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한 소아암, 의사도 사라진다 [아픈 아이들의 교실⑥]

희소한 소아암, 의사도 사라진다 [아픈 아이들의 교실⑥]

기사승인 2026-07-18 06:00:04
5월28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소아병동 병원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든 작업물이 교실 벽에 붙어 있다. 임은재 기자
5월28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소아병동 병원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든 작업물이 교실 벽에 붙어 있다. 임은재 기자
국내 소아암 치료 성적은 높은 수준까지 올라왔다. 소아암 5년 생존율은 약 85%로, 아이 10명 중 8~9명이 5년 이상 산다. 문제는 이 성과를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느냐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감소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부족이 맞물리면서 현장에선 “소아암 진료체계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극한의 상황이다.” 지난 30년간 소아암 환자를 진료하며 소아혈액종양 분야 권위자로 꼽히는 박현진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암센터 교수는 현재 소아암 진료 현장 상황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박 교수는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서 총무이사, 암생존자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의사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아쉬운 상태”라며 “신규 유입 인력은 없고 기존 의료진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소아암은 ‘희귀암’

소아암은 환자 수가 많지 않다. 대한암학회의 ‘2025 암연구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암 발생자 수는 28만2047명(남성 14만7468명, 여성 13만4579명)으로, 이 중 840명의 0~14세 소아암 환자가 새롭게 진단됐다. 연령에 따른 소아암 발생 비율을 보면 0~4세는 100만 명당 192명, 5~9세는 113명, 10~14세는 159명이다.

2023년 주요 소아청소년암 발병률 현황. 자료=중앙암등록본부.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2023년 주요 소아청소년암 발병률 현황. 자료=중앙암등록본부.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소아암은 전체 암 발생의 1% 내외를 차지해 희소하지만, 특수한 경우가 많다. 소아암은 1~9세 소아 사망원인 가운데 1위, 10~19세 사망원인 중 2위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질환이다.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의 2023년 주요 소아청소년암 발병률 현황을 보면 기타 암(514명·41.5%)을 제외하고 소아암 중에 백혈병이 28.2%(349명)로 가장 많다. 이어 뇌·중추신경계암 11.6%(144명), 비호지킨 림프종 7.4%(91명), 뼈·관절 연골암 6.1%(75명), 중피성 연조직암 5.3%(65명) 순이다. 박 교수는 “전체 숫자는 아주 적지만, 그 안에 포함된 암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며 “그런 의미에서 모든 소아암은 희귀암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아암 치료가 성인암 치료와 다른 가장 큰 이유는 환자가 ‘성장 중’이라는 점이다. 성인은 이미 성장이 끝난 상태에서 치료받지만, 소아암 환자는 0~19세까지 성장 단계가 다양하다. 한 살 아이와 초등학생, 사춘기를 지난 청소년의 고려 사항은 다를 수밖에 없다.

치료 목표도 다르다. 소아암 환자는 단순히 몇 년 더 생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약제를 선택할 때도 생식·내분비 기능, 성장, 장기 합병증을 고려해야 한다. 같은 효과를 낸다면 부작용이 적은 치료를 선택해야 하고, 방사선 치료 역시 가능한 한 후유증을 줄이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박 교수는 “소아암 치료의 목표는 아이를 5년이나 10년 더 살리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살게 하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며 “아이를 살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그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해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신규 소아혈액종양 전임의 단 ‘1명’

소아암 진료의 가장 큰 위기는 ‘인력’이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자체가 줄어드는 가운데 그 안에서도 소아혈액종양 분야를 선택하는 의사는 극히 드물다.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와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 따르면 2020년 750명이던 소아과 전공의는 2021년 599명, 2022년 442명, 2023년 304명으로 점차 감소하더니 의정 갈등 사태로 2024년 단 39명으로 쪼그라들었다. 2025년에는 139명으로 100명대를 회복했다.

최근 6년(2020~2025년)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및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현황. 자료=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최근 6년(2020~2025년)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및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현황. 자료=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반면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최근 6년간(2020~2025년) 60명대로 변동이 없다. 사실상 신규 인력이 배출되지 않고 있다. 올해 소아혈액종양 전임의 과정을 시작한 신규 인력은 전국에서 단 1명뿐이다. 전국의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70명이 채 되지 않는데 평균 연령은 50.2세다. 이들 중 향후 5년 안에 약 10%가 은퇴할 예정이다.

박미림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암센터장은 “신규 인력은 들어오지 않는데 기존 의료진은 은퇴 시기를 맞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은퇴하신 선생님들이 실제로는 은퇴하지 못하고 근무 기간을 계속 연장하면서 아이들을 진료하고 있다”고 했다.

단순히 의사 수가 적다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소아암 환자는 언제 상태가 악화할지 알 수 없다. 감염, 출혈, 호흡곤란, 혈소판 감소 등 응급상황이 갑자기 발생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지역에 소아혈액종양 의사가 한 명만 남으면 그 의사는 365일 24시간 아이 곁을 지켜야 한다”며 “환자가 한 명뿐이더라도 그 아이에게 언제 감염이 생길지, 언제 상태가 나빠질지 알 수 없어서 항상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의료진이 어떻게든 몸을 갈아 넣으며 막아왔지만, 한계에 다다랐다. 이대로는 버틸 수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박 교수는 “한 사람이 모든 걸 책임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국 의사들이 더 이상 이 일을 하지 못하겠다며 현장을 떠나게 됐다”면서 “그 결과 지역의 소아암 진료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 명의 의사가 100명의 역할을 해야 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토로했다.

진료에 밀려 연구는 뒷전이게 된다. 소아암은 환자 수가 적고 시장 규모가 작아 제약사나 기업 투자가 성인암보다 제한적이다. 그만큼 공공 연구와 의료진 주도 연구가 중요하지만, 현장 의료진은 진료를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박 센터장은 “현재 의료진은 환자 치료만큼은 절대로 놓쳐선 안 되기 때문에 모든 역량을 진료에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가장 먼저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연구”라며 “연구해야 아이들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고, 더 좋은 약을 개발해 치료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재 높은 생존율도 앞으로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꺼지는 소아암 치료 등대

인력 부족은 환자 진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소아암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만으로 치료할 수 없다. 소아외과, 소아병리, 소아마취, 약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인력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박 센터장은 “소아암은 여러 진료과가 함께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치료가 끝난 뒤에는 장기 추적 관리도 해야 한다. 인력이 부족해지면 응급진료뿐 아니라 다학제 진료와 장기 추적 관리 등 모든 영역에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현진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암센터 교수가 5월28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소아병동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임은재 기자
박현진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암센터 교수가 5월28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소아병동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임은재 기자
소아암 진료는 예측하기 어렵다. 박 교수는 주말 이틀 동안 병원에서 한 아이를 지킨 경험을 전했다. 아침부터 상태가 불안정했던 환자였다. 흉부 X-ray(엑스레이)를 다시 촬영해 보니 전날보다 폐가 더 뿌옇게 보였다. 금요일 밤 환자를 보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일요일 아침 병동에 CT(컴퓨터단층촬영) 촬영을 준비하도록 했는데 밤사이 아이의 기침이 심해지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CT 결과를 휴대전화로 확인했고, 도착한 뒤 이틀 동안 아이 곁을 지켰다. 아이의 상태는 이후 호전됐다.

박 교수는 “아이들은 갑자기 상태가 나빠질 수 있어 그럴 때 환자 곁에 붙어 집중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인력이 있어야 한다”며 한 명의 의사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구조로는 안 된다고 짚었다. 그는 “전국이 같은 수준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사를 여러 명 확보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의사는 번아웃 되지 않고 환자는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력 문제는 지역 격차와도 맞물려 있다. 소아암 환자의 약 60%는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진단받는다. 그러나 전문의와 치료 역량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지역에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없으면 환자는 수도권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소아암은 한 번 치료를 시작하면 대개 2~3년 동안 이어진다. 초기 진단이나 고위험 치료는 수도권 병원에서 받더라도 이후의 통상적인 항암치료와 추적 관리는 지역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역 진료체계가 무너지면 모든 과정이 수도권 의존으로 이어진다.

어린 생명 살린 ‘소아청소년암 진료체계 구축사업’

이런 배경에서 ‘소아청소년암 진료체계 구축사업’이 시작됐다. 지역 거점병원과 중앙전문기관이 협력해 어디에 살든 진단·치료·사후관리 등 전주기 진료체계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운영 모델은 △거점기관형 △지역개방형 △타지역지원형으로 나뉜다. 거점기관형에서 충남대병원, 화순전남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이 각각 충청·호남·경남권역을 맡고 있다. 칠곡경북대병원은 지역개방형으로 경북권역을 담당한다.

국립암센터는 경기·강원권역 타지역지원형을 담당하고 있다. 강원도에는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없어 국립암센터가 강원대병원에 전문의를 파견하고 있다. 파견된 전문의가 지역에서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국립암센터나 다른 치료 가능 병원으로 연결한다.

박미림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암센터장이 6월11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박미림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암센터장이 6월11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실제 강원대병원에 파견된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백혈병으로 의심되는 환자를 전원한 사례도 있었다. 16세 A양은 지난해 8월 왼쪽 목과 쇄골 부위에 혹이 만져지고 특별히 부딪힌 적이 없는데도 멍이 생기는 증상으로 강원대병원을 찾았다. 혈액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확인됐고, 파견 근무 중이던 전문의는 외래 진료 과정에서 환자의 중증도를 확인했다. A양은 즉시 국립암센터 응급실로 연계됐다. 이후 A양은 BCR/ABL 유전자 변이가 없는 고위험 질환인 ‘비정형성 만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진단받았다. 현재 항암치료와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포함한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박 센터장은 “강원 지역에는 과거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없었지만, 전문의 한 명이 파견돼 3~4년 동안 진료하면서 환자 수가 늘었다”며 “과거에 없던 소아암 환자가 갑자기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강원 지역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가야 했던 아이들이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지역 소아암 진료체계가 작동하려면 핫라인과 전원체계도 갖춰져야 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공식화된 핫라인이 구축된 것은 아니다. 다만 소아혈액종양학회 소속 교수들 사이에서 위중한 환자가 발생했을 때 어느 병원, 어느 의사에게 의뢰할지 서로 연락하는 비공식 체계가 작동하고 있다.

박 교수는 소아암 진료체계를 소방서에 비유했다. 환자 수가 적다고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불이 자주 나지 않는다고 해서 소방서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며 “소아암 환자가 발생하는 빈도가 낮다고 해서 인력과 시설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위중한 환자가 언제 발생할지 알 수 없고, 환자가 장거리를 오가는 과정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며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소아암 진료 인력과 체계를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아암 치료 성과가 높아지면서 아픈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장기 입원과 반복되는 치료를 견디는 동안 아이들의 배움은 멈추고, 학교와 친구들에게서 멀어진다. 병원학교와 원격수업이 교육의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충분한 학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치료를 마친 뒤 원래 학교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온전한 지원도 없다. 아프다는 이유로 아이가 배움과 미래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 아픈 아이들의 투병이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8편에 걸쳐 묻는다. [편집자주]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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