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시장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행보에 관심이 모인다. 한미 관세협상에 따른 대미 투자 대상에 바이오산업이 포함되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CDMO 시장 확대가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5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500조원 규모의 글로벌 CDMO 시장을 놓고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해 스위스 론자와 일본 후지필름,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들 4개사가 전체 생물학적 제제 생산량의 약 34%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CDMO 매출 기준 세계 1위 기업은 론자로, 지난해 10조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론자의 강점은 최신 신약 후보물질이 초기 개발부터 상업화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임상 3상 및 상업화 단계 제품이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며, 전임상에서 2상 제품들이 30% 수준이다. 임상 후기 단계에 있는 30여개 신약 후보물질이 향후 5년 안에 상업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성장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론자에 버금가는 거대 CDMO 기업은 우시바이오로직스다. 지난해 매출 3조5700억원, 누적 수주 817건(상업화 21건·임상 3상 66건)을 기록하며 ADC(항체약물접합체)와 이중항체 수주를 확대 중이다. 하지만 미국의 ‘생물보안법’ 재도입에 따른 중국 바이오 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규제 강화 가능성에 우시바이오로직스의 대미 사업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생물보안법은 미국 정부가 우려하는 생명공학 기업 및 이들과 거래하는 기업과 계약을 맺거나,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지난해 생물보안법 제정이 불발됐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집권하며 법안 추진에 다시 속도가 붙는 분위기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자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지난달 유럽 공장을 매각하고 중국 청두에 생산시설을 착공하는 등 공급망을 아시아로 이동시키고 있다. 업계는 우시바이오로직스의 고객이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23년 매출액 기준 글로벌 CDMO 시장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점유율은 9.9%로 4위 규모로 평가되지만, 우시바이오로직스(점유율 12.1%)의 빈자리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대체할 경우 론자에 이어 세계 2위로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론자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창립 이후 지난해 말까지 위탁생산(CMO) 총 99건, 위탁개발(CDO) 총 133건을 수주했으며, 누적 수주액은 163억달러(한화 약 23조원)에 달한다. 올해만 해도 지난 1월 체결한 2조원이 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수주 계약을 시작으로, 글로벌 제약사들과 잇따라 대형 계약을 맺으며 현재까지 전년도 누적 수주 금액의 60%를 돌파했다. 수주 호조에 힘입어 2025년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은 2조5882억원, 영업이익은 962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 4844억원(23%), 영업이익 3065억원(46.7%)이 증가한 수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DMO 수요 증가에 맞춰 생산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4월 본격 가동에 들어간 18만L(리터) 규모 공장을 포함해 총 78만4000L의 생산력을 확보했으며, 오는 2032년까지 제2바이오캠퍼스에 3개 공장을 추가해 총 132만4000L에 달하는 생산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할 전망이다. 올 1분기 기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미국 매출 비중은 전체 42.7%를 차지했다. 지난 4월엔 미국 제약사와 7373억원 규모의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최대 관심사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미국 현지 공장 설립 여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의약품 수입관세 인상을 예고하며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에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미국 공장 설립·인수에 분주한 모습이다. 후지필름의 경우 지난 2021년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세포배양 바이오의약품 CDMO 시설에 20억달러(약 2조8000억원)을 투자했다. 해당 시설은 올해 하반기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여기에 추가로 12억달러(약 1조7000억원)를 투입해 오는 2028년까지 8개의 2만L 바이오리액터를 설치할 방침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의 의약품 관세 적용 여부를 예의주시하며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관세율은 15%로 낮아졌지만, 의약품에 대한 구체적인 관세는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의약품 관세 적용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하고, 바이오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의약품 생산 역량 확대를 위해 여러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추후 방안이 결정되면 발표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