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머리카락이 빠진 아이를 보고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아이들의 순진한 말과 표현이 혹여 오양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어머니 박서연(49·경기·가명)씨는 그게 요즘 걱정이다.
“학교에서 실제로 친구들을 만났을 때 벌어지는 일은 제가 옆에서 막아주거나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어요.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공개하더라도 각각의 부모가 자녀에게 소아암을 설명하는 방식도 다를 거예요. 원적학교로 돌아갔을 때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아영이의 상황을 얼마나 이해해 줄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아픈 아이가 치료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다시 교실에 앉는 일이 아니다. 치료로 달라진 외모를 친구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학습 공백을 따라갈 수 있을지, 기존의 또래 집단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지, 자신의 병력을 어디까지 알려야 할지 수많은 문제를 마주한다. 아픈 아이에게 치료의 끝은 학교와 사회로 돌아가는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인 셈이다.
공백에 빠져 뒤쳐진다
치료 중인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단순한 학습 공백에 그치지 않는다. 이영준 고대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병원에서 치료받는 아이들은 건강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동시에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자신만 병원에 있어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한다”며 “실제 학습 공백을 따라가기 어려워 정규 교육을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겠다는 학생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래 관계는 단절된다. 병원에 언제나 자신과 같은 나이의 친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아이는 치료받는 동안 또래와 정서적으로 교류할 기회를 잃고, 자신만 세상에서 고립돼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교수는 “‘나만 남겨져 있고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은 성인에게도 힘든 감정”이라며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훨씬 크게 다가올 수 있다”고 짚었다.
치료 기간이 늘어날수록 아이가 학교에서 떠나 있는 시간도 길어진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진단받은 아이가 치료를 마친 뒤 4학년으로 돌아간다면 학년은 올라갔지만, 또래 관계 경험에는 2년의 공백이 생긴다. 특히 발병하기 전에 이미 또래 집단이 형성된 고학년 여학생들은 자신이 병원에 있는 동안 기존 친구들 사이에서 배제되지 않을지 걱정이 크다.

신체적인 후유증이 남는 경우 학교 복귀는 더 복잡해진다. 시신경 부위에 종양이 생겨 시력이 손상되고, 그 영향으로 학업 공백이 생긴 학생은 특수학급의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복귀한 학생이 결석을 자주 하거나 체육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보건실에 자주 가는 모습을 보며 다른 학생이 질투하거나 특혜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박미림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암센터장은 “외모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며 “아이들이 체력 저하와 학습 공백, 또래 관계, 교사의 이해 부족 등 여러 어려움을 동시에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병을 숨긴다
가족들은 학교 복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병력을 공개할지도 고심한다. 병력을 숨기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병 때문에 아이가 놀림받거나 나중에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아이들이 아픈 친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특히 어린 학생은 암이 전염되는 질병이라고 생각하거나, 그 아이가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박 센터장은 “아직 아이들 사이에선 암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아이가 학교로 복귀할 때 의료진이 학교를 직접 방문하거나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질병과 치료 과정을 설명하기도 한다”고 했다.
병원학교 교사는 아이가 병을 진단받은 시기부터 보호자와 소통한다. 복귀 약 6개월 전부터는 원적학교 교사와 구체적으로 준비한다. 보호자가 질병 공개를 원하지 않을 때도 학교의 협조가 필요하다. 원적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이뤄진다. 국립암센터는 서울·경기권 교사들에게 1~2년에 한 번씩 소아암 관련 교육을 통해 실제 학교 복귀 사례와 아이들이 겪은 어려움, 해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다만 아이의 안전을 위해 학교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정보도 있다. 1형 당뇨병이 있는 아이는 하루에 네 번 정도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요즘엔 자동 인슐린 펌프가 보편화돼 혈당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지만, 과거엔 병을 공개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주사를 맞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친구들이 그 아이가 당뇨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생긴다.
1형 당뇨는 운동 중 혈당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담임교사뿐만 아니라 체육·영양교사도 아이의 상태를 알아야 한다. 갑자기 저혈당이 발생했을 때 보건교사가 신속히 대처하려면 최소한의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이 교수는 “질환이 있는 아이도 다른 학생과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하지만 특정한 상황에선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학교가 아이의 상황을 전혀 모르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어 아이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필요한 정보는 학교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완전한 회복’으로 나아가려면
학교로 돌아가는 시점은 아이마다 다르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3~4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고 머리카락이 없는 상태에서도 가발을 쓰고 학교에 가겠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 반대로 2~3년의 치료가 끝나고 머리카락이 모두 자란 뒤에도 학교에 가기를 꺼리는 아이가 있다.

치료를 마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교 복귀 지원만이 아니다. 아이가 성장해 성인이 된 뒤 직업을 갖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장기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병원과 학교, 사회의 역할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박 교수는 소아암 생존자 가운데 ‘정상’과 ‘장애’ 사이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지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치료 후 건강하게 커서 잘 생활하는 생존자도 있지만, 계속 취업에 실패하며 좌절하는 사람도 있다”며 “명확한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겉으로는 정상처럼 보이면서 일부 기능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치료가 끝난 아이들이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도 “몸의 건강은 회복됐지만 사회적 건강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완전한 회복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아이가 다시 학교와 가정에 적응하고 또래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아암 치료 성과가 높아지면서 아픈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장기 입원과 반복되는 치료를 견디는 동안 아이들의 배움은 멈추고, 학교와 친구들에게서 멀어진다. 병원학교와 원격수업이 교육의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충분한 학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치료를 마친 뒤 원래 학교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온전한 지원도 없다. 아프다는 이유로 아이가 배움과 미래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 아픈 아이들의 투병이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8편에 걸쳐 묻는다.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