담 완화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실제 인력 유입과 지역 분만 인프라 회복으로 이어지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여전히 많다는 설명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26일 입장문을 내고 “이번 발표는 이미 수년 전 시행됐어야 할 대책”이라며 “무너진 분만 인프라와 산부인과 의료 현장 현실을 고려하면 실제 효과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사회는 특히 전원·이송체계 강화 대책에 대해 “받아줄 병원이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만 의미가 있다”며 “권역·지역 모자의료센터에 실제 진료할 의사와 간호 인력이 없으면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역에서 산부인과 진료를 보는 의사들도 정부 대책이 현장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시니어 의사 채용과 의원급 의료기관 의료진의 응급실 대기인력 활용 방안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산부인과 의사 A씨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지방 분만병원들은 지금도 산부인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 원장들이 직접 당직을 서는 상황”이라며 “병원을 유지하기도 힘든 개원의들에게 응급실 근무까지 맡기는 방식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산부인과는 의사 한 명만 추가한다고 유지되는 구조가 아니라 간호 인력과 신생아실, 소아청소년과 등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시스템”이라며 “단기 인력 투입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한 분만 체계를 만들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산모와 신생아를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려면 장기적으로 산부인과 의료체계를 복원할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단기 대책보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현장을 떠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A씨는 “일선 산부인과 의사 입장에서 선배·후배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만을 포기하는 이유는 사법리스크와 경제적 부담 등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건의료 정책 전반을 점검하고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후배 의사들이 분만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현장을 떠난 선배 의사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가 단발성 대책만 내놓아서는 떠난 의사들의 복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번 대책에서 수가 인상과 사법리스크 경감책을 제시했지만, 세부 방안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A씨는 “사법리스크 경감책이나 수가 인상안이 나왔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이 체감하기에는 부족하다”며 “외국에서는 출산 과정에서 불가항력적 이유로 뇌성마비나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가가 책임을 지며 산부인과 의사들의 법적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산부인과 의료 붕괴를 일으킨 악순환 구조를 끊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s.com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s.com
이찬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