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부터 살아남은 아이들, 그 너머를 위해 [아픈 아이들의 교실⑦]

암으로부터 살아남은 아이들, 그 너머를 위해 [아픈 아이들의 교실⑦]

기사승인 2026-07-19 06:00:04
5월28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소아병동 병원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든 작업물이 교실 벽에 붙어 있다. 임은재 기자
5월28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소아병동 병원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든 작업물이 교실 벽에 붙어 있다. 임은재 기자
소아암은 드문 병이다. 전체 암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아이가 암을 진단받는 순간 필요한 치료는 절대 작지 않다. 아이가 성장 중이라는 점을 고려해 지원체계가 치료 이후의 삶까지 반영해 설계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아암은 치료가 끝났다고 다가 아니다. 소아암 환자는 성장 과정에서 강도 높은 치료를 받기 때문에 장기 합병증, 내분비 문제, 생식 기능, 인지 기능, 심리 문제, 사회 적응 등 다양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 합병증들은 치료 후 수십 년 후에 나타나기도 한다. 암생존자통합지지사업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0~19세 암생존자는 1만2158명이다. 암을 치료받고 성인이 된 경우까지 포함하면 소아암 생존자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소아암 환자는 매년 1200~1300명씩 새로 발생하고 있다.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의 최근 4년(2020~2023년)간 권역별 소아청소년암 환자 발생 현황을 보면 2020년 1379명, 2021년 1365명, 2022년 1263명, 2023년 1238명의 소아청소년이 암을 진단받았다.

박미림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암센터장은 “소아암 치료 기간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3년 정도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장기 추적 관리는 적어도 10년 이상 지속된다”며 소아암 진료체계에서 중요한 또 다른 축은 ‘생존자 지원’이라고 했다.

소아암 생존자 지원에서 중요한 쟁점은 제도적 위치다. 일부 생존자는 치료 후 명확한 신체장애가 남지만, 겉으로는 정상처럼 보이면서 일부 기능에 어려움을 겪는다. 기존 장애인 지원제도와 일반 청년 지원제도 사이에 놓이는 셈이다.

최근 4년(2020~2023년)간 권역별 소아청소년암 환자 발생 현황. 자료=중앙암등록본부.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최근 4년(2020~2023년)간 권역별 소아청소년암 환자 발생 현황. 자료=중앙암등록본부.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박현진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암센터 교수는 “치료가 끝난 아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소아암을 경험한 아이가 청년이 된 뒤에는 어디서 지원할 것인지, 어느 시기까지 추적 관찰할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직장에는 일정 비율의 장애인을 고용하는 제도가 있다. 그런데 소아암 치료가 끝난 생존자를 장애인으로 볼 것인지는 애매하다”면서 “명확한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겉으로는 정상처럼 보이면서 일부 기능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도 있다. 정상과 장애 사이의 경계에 있는 암 생존자를 제도 안에 어떻게 포용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암생존자 지원체계는 걸음마

국내에서 소아암 환자를 본격적으로 치료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약 30년이 흐른 지금 암 조기 검진과 치료 기술의 발전으로 소아암 5년 상대생존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국내 소아암 치료 성적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국가암등록사업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0~14세 소아암 5년 상대생존율은 85%다. 미국(84%), 영국(82%), 독일(82%), 일본(80%)보다 높은 수준이다. 윌름스 종양과 같은 일부 소아암은 90% 이상의 생존율을 보인다. 직장 동료, 배우자, 친척, 이웃 등 일상에서 소아암을 경험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앞으로 흔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생존자 지원체계는 아직 초기 단계다. 지난 2019년 2월 ‘암관리법’ 제정을 통해 국립암센터가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로 지정돼 전국 암생존자에 대한 통합지지체계를 구축했다. 13개 권역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는 암생존자와 가족을 위한 신체·심리·생활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소아암 생존자 통합지지사업은 국립암센터, 경상국립대병원, 제주대병원, 충북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병원과 지역사회가 아직 충분히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치료가 끝난 아이에게 필요한 제도는 의료 밖에도 많지만, 병원에선 지역사회에 어떤 지원제도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지역사회는 소아암 생존자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박 교수는 “병원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고, 지역사회가 책임져야 할 역할이 있는데 두 영역이 제대로 통합되지 않고 있다”며 “사회에는 좋은 지원제도가 많지만, 병원에선 치료가 끝난 아이를 지역사회의 어떤 제도에 연결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놓여

국립암센터는 암생존자 주간에 치료가 끝난 사람과 현재 치료 중인 아이들이 함께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암생존자들이 직접 부스를 운영하고, 치료 중인 아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20세 이상 청년 암생존자를 대상으로 한 자조모임도 운영된다. 어려운 치료 과정을 겪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 경험을 나누고 지지하는 방식이다.

박 교수는 “사회복지사, 간호사, 고등학교 영어교사가 된 암생존자들이 나와 ‘나도 이런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며 “치료 중인 아이들이 궁금한 것을 직접 묻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22년 연령군별 암생존자 현황. 자료=암생존자통합지지사업 연례보고서.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2022년 연령군별 암생존자 현황. 자료=암생존자통합지지사업 연례보고서.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하지만 모든 암생존자가 안정적으로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아니다. 2022년 국립암센터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가 만 19세 이상 성인 암생존자 1500명을 조사했더니 전체 응답자 중 79.9%(1198명)가 ‘암 진단 전의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피로감(61.8%), 우울·불안 등과 같은 정신 문제(36.4%), 통증(27.0%), 식생활의 어려움(24.5%), 기억력·인지기능 저하(21.4%) 등 이유는 다양했다.

국립암센터 앞에는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가 운영하는 소아암 환아와 가족을 위한 개방형 쉼터 ‘숨카페’가 있다. 이곳에선 뇌종양 치료나 조혈모세포이식 후유증으로 손이 굳거나 이식편대숙주반응 등 합병증이 남은 청년들이 일주일에 몇 시간씩 일하고 있다.

박 교수는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자신이 일해 돈을 벌었다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큰 성취감을 준다”며 “현재 직업을 갖고 사회에서 잘 생활하는 암생존자도 있지만, 계속 취업에 실패하며 좌절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직업 복귀를 어떻게 도울지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어디에 살던 최적의 치료·지원 받도록

전문가들은 소아암 정책이 단기적인 병상·인력 지원을 넘어 장기적인 국가 관리체계로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 진료체계를 정립하고 생존자 관리를 제도화해 분절된 데이터를 통합해 연구와 치료제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소아암 진료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정책 연구를 시작했다”며 “우선 소아암 진료체계를 체계적으로 정립해야 한다. 동시에 치료가 끝난 환자의 생존자 관리도 굉장히 중요한 과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소아암과 관련해 여러 기관에 분절돼 있는 데이터를 어떻게 모을지도 고민해야 한다”면서 “데이터를 통합한 플랫폼을 구축하면 연구와 치료제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진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암센터 교수가 5월28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소아병동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은재 기자
박현진 국립암센터 소아청소년암센터 교수가 5월28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소아병동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은재 기자
소아청소년암 진료체계 구축 사업도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역에서 소아암을 안정적으로 치료할 수 있어야 의료진이 더 희귀하고 어려운 암종을 연구하고 이를 심리·사회적 지원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아암은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늘 후순위로 밀려왔다. 그러나 아이 한 명을 살리는 일은 치료가 끝나는 순간 마침표가 찍히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가 성인이 된 뒤에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

소아암 생존율 85%의 성과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의료진이 온몸으로 버티고, 가족이 삶을 조정하고, 아이가 치료를 견딘 결과다. 이제 필요한 것은 버티는 체계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체계라고 박 센터장은 말한다.

그는 “환자가 집 근처에서 언제든 전문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어디에 살던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사업의 목표”라며 “궁극적으로는 진단과 치료뿐 아니라 치료 이후의 장기 추적 관리까지 연결되는 체계가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소아암 치료 성과가 높아지면서 아픈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장기 입원과 반복되는 치료를 견디는 동안 아이들의 배움은 멈추고, 학교와 친구들에게서 멀어진다. 병원학교와 원격수업이 교육의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충분한 학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치료를 마친 뒤 원래 학교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온전한 지원도 없다. 아프다는 이유로 아이가 배움과 미래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 아픈 아이들의 투병이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8편에 걸쳐 묻는다. [편집자주]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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